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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척을 잃은 남락마을 이영수 노인과 마을주민(원안처리)이 남락마을 앞산 학살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 성덕기

경남 양산시 동면 여락리 남락 바깥마을 앞산 남락고개와 인근 대룡리 녹동(부산 노포동 소재)은 보도연맹에 연루돼 양산 사람 수백명이 학살된 '한이 서린 곳'이다.

"한 맺힌 사연을 증언하지 않으면 한국전쟁의 비극적 역사는 영원히 햇볕을 보지 못한 채 비밀로 묻힐 것입니다."

이일선(80·동면 여락리 남락마을 경로당 회장)씨와 문성환(70·녹동마을·부산 노포2동)씨는 "당시 새끼줄로 양손을 뒤로 묶고 이 지역으로 끌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며 "1950년 8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보도연맹에 연루된 양산 사람들을 군인과 경찰이 새벽시간부터 초저녁 때까지 끌고 와서 기관단총과 소총으로 쏘아 죽이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언론에 보도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양산지역도 무고한 농민이 이 마을 몇몇 보도연맹원 주도자에 의해 쌀을 준다는 등의 회유에 가입했다가 집단학살 당한 것으로 증언되고 있다.

동면 석산리 석산마을 김태진(64)씨와 이기재(64)씨는 부친을 잃은 한 맺힌 유족들이며, 부산시청에 근무하는 이상철(50)씨도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이다. 이 마을만 해도 38세대, 금산리 금산마을 9세대 등 양산 전역에 2, 3백여 세대의 유족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산마을을 비롯한 유족들은 음력 6월 23일(양력 8월 8일경)부터 7월 초순까지 같은 날에 합동 제사를 지낸다. 김태진씨는 지금은 작고한 당시 45세의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었다며 '그 때 그 사건'을 증언했다.

"1950년 음력 6월 17일경 양산 경찰서에서 작업지시가 있다며 작업도구를 들고 지서(지금의 파출소)로 모이라고 해 모인 2, 3백여명의 인원을 현재의 양산시 중앙동 축협 사료창고(당시 목화 저장창고로 사용했으며 일부 수리하여 현재의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에 가둬버렸다"고 했다. 때문에 석산에서 10리나 되는 먼길을 걸어서 면회를 갔다고 회고했다.

또한 "면회를 갈 때마다 인원이 줄어들어 있었으며 음력 7월 초순에는 한 명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으며 "후에 알고 보니 트럭에 태워 처형장소로 끌고 가 총살됐다는 소문을 듣고 그날을 시점으로 제사를 지내왔다"는 증언을 했다.

김태진씨는 "6세 때 보도연맹에 연루된 당시 48세의 아버지를 잃었으며 어머니 홀로 30마지기의 농사일을 하며 7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술회하며 "목수로서 농사일을 하다 반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되어져 무고한 누명을 쓰고 희생되었다"며 "정부차원에서 지금이라도 억울한 희생자들에 대한 자료공개와 진상규명을 하여 반드시 명예회복을 시켜주어야 한다"고 소원을 말했다.

구덩이 파고 5~6명씩 기총사격 수백명 학살
민간토지 개발시 15가마분량 유골 방치 '의혹'


이승만 정권 당시 반공의 명분하에 억울하게 학살을 당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1960년 4·19직후 국회 '양민학살조사특위'에서 조사되는 과정에서 다행히 녹동 대룡리(부산 노포동 소재) 희생자의 유골을 수습해 화장을 한 후 양산 춘추공원에 합동위령비를 세웠으나 5·16 군사정권 하에서 철거되어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이 증언에 따르면 "동면 여락리 남락마을 앞산의 희생자는 유골이 수습되지 않고 개발과정에서 민간인에 의해 처분되어진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주장이 있어 진상이 규명이 요구되고 있다.

인근마을에 살고있는 김모(67) 할머니에 따르면 "17~18년 전에 이곳을 민간인이 개발하면서 나온 유골들을 15개의 가마니에 담아 도로변에 방치해 둔 것을 보았다"며 "그 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산시청 관계자는 "동면 남락마을 앞산이 보도연맹 관련 처형장소라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조사를 한 자료도 없고 개발시 유골발굴을 하였는지 신고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동면 여락리 남락마을 이영수(73)씨는 "이곳에서 먼 친척 되는 사람이 보도연맹에 연루돼 학살되었다"며 "구덩이를 파고 한번에 5~6명씩 기총사격으로 200여명을 처형하여 묻은 장소로 한 명의 생존자가 살아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사망하고 없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유족과 증언자들은 "양산시의 탁상행정으로 희생자 유골이 훼손되어 없어진 것인지 진상규명 해야한다"고 주장하며 "양산시가 진상규명과 함께 신원회복과 이에 따른 책임있는 조치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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