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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자주 낯선 곳으로 떠나 내 자신에 봉사하자며 40리터 배낭까지 새로 마련했는데 벌써 5월이다. 경치 좋은 겨울산은 춥다는 핑계로 건너뛰고 매화 날리는 봄산은 헛딛어 다친 발목 때문에 또 건너뛰고 찬란한 눈도 화려한 꽃도 없이 바람만 건들거리는 이제야 찾은 마이산(馬耳山). 아무튼 좋다. 작년부터 와보고 싶었던 마이산과 탑사를 찾아 나섰으니.

진안터미널에 내리자마자(오전 9시) 바로 출발하는 마령행버스를 타느라 산행중에 기운을 도울 간식을 미처 구하지 못했다. 버스가 터미널을 약간 벗어나자 멀리 동쪽 숫마이봉과 나란히 서쪽 암마이봉이 세상에 우리 밖에 없다는 듯 기세등등하다. 잠시 감탄 한마디 부르는 동안 버스는 마이봉에서 멀어져간다. 나는 마이봉을 좀더 가까이 보기위해 좀더 멀리가는 것이다.

강정마을 입구에 내려(9시16분) 시작지점으로 잡은 합미산성입구를 찾는다. 한적한 도로를 20여분쯤 걸으니 표지판이 보인다. 신발끈 조여매고 간식없는 배낭이지만 다시 한번 고쳐매고 몇시간을 함께할 280ml의 물과 새벽에 먹어둔 콩나물해장국의 힘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산성을 볼수 있을것으로 생각했으나 어디에 숨어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나무에 가려서인지 산성을 피해 등산로가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군내버스 기사분도 낯선듯 되묻고 다른 등산객도 잘 모르는 것으로봐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듯하다. 그곳을 지나간 여러 산악회의 리본만이 늦은 봄바람에 너울거린다.

오뉴월에는 개도 걸리지 않는 감기가 이틀전부터 추근거리더니 결국 인후부위를 오르내리며 괴롭힌다. 길게 숨한번 들이쉬고 '아아아-' 한번 '오오오-' 한번씩 부르며 숨을 내쉰다. 기분탓인지 마이산 정기덕분인지 목부위의 화살세례가 좀 덜어졌다.

광대봉(609m)에 올라(10시 42분) 배낭을 내려 땀도 식히고, 이어진 경사 60도이상 되어보이는 30m 정도의 내리막길을 위해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굵은 안전로프가 설치되어있지만 두줄로 엮여있어 손이 작은 사람이 잡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줄없이는 위험하므로 서두르지말고 천천히 한발한발 내려간다.

산을 사랑한다면 산에서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한다. 산에서 버려진 종이컵, 과자봉지, 플라스틱물병 등을 보게되면 전부 주워담으며 갈수도 없고 그냥 지나치자니 마음이 껄끄럽곤한다. 봄꽃 만발한 3월쯤 왔다갔는지 어느 산악회의 길안내 A4용지가 등산로 초입부터 계속 놓여져있다. 보이는대로 흙을 털고 배낭에 주워넣으면서 그 산악회(여러장을 주웠기에 산악회 이름을 기억하고 있음)에 대해 불쾌한 생각이 든다.

조금씩 허기가 느껴져올무렵 바스락 소리에 오른쪽을 돌아보니 70cm쯤 되는 갈색 뱀한마리가 놀라서 구불구불 재빠르게 달아나고 나 역시 놀라 후다닥 달아난다. 먼저 건들지 않으면 아무일 없을텐데도...

검푸른 바위가 수직으로 펼쳐진 왼편에 외로운 듯 비룡대 전망대가 서있다. 10m가 넘는 철계단을 기운내어 오르니 사방이 시원하게 트였다(11시 57분). 뱀 보고 놀란 가슴도 진정시키고 타는 갈증도 풀겸 물한모금 들이킨다. 물이 바닥났다.

어쩌다 지나는 등산객과 가볍게 인사도 주고받으며 봉두봉을 거쳐(12시 33분) 암마이봉앞까지(12시 40분) 부지런히 걸었다. 멀리서는 아주 단단한 바윗덩이로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본 암마이봉은 아슬아슬 쏟아져내릴듯한 모래성같다. 실제로 모래와 자갈로 구성된 암마이봉은 세월을 거치면서 풍화와 태양열로 남서면이 군데군데 움푹패인 것(타포니현상)을 볼수 있다.

암마이봉에는 등산로가 있지만 오르지 않고 탑사로 바로 내려간다(12시 45분). 탑사관람전에 먼저 식당부터 들러 비빔밥으로 주린 배를 달랬다. 탑사엔 꽤 사람이 많다. 백년전 이갑룡 처사가 억조창생의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30여년동안 쌓았다는 크고작은 돌탑 80기가 두손 모으고 고개숙여 드리는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있다. 이 돌탑은 다듬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돌로 쌓았다(막돌허튼식). '막돌허튼'이라는 말이 참 정겹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다룰줄 아는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것같다.

돌탑은 거친 바람에 흔들릴지라도 결코 쓰러지지않는다고 한다. 몹시 바람부는 어느날 탑사에 오면 오묘한 우주의 진리를 담은 '탑의 노래' 한가락 엿들을수 있을까? 부질없다. 내 마음이 탑의 노래를 감당할 그릇이 될런지가 의심스러우니. 세상에 거져주어지는 복은 없잖은가.

탑사에는 '능소화'라는 20여년된 나무가 있다. 암마이봉을 붙들고 10여미터쯤 올라간 폼이 작은 씨앗으로 시작된 생명이지만 언젠가는 암마이봉 너를 다 움켜 잡겠다는 듯 부채꼴모양으로 쭉쭉 뻗어있다.

탑사 오른쪽 위에 숫마이봉을 배경으로 은수사가 있고 은수사 왼쪽 위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사이에 북부주차장으로 가는 계단길이 나온다. 아주머니 한분이 계단 하나하나를 천천히 오르고 계신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불편을 겪는 분이다. 4년전 중풍으로 한쪽 팔, 다리가 불편해진 이후 동네 약수터를 오르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저 아주머니와 같다. 앞에 놓여진 수많은 오르내리는 계단에 아주머니는 꽤 지치겠지만 누구도 대신해 줄수는 없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북부주차장에 도착(2시 10분). 뒤돌아 마이산을 바라본다. 마이산은 탑사의 신비한 돌탑을 품고 능소화 여린가지의 씩씩한 기상도 굽어보고 계단 오르는 몸 불편한 아주머니를 격려하고 마음 불편한 사람들의 기도도 그 이름처럼 말의 귀로 쫑긋 서서 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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