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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쇠리 풍경 12 중 부분,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오쇠리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에 있다. 김포공항 바로 옆,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기 때문에 항공기 소음이 대단하다. 김포공항이 생긴 이래 그 소음 아래서 마을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1987년 4월 10일 오쇠리가 항공기 소음피해 1종지역으로 결정됨에 따라 서울지방항공청과 부천시가 협약해 이주와 보상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오쇠리에 사는 사람 모두는 아니었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원만한 협의가 되어 이주가 거의 이루어졌으나, 사정이 어려운 세입자들은 아직 거기 살고 있다. 물론 거주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 동네에는 사람들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이다."

"한 번은 동네를 돌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주민 한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약간 공격적인 말투로 물었다. 작가라고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물은 이유를 얘기했다. 그 해 일년 동안 마을에 거의 40차례 정도의 크고 작은 불이 났고 2003년 3월에는 열살도 안 된 어린 4남매가 불에 타 죽었다고 했다.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는 사건이었지만 그 장소가 오쇠리라는 것은 몰랐었다.

그리고 그 불은 낯선 사람이 사진을 찍어간 다음에 일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물었다는 것이었다. 섬뜩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불에 탄 집 사진을 이미 찍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 유일하게 남은 구멍가게 할머니도 그 얘기를 계속 되풀이 했다. 그 불뿐만 아니라 다른 불들도 분명히 누군가 지른 것이라고."

"그럴 듯한 자작 해설을 할 수는 있다. 개인적, 계급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따위의 말이 앞에 붙는 이해 관계가 아니면 현실은 우리에게 늘 픽션보다 비현실적이라고.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을 재미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이라크 전쟁과 포로 학대와 미국인 참수사건 보다 텔레비전 연속극이 더 현실적이고, 역사적 기록보다 소설이나 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사진도 마찬가지라고.

오쇠리를 보는 시선도 우리는 늘 멀리서 스쳐 지나가며 보는 흔해 빠진 풍경의 하나일 뿐이며 우리는 거기에 익숙하다고. 그래서 이 사진들도 그런 경험적 리얼리즘의 하나라고….

하지만 어떻게 말해도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의 내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무력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찍은 오쇠리는 풍경 속에 사진을 비롯한 이미지들이 가지는 한계와 내 자신의 무력감이 겹쳐있는 셈이다."

-이상, 작가의 변 중 발췌


▲ 오쇠리 풍경 12,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 오쇠리 풍경 6,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 오쇠리 풍경 3,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다음은 지난 11일부터 오는 7월 8일까지 홍대앞 갤러리 숲에서 <오쇠리 풍경> 전을 열고 있는 사진가 강홍구씨를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 21일부터 24일까지 주고 받은 이메일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전공이 회화시던데, 사진 작업을 하게 된 동기라면?
"회화가 너무 오래된 매체라서 그 압력이 너무 커서…. 이건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사진은 비교적 젊고, 이미지 대홍수의 시대에 이미지를 생산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 전작들이 순수 디지털아트의 냄새가 짙게 났던데 반해, 본 전시는 일견 다큐적인 접근 방식으로 보입니다. 스타일이 바뀌게 된 계기는?
"역시 할 만큼 해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진짜 이유는 현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여서 디지털적인 합성이나 기타 손댈 일이 거의 없어졌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다시 말하면 현실이 너무 쎄서 다른 것이 거의 필요없다는 생각…. 무엇보다 미술, 혹은 사진은 그냥 본다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얼핏 팬 카메라로 찍은 다큐 같지만, 서너 장의 사진을 이어붙인 자욱을 또렷이 남긴다든지, 흘러가는 시간을 따로 담는다든지 하는 것들은, 어차피 상황 강조를 위해 사진가에 의해 늘 왜곡이 저질러지면서도 리얼리즘이라는 걸맞지 않은 이름을 뒤집어 쓴 통상적인 다큐멘터리 양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해해도 될런지요?
"다소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큐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을 가진 것은 아니고,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갖는 주관성, 파편성 따위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 그리고 사진을 객관적, 중성적 매체라고 보는 관습이 허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기 보다는, "그것 참 그렇지 않나?" 라는 정도의 딴지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어요."

