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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실용주의'와 '경제우선'만을 내세우며 이라크 파병문제에 등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있다. 사진은 지난 3일 국회 대표회담에 앞서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에 대한 세계적 공분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이라크 파병 재검토 논의가 17대 국회 개원과 함께 공론화될 조짐이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들은 '파병보다는 경제'라는 실용주의적 논리를 앞세워 이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10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정확한 정보제공과 정부의 입장 개진을 요구하고, 당내에서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라크 파병 재검토를 촉구했다.

"파병 재검토 논의는 일과성으로 지나간다기 보다는 뜨거운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원 의원의 문제제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파병 재검토론'은 17대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상당부분 논의가 진척되고 있다.

이라크 파병 재검토론, '공론의 멍석' 깔아야

그러나 원 의원에게 돌아온 박근혜 대표의 답변은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기 때문에 그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녹음기의 재생이었다. 파병안을 통과시킨 국회가 언제 때 국회인가? 3개월 전 국회를 통과한 파병동의안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라크 현지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당시 4월 파병설이 유력했지만 현재까지 우리 군의 파병 예정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의 답변은 제1 야당 대표로서의 고심의 흔적을 담고 있지 못했다.

박 대표는 "정부와 여당에서 문제가 있다고 논의를 요청해오면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역시 책임회피성 답변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연찬회를 통해 개혁적 보수, 중도 보수 등을 정체성으로 내걸었다. 보수의 제1 가치는 자유와 인권이다. 이라크 포로 학대에 침묵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하는 책임이 보수 야당에게 있는 것이다.

특히 박 대표는 "지금 국민들이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경제"라며 '경제 제일주의'를 앞세웠다. 이라크 파병을 비롯해 정간법, 국가보안법 등의 문제는 지금 국민들이 고통받는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도 이날 오전 회의에서 "(국민들이) 가렵고 아프게 생각하는 민생경제를 살리는 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장과 박근혜 대표가 이라크 파병 문제에 있어서는 '민생경제 우선론'를 내세우며, 박근혜 대표와 다정한 오누이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정 의장은 이날 회의에서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이 "경제 살리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이라크 파병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에 토론해야할 때"라고 주장하자, "좀 더 검토해보자"며 애써 얼버무렸다.

'비겁한 실용주의'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

결국 정 의장은 당내에 (가칭)'국민통합실천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이 기구에서 이라크 파병 문제를 비롯해 부안 핵폐기장, 평택 미군기지 문제 등 합의를 이뤄내기 어려운 문제들을 한꺼번에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책임회피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매우 민감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여러 사안들을 즉자적으로 만든 한 기구에서 소화하라는 것은 이같은 사안에 대한 진지한 해법을 제시하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면피용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경제와 민생 챙기기는 챙기면 챙길수록 정치인으로서 폼이 나는 반면, 이라크파병 문제는 잘 해봐야 본전도 챙기기 어렵다는 '실용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정동영 의장과 박근혜 대표의 이라크 파병 재검토론에 대한 침묵이 '비겁한 실용주의'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반면, 진보정당으로서는 40여 년만에 처음으로 원내 진입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17대 국회 개원 즉시 이라크 파병 철회를 공론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은 이라크 파병 반대 의원들을 범국민행동본부로 규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론과 배치되는 선택을 해야하는 다른 당 의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정동영 의장과 박근혜 대표가 정치권에서 불붙고 있는 이라크 파병 재검토 논의에 대해 언제까지 '언발에 오줌누기'식으로 대처할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처럼 침묵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면 서로 눈치보지 않고 국민들에게 '공론의 멍석'을 깔아주고,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 참된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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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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