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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신부>의 문근영
ⓒ 코리아 픽쳐스
문근영은 '귀엽다'. 최근 활동하는 배우들 중(아역배우들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문근영만큼 완벽한 '귀여움'의 패키지를 제공해준 사람이 또 있던가? 그러나 이 원초적인 매력이 성적인 개념과 섞인다면 어떻게 될까? 문근영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어려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가을동화>의 어린 은서는 <어린 신부>의 볼살 통통한 보은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인다(듀나·씨네21·450호).

인터넷 영화평론가 듀나는 영화 <어린 신부>를 "귀여움을 남용한 좀비극"이라고 칭하면서 주인공 문근영의 귀여움이 점차 과장되고 있음을 걱정한다. 듀나가 지적했듯 '귀여움'은 '주체성을 잃는 것'과 동일하다.

극단적인 귀여움은 캐릭터의 타자화와 연결된다. 그 대상을 보는 관객은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동화되는 대신 밖에서 구경하며 소유하게 된다(듀나·위와 동일).

조그마한 강아지나 아기들, 무력하고 돌보아주어야 할 극단적인 비주체성. 그것이 '귀여움'이라는 감정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다. 문제는 <어린 신부>라는 뻔뻔한 영화, 그리고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갈수록 심해지는 과장된 귀여움이 분명한 시대적 요구(혹은 욕망)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인터넷에는 5,6살쯤 되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스타로 떠올랐다. 앙증맞도록 귀여운 아이들의 사진이 유행을 하고 사진 속의 포즈는 도를 더해 세미누드에 가까운 모습까지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최근 매스컴에도 반영되어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상품광고에 단골 모델로 등장했다. 일례로 이런 모델 중 하나인 혜원이(8)는 까페 회원수만 4만 명 이상 거느린 인기 스타다.

유독 예쁘장한 여자아이들이 부각되는 문화현상, 그 의상과 표정, 몸짓들이 성인 여성 모델의 선정적인 모습과 유사한 경계선마저 넘나드는 지금의 현상은 단순히 어린아이의 귀여움에 대한 선호를 넘어선 은밀한 욕망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많은 영화 혹은 문화평론가들이 언급했듯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로리타 콤플렉스'가 숨어 있다.

▲ 광고모델로 인기를 끌고 있는 혜원이
ⓒ 삼성래미안
'로리타 콤플렉스'란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의 여자 아이, 특히 10세 이하 또는 10대 초반의 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로리타는 러시아계 미국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4년 발표한 소설 <로리타 Lolita>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일본에서 다소곳하고 청순가련한 소녀에 대해 동경하는 심리에 인용해 '로리타 콤플렉스'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출시된 이수영 뮤직비디오 <꿈에>는 로리타 콤플렉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지탄을 받았다. 6살 어린 여자아이가 진하게 마스카라를 칠하고 새빨간 립스틱을 칠한 채 긴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성인 여성의 목소리로 "오늘 밤에 그대여, 와요"라고 끈적끈적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뮤직비디오 제작진은 내용상 성인 여성의 영혼이 빙의된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뮤직비디오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는 진한 화장과 야릇한 포즈의 어린아이 모습이, 그 조그만 입에서 불리는 노래 가사가 진정 의도하는 바는 섬뜩하기 짝이 없는 자본주의의 노골적인 성상품화다. 그것도 몹시 뒤틀린.

어린 여자아이의 성적 매력에 대한 전사회적 욕망은 5,6살 어린 모델들의 대거 등장과 17살 영화배우의 지속적 퇴행뿐 아니라 성인여성에게 어린아이의 모습을 가질 것마저 요구한다.

30-40대 주부잡지 모델이 거의 예외 없이 결혼도 하지 않은 20대 여성인 것은 20대 초반 여성만이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 요구의 노골적인 드러냄이다. 최근 13살 어린이가 성인 화장품 모델로 등장한 일이 있었다. '우리'라는 이름의 13살 어린 여자아이는 진한 화장을 하고 성인용 화장품 모델로 데뷔해 사춘기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귀여움을 성인 여성에게도 요구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아이는 언제나 사랑스럽기 마련이며 귀여운 것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심리다. 인간뿐 아니라 맹수를 비롯한 모든 동물이 아기 때 귀여운 모습을 하는 것은 호의를 얻어내기 위한 생존의 법칙이라는 이론도 있다. 또 자본주의의 첨병인 광고계에서 '3B(Baby, Beast, Beauty)'를 선호하는 것도 오래된 전통이다. 그러나 지금의 전사회적인 어린 여자아이 열풍은 분명 남성주체의 비틀린 성욕과 결합하고 있다.

1995년 성폭력상담소 조사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중 20세 이상 성인은 51.2%였으며, 14-19세는 17.6%, 13세 이하는 28.7%를 차지한다. 어린아이에 대한 성적 욕망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린이를 여성으로 즉 성적 대상으로 보는 동시에 성인 여성에게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요구하는 사회문화현상은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비윤리성뿐 아니라 여성에게 비주체적 어린이의 모습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극히 반여성적이다. 이제 아이를 내세운 은밀한 욕망의 잔치를 드러내고 비판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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