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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제주의 화산석은 그 자체가 오묘한 자연의 예술품입니다. 구멍이 송송 뚫린 검은 돌만으로는 부족해서 기기묘묘한 모양을 하고 있는 자연석들을 보면서 감탄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삼다도 제주에서 '돌'을 제외한다면 참으로 밋밋할 것입니다. 가옥과 돌담과 무덤과 밭을 둘러싼 돌담과 소원성취를 위해 쌓아놓은 돌탑이나 역신을 쫓기 위해 쌓아놓은 방사탑, 전시에 연기를 피우기 위해 쌓은 연대뿐 아니라 가벼워서 물에도 둥둥 뜨는 부석과 돌을 이용한 각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돌과 제주는 따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호미로 땅을 일구기만 해도 달그락달그락 돌들이 소리를 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도 동시에 삶의 영역을 넓혔던 흔적들이 바로 제주의 돌담이니 제주인들은 돌과 더불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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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주의 얼굴을 돌하르방보다는 동자석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동자석은 무덤이 위치한 땅의 토지신(土地神)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장을 할 때에는 동자석을 묻고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동자석들이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것은 어른의 팔뚝 정도의 크기부터 어린아이 정도의 크기인데 인간들의 소유욕으로 인해 마구 파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름 어딘가 돌담이 둘러친 무덤에서 이끼가 낀 오래된 동자석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지 않은 탓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이 쉬 닿는 곳에서는 동자석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꿈은 제주에 정착한지 3년 째 되는 해에 이루어졌습니다.

동자석을 만나러 떠난 여정

ⓒ 김민수
동자석의 모양도 각양각색이요, 자연석에 사람의 손길이 간 것이니 같은 모양이 없습니다. 어떤 것은 온화하고, 어떤 것은 근엄합니다. 각양각색의 모양 만큼 망자들도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제주의 돌담을 처음 보았을 때 돌담이 대충 쌓여있는 듯했습니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 저렇게 엉성하게 쌓아놓으면 바람에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돌담의 틈새로 바람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쓰러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바람에 돌담이 쓰러질 정도면 굉장히 큰 태풍이 왔다는 증거랍니다. 돌담을 다 쌓은 후 한쪽에서 흔들었을 때 전체가 흔들거리면 제대로 쌓은 돌담으로 인정해 주었다니 무조건 막고, 흔들리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겠지요.

ⓒ 김민수
제주의 돌은 생활용구로 사용이 되었는데 도구리(가축들의 여물먹이 통), 화덕(난로), 돌절구, 정고래(맷돌), 향돌(제기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일일이 정으로 쪼아 만든 것들은 투박하지만 오히려 정감이 갑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는 기계를 많이 사용하는 듯 하여 간혹 무덤가에서 만나는 동자석 중에는 낯선 것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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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은 홀로 있지 않고 서로 마주보고 있더군요. 물론 어떤 것은 몹쓸 사람들의 횡포로 홀로 남아 무덤을 지키는 것도 있긴 하지만 맨 처음에는 홀로가 아니라 서로 마주보았을 것입니다.

기나긴 밤과 망자의 무덤이 이장되기까지 한 곳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며 눕지도 못하고 서있어야만 했을 동자석. 동자석이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단순히 동자석이 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 김민수
그렇게 우리 조상들은 돌 하나, 풀 한 포기를 바라볼 때에 그냥 대상화시키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과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자연으로 바라보면서 더불어 살아왔고, 그들에게 혼을 집어넣어 때로는 자신들이 풀지 못하는 삶의 문제들과 수수께끼들을 그들이 풀어주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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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설화의 땅이라고도 합니다. 1만8000이나 되는 신들을 만들어 낸 제주의 역사는 민중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라산에 살고 있던 설문대할망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몸집이 커서 한라산을 베개삼아 누우면 다리가 관탈섬에 걸쳐졌다고 하고,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았다니 얼마나 몸집이 컸는지 가늠이 안됩니다. 7번 삽질에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하니 설문대할망이 사용했던 그 삽은 얼마나 컸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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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석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에는 슬픈 모습으로 다가오고, 자연 풍광에 한껏 마음이 편안할 때에는 온화한 웃음으로 다가옵니다. 추운 겨울 칼바람이 불 때에는 동장군처럼 보이다가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동자석은 막 목욕을 끝내고 나온 소년의 상기된 얼굴같기도 합니다.

ⓒ 김민수
제주의 동자석을 무덤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소유욕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 같습니다. 자기가 소유한들 길어야 백 년 일진대 그 곳 그 자리에서 망자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또 찾는 이들에게도 삶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을 소유해 결국 그들은 벙어리가 되고 자신은 귀머거리가 되는 삶을 살아가니 말입니다.

제주의 얼굴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것은 인간들의 욕심과 무지로 인해 지금도 동자석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들이 개발이라는 명복하에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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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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