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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꿈은 다소 허망하거나 비현실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안에는 순수함이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지 않는 만화적인 상상력. 과학자가 되고 싶은 혹은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혹은 슈퍼맨이 되고 싶은 아이들의 꿈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순수한 그들의 삶의 모습이다.

너무 많은 생각속에 계산적이고 거칠어져만 가는 세상 속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의 허무맹랑한 꿈 이야기는 잠시 앉아 상념에 젖게 하는 그루터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이렇게 어린이의 순수함이 담긴 꿈이지만 단지 잠시 쉬어갈 그루터기 같은 동화에 머물지는 않는다. 잔잔한 이야기에 젖어가다가 문득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독설에 흠칫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의 순수함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소설에는 이러한 역설적 매력이 있다.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은 인천의 평범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386세대다. 그가 사춘기였을 무렵 그의 10대 삶을 송두리째 사로잡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것이 프로야구의 출범이었다. 그가 살던 인천을 연고로 한 팀이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 슈퍼맨을 마스코트로 한, 이름에서부터 어딘지 유치하고 어설픔이 느껴지는 이 야구팀이 주인공에게는 사춘기의 열병과 같은, 삶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삼미 슈퍼스타즈가 엄청난 팀이었다. 최다 연패, 한 팀 상대 무승, 한 회 최다 실점 같은 기록을 만들어 간 것이다. 삼미는 프로의 세계에서 자기들만의 동네 야구를 하고 있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던 삼미가 이런 엄청난 팀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큰 상심에 빠지게 된다. 그의 인생의 대리와도 같았던 삼미의 추락은 바로 그 자신의 인생의 추락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때 그는 '소속'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인생은 삼미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OB에 '소속'된 인생들은 자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똑똑했던 주인공은 소속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열심히 공부해 일류대, 일류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사회를 접하고, 또 사회를 접하게 되면서 주인공은 이 사회가 프로야구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 일류가 되기를 조장받고, 프로가 아니면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점점 사회에 적응하게 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지만, 98년 IMF를 맞아 명퇴를 당한다. 열심히 살기 위해 가족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혼까지 하며 매달려온 과정에 비해 그 결과는 너무나 초라하고 허무한 것이었다.

이후 주인공은 과거 삼미 슈퍼스타즈의 같은 팬클럽이던 친구를 만난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지 않고 자기만의 인생을 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주인공은 그에게서 '삼미야구'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면서 인생을 깨닫게 된다. 모두 '이겨야 한다'는 어떤 마약과도 같은 힘에 이끌려 그 진정한 인생의 목표, 혹은 야구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했을 때 삼미만은 '프로야구'가 아닌 진정한 '야구'를 했다는 것이다. 왜 꼭 이겨야 할까? 왜 꼭 프로가 되어야 할까?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놓쳐가면서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돈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무한 경쟁의 살얼음판 같은 무대 위에서 쉬지 않고 앞만 보며 뛰고 있는 모습들…. 무엇 때문에? 벌기 위해서고 살기 위해서다. 다람쥐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쳇바퀴를 열심히 돌리는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우리의 '행위', 우리의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서 삶을 희생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소설을 읽으며 돈과 경쟁의 메커니즘으로 짜인 우리네 삶의 '쳇바퀴'를 잠시 벗어나 삶을 성찰해 보는 여유로운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찌됐든 삶의 굴레 속으로 결국은 들어가고 말 것을 알지만 작가의 순진무구한 충고는 삶의 소중한 교훈이 되기에 충분하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본문 중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개정판

박민규 지음, 한겨레출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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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기쁨을 느끼고자 합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을 형성해 왔다고 믿는데 이제는 저의 작은 의견을 개시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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