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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저녁 당선이 확정되자 정형근 의원이 지지자들의 연호 속에 환한 웃음을 띠고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15일 저녁 당선이 확정되자 정형근 의원이 지지자들의 연호 속에 환한 웃음을 띠고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17대 총선 최고의 '빅매치' 중 하나로 관심을 모았던 부산 북강서갑 선거구 투표 결과,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이철 열린우리당 후보를 누르고 3선 고지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 돌입 전만 하더라도 이 후보가 정 의원을 15% 이상 앞섰고, 투표 당일까지도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인 탓에 많은 이들이 끝까지 이철 후보의 당선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결과는 정 의원의 승리로 돌아갔다.

정 의원의 당선을 두고, 일부 개혁진영에서는 벌써부터 자괴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낡은 정치의 청산을 목표로 한 17대 총선에서 '낙선 대상자'로까지 지목된 정 의원이 '기사회생'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으로 이들은 정 의원의 당선이 '되살아난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민들 첫 반응 '구관이 명관'

그렇다면 부산 북구는 왜 정형근 의원을 택했을까.

이철 후보의 패배 원인은 일단 '인지도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선거가 끝난 16일 오후 부산 북구 덕천시장 인근에서 만난 대부분 주민들은 '구관이 명관'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북 강서갑에서만 내리 재선의원이 된 정 의원과 선거 돌입 직전 지역구로 내려온 이철 후보를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지역을 잘 알겠느냐"는 것이 주민들의 논리였다.

덕천로터리에서 만난 김모(여·55)씨는 "정 의원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했다"며 "아무래도 하던 사람이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라고 전했다. 김씨는 또 "이철 후본가 하는 사람은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표를 주느냐"고 덧붙였다.

"정 의원의 과거 전력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다"는 질문에 김씨는 "그런 것들은 잘 모른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민주는 무슨..."이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비교적 젊은층도 이철 후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자영업을 한다는 최모(남·39)씨와 김모(남·41)씨는 "정형근 의원은 TV에서도 많이 봤는데, 이철 후보는 잘 몰랐다"며 "투표소에 가서 많이 망설였지만, 열린우리당 바람 타고 내려온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을 찍는 게 좋겠다 싶어서 정 의원을 찍었다"고 전했다.

15일 선거에서 이철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김지영(여·29)씨는 "나는 이철 후보를 잘 알지만, 부모님들은 잘 모른다"며 "선거 당일날도 내가 우겨서 이 후보를 찍게 했지만, 잘 모르는 부모님들은 반신반의하시더라"고 말했다.

인지도 차이와 함께 노풍도 무섭게 불었다. 특히 부산지역의 유명한 재래시장 중 하나인 북구 구포시장 인근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노풍의 거센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동영 의장은 지난 번 이철 후보 지원 유세차 구포시장을 찾았다가 거세게 달려드는 상인들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같은 바람은 덕천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좌판에서 과일과 나물을 파는 한 60대 여성상인은 "선거에서 누구를 찍었느냐"는 질문에 "정형근을 찍었다"고 답한 뒤 "정동영인가 뭐시긴가가 미워서 가자마자 정형근이 찍고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지난번 정동영이가 북구에 왔다고 해서 따지러 갈라고 했는데 (장사를) 벌여놔서 못 갔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들도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옆에 있던 다른 상인은 "원래는 노무현이 탄핵하고 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안 찍을라고 했는데, 늙은이들은 쉬라 마라 해서 맘을 바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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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중심으로 거센 '노풍' 바람... '민주주의'보다 '경제'에 더 관심

물론 60대 노인층에서도 이철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주변 인심이 노풍으로 많이 돌아섰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었다. 김씨라고 자신의 성만 밝힌 한 노인은 "맨날 한나라당만 찍다가 이번에는 좀 달라야겠다 싶어서 정형근을 안 찍었다"면서도 "노인정이나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해보면, 노인 발언 때문에 말다툼하기가 일쑤"라는 분위기를 전했다.

열린우리당이 전략적으로 집중 부각시킨 정 후보의 '반인권 전력'에 대해서도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 후보의 과거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으나, 50대 이상은 잘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미 지난 일"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덕천시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모(남·51)씨는 "자꾸 누구를 고문했다고 하는데 이미 몇 십 년도 더 지난 일 아니냐"며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젊은층은 좀더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놨다. 취업을 준비중이라는 박모(남·28)씨는 "북구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사는데, 이 분들에게 아무리 '민주주의' 이야기를 해봐야 한계가 있다"며 "이곳 민심은 당장 뭐 하나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을 고르는데, 아직까지는 한나라당이 이곳에서 '정신적 여당'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 의원의 '3선 고지 달성'이 가진 의미

정형근 의원은 이처럼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 특색과 특유의 조직력으로 3선 중진의원으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 의원의 이번 승리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의 승리와는 좀 다르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 후보는 지난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최고의 득표율(4만8104표, 76.6%)을 자랑하며 1위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번 17대 총선에서는 이철 후보와 접전을 벌이며 불과 6천여 표 차이(4만1547표, 51.2%)로 과반을 조금 넘기면서 신승했다. 총선 직전에 북 강서갑에 뛰어든 이철 후보도 굉장히 선전을 한 셈이다.

총선 결과가 나온 뒤 이철 후보는 인터뷰를 통해 북 강서갑 상황을 "언제든지 불똥만 튀면 불길이 일어날 수 있는 마른 섶"과 같다고 비유했다. 결국은 지역주의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지만, 정 의원의 당선 득표율 수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주의도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철이 누군지 모른다"는 주민들의 지적에서 보듯, 만약 이 후보가 조금 더 일찍 북강서갑 지역구를 다졌더라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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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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