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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 성 안뜰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성비타 성당
ⓒ 배을선
프라하는 예쁜 도시다.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 골목들, 높은 산 위에 고고하게 서있는 프라하 성, 성경의 등장인물들이 우아하게 서있는 520m 길이의 카렐교….

어머니의 장롱 속 깊숙히 숨겨진 상자를 무심코 열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보석같은 곳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반짝임을 간직한 곳. 그러기에 프란츠 카프카가 보헤미아의 고색창연한 도시 프라하를 '그의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 성비타 성당. 성 네포묵의 무덤을 보려면 특별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 배을선
프라하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바로 프라하 성이다. 블타바 강 서쪽의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프라하 성은 프라하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하 성은 16세기 말까지 보헤미아 왕가의 궁전이자 중세 체코 정치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체코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시내 중심지를 훑고 다니는 22번 트램이나 메트로 말로스트란스카역에서 내려 수백개(처럼 느껴지는) 계단을 헉헉거리고 올라가면 프라하 성을 둘러싸고 있는 높다란 성벽과 마주하게 된다.

프라하 성의 정문 양 옆에는 과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라하 통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이 문을 통과해 2개의 작은 안뜰을 지나면 성비타 성당 및 황궁, 성 이르지 수도원 등이 나온다.

성비타 성당은 프라하 성에서도 관람객들이 가장 많은 곳으로 그 규모도 웅장해 성 내 안뜰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 성 안에는 유명한 체코의 아르누보 화가 알폰스 무하가 그린 스테인드 글라스와 체코의 위대한 가톨릭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성 네포묵의 화려한 순은 무덤이 있다.

성 네포묵은 14세기 바츨라프 4세의 부인이 고해성사한 내용을 죽음과도 바꾸지 않은 성인으로 17세기 당시 개신교를 물리치려는 체코의 가톨릭은 성 네포묵을 성인으로 추대해 가톨릭의 부흥을 꾀했다. 신부로서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성 네포묵을 기리는 그의 무덤은 순은 3톤을 녹여 만든 것으로 체코에서 가장 큰 보석으로 불린다고 한다.

▲ 황금소로 - 알록달록한 색깔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 정겹다
ⓒ 배을선
성비타 성당을 나오면 바로 황궁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 황궁의 일부는 체코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황궁을 둘러보고 나왔을 때 4, 5대의 거대한 검정색 승용차가 지나갔다. 주위에서 "프레지던트" "프레지던트"하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대통령 집무실을 보면서 체코의 대통령은 참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같은 으리으리한, 또는 대중과 격리된 곳이 아니라 관광지의 한 켠에서 집무를 보면서 매일 관광객들과 일반인들을 마주하니 말이다.

만약 프라하 성을 모두 관람하고 난 다음 그 웅장함에 익숙해져서 언덕을 내려오는 길을 무심코 지나친다면 큰 아쉬움을 남기게 될 것이다. '황금소로'라고 불리는 작은 길에서 웅장한 관광지가 주지 못하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황금소로에 위치한 프란츠 카프카의 작업실
ⓒ 배을선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주거했던 황금소로는 십 몇 채의 작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골목으로 '관광용으로 이렇게 작게 만든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불러일으키는 동화 속 나라 같은 곳이다.

성 안에 작은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경으로 당시 성을 지키던 군인들을 위해 지어졌다. 하지만 17세기부터 이 곳에 연금술사들과 금세공인들이 거주하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지금은 국가의 소유가 되어 대부분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되었다.

▲ 프란츠 카프카
ⓒ 배을선
그 중 눈길을 끄는 곳은 단연 파란색으로 칠해진 22번지다. 프란츠 카프카가 작업실로 사용했던 이 곳은 집 밖의 벽에 '카프카'라는 문패를 달고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초대한다.

카프카와 관련된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낡고 오래된 무언가는 현재 그 곳에 남아있는 집의 외관뿐이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막혀 있고 다섯 사람 정도가 들어가면 꽉 찬 느낌을 주는 1층은 카프카와 관련된 서적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카프카를 이용해 한몫 잡아보려는 장삿속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카프카의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제시카. 훔치지만 않으면 뭐든 OK라고!
ⓒ 배을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둘러보아도, 점원에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어도, 이리저리 둘러보고 그냥 나가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여기를 떠날 뿐이야. 여기서 나가는 거야. 어디까지라도 가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어." - 카프카

카프카의 사진이 실려 있는 작은 달력 2개를 기념품으로 산 후, 나는 카프카의 '출발'이라는 콩트를 상기하며 그 곳을 빠져나왔다. 마음에 드는 상점에 오래 있을수록 지갑의 두께는 얇아지기 마련이므로.

몇 집을 더 내려가면 수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가 나오는데, 이 곳에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달라이 라마가 체코를 방문했을 때 이 가게에서 핸드프린팅을 했다고 한다. 현재 달라이 라마의 핸드 프린팅은 다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는 게,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사진을 찍은 할머니의 설명이다.

여행 첫날 프라하의 몇몇 사람들과의 경험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프라하의 자연 경관과 문화유산마저 편견을 갖고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프라하성에 올랐지만, 성을 내려올 때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슴이 따뜻해졌다.

▲ 달라이라마의 사진을 상점 안에 걸어놓은 할머니. "사진이 예쁘게 나와야 하는데, 거 디지털이면 찍고 확인 좀 합시다!"
ⓒ 배을선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한 후 동유럽의 도시 중 프라하가 가장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단지 서유럽과 가깝기 때문에, 물가가 싸기 때문에, 볼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아름답기 때문에 관광객들을 많이 불러 모으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객의 개성을 가득 담아 대답하자면, 프라하의 미덕은 '소박함'에 있다.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대통령의 집무실, 작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카프카의 옛 작업실, 밖에다 내다 걸지 않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처, 그 밖의 작은 것들….

프라하는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작은 문화유산들을 잘 가꾸고 보존해오고 있다. 다만 관광용 가치가 높은 곳일수록 정부가 아닌 개인이 소유하고 관리한다는 점이 놀랍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 프라하에서 소박함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최고의 기념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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