▲ 오쇠리 풍경 4,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 오쇠리 풍경 5,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 금번 전시작은 양식은 반 리얼리즘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 내용에서는 국가 권력과 그에 따라 서서히 진행되는 소수집단의 배제 행태가 늘상 자행되는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고발자적 태도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 작업의 연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이번 사진을 찍고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주관적인 해석 혹은 적극적 접근을 배제해버릴 생각이었어요. 왜냐하면 오쇠리 같은 동네를 보면 아주 복잡한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어쩌면 리얼리즘의 일반적인 전형을 벗어나 생활적 리얼리즘, 마치 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내다보는 풍경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 안에는 보다 복잡한 의미를 담아두고 싶었지요. 그걸 읽느냐 읽지 않느냐는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기고…."

- 전시 안내문에도 소개된 바 이번 전시의 컨셉트를 '무력감' 으로 이해해야 할런지요? 지난 달 김영종씨의 난곡 다큐작업의 '적극적 개입하기'를 보며, 그 형식은 수긍하지만 리얼리즘의 전설이 무너진지 오래된 현실에서 극단적 사회고발 메시지를 굳이 갤러리에서 그런 식으로 소화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무기력한 관찰자'의 입장이 좀 더 솔직한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기록과 전달자의 입장에 좀 더 충실한, 결국 그 이미지를 해석하고 사용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에게 돌려버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선택가능한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무력감이 옳지요.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쇠리를 찍었다해도 세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지원, 또는 다른 행동을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하는 척, 통탄하는 척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도 카메라를 든 사람은 구경꾼의 입장에 서게 되지요."

- 그런 무력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공익을 위한 적극적 개입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일반 관객들은 "그렇게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이미지를 가지고 뭘 어쩌자는거냐?" 라는 지극히 원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답변이 가능할런지요? 결국 이것은 어찌해 볼 수 없다는 개인적 경험을 피력한 아트로서의 사진으로 봐야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미술, 사진 이미지의 현실입니다. 예술로서의 사진, 혹은 미술 이미지들은 이제 매스미디어에 의해 다시 중개, 매개되지 않는 한 무력합니다. 그 어쩔 수 없음이 역설적으로 미술, 혹은 사진이 가치있는 지점이 될 수도 있지요. 아도르노식으로 말하면 그럼으로써 비판적 거울 노릇을 할 가능성이 약간, 아주 약간 있죠.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런지 회의적입니다."

▲ 오쇠리 풍경 9,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 비행기와 붉은 집, 디지털 프린트
ⓒ 강홍구
- 10여 점의 사진들 중 여고생과 비행기가 등장하는 두 장의 사진은, 시간의 흐름, 상황 설명적 요소, 사진예술적 감각 등이 어우러져 그나마 많은 사진 애호가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반면 다른 사진들은 그야말로 기름끼 쫙 빠진, 건조한 사진들이었습니다. 그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앞 두 장은 좀 나중에 찍어서 걸까, 말까 했는데 일종의 전문가 아닌 대중을 위한 서비스이자 오쇠리 상황을 상상케 하려는 실마리입니다. 물론 일반적 관점에서는 전시 전체의 컨셉트가 애매해지고, 통일감이 사라진다는 견해도 있지만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하지요. 왜냐면 어느 때는 잘 짜인 전시 자체가 숨막히게 싫을 때도 있어서…. 가끔은 이제 그럴 듯한 이미지를 너무 많이 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끝으로, 작업 과정에서 디지털이 어느 정도로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전 과정이 디지털입니다. 카메라는 올림프스 20n. 니콘 D70을 썼고 그 이미지들을 포토샵에서 붙이고 작업한 다음, 충무로 전문 인화점에서 더스트사 생산품인 람다 130. 레이저 컬러 프린트입니다. 물론 색, 분위기 등은 거의 다 포토샵에서 조절한 것이고 색을 맞추느라 아주 애를 먹었지요.

사진 작업 초기인 92년 무렵에는 디카가 너무 비싸 싸구려 스캐너와 자동 카메라를 주로 썼고, 니콘의 쿨픽스 990을 구입해 쓰면서부터는 전 과정이 디지털이지요. 앞으로도 비싼 렌즈, 카메라 쓸 생각은 별로 없고, 돈이 없으니까….

여유가 생긴다면 괜찮은 대형 프린터는 하나 사고 싶은 생각은 있지요. 프린트 비용 다 모으면 살 수도 있으니까요. 취미로 하는 아트가 최고지요. 직업으로서는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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