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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매주 2차례에 걸쳐 [대안칼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안연대회의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8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3월말로 올해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주총 이슈는 소버린 등 외국자본들의 본격적인 경영참여 요구와 경영권 분쟁,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등으로 요약됩니다.

대안연대회의 정승일 정책위원은 ‘소액주주’와 ‘소수주주’를 구분해야 하며, 최근 소버린 사태는 기업의 장기투자나 고용안정보다는 ‘주식투자자’관리에만 집중하는 주주자본주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리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흔히 금융세계화의 파괴성을 말할 때 헤지펀드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뉴욕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와 런던의 시티(City)에 집중되어 있는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상업은행들, 그리고 보험사들이다.

최근 한미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미국의 시티그룹은 투자은행, 상업은행, 보험사를 포함하여 자산규모만 해도 한국의 금융자산 총계보다 더 많은 1조2000억 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금융자본이다.

또한 금융세계화의 추진세력에는 초대형 펀드들도 포함된다. 세계 톱 20 펀드사들은 14조 달러에 이르는 전세계 펀드자산의 절반이 넘는 8조 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자산규모는 2000억 달러(230조원). 1개 펀드가 우리나라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총자산규모(215조원)보다 더 큰 자산을 전세계 증시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초국적 금융자본이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한국에 무혈입성 하는 데에는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소액주주운동이 그러했다.

소액주주와 소수주주의 차이

소액주주운동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품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그것은 처음부터 소액 투자자들(즉 개미들)보다는 초대형 펀드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소액주주의 영어명칭은 ‘minority shareholders’로 정확히 말해서 ‘소액주주’라기 보다는 ‘소수주주’를 의미한다. 그리고 소수주주는 대주주를 제외한 모든 주주를 일컫는데, 그 소수주주가 억만장자 대액주주이건 소액주주이건 그것은 중요한 점이 아니다.

하지만 소수주주와 소액주주는 어의상 큰 차이가 있다. 가령 한국증시를 대표하는 SK텔레콤 과 삼성전자 주식을 보자. 1주당 20만원, 50만원이 넘는 이들 주식들은 대부분의 소액 투자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따라서 이들 우량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주체는 소액주주가 아니라 대액주주들, 즉 수백억, 수천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하는 외국계 대형 펀드들이다. 그런데 이들 펀드들은 분산투자 원칙을 지키는 까닭에 대부분 삼성전자나 SK텔레콤 주식의 5% 이내만을 보유한다. 즉 이들은 이들 회사에서 '소수주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소액주주권 강화 운동'을 통해 '소수주주'들의 권리가 강화될 경우 누가 가장 많은 경제적 혜택을 얻을 것인지는 명확하다. 바로 국내의 소액 투자자들이 아니라 외국계 대형 투자 펀드들인 것이다. 이것을 과연 '경제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요즘 한국증시에서 날로 투자 범위를 늘리고 있는 템플턴, 웰링턴, 헤르메스 등은 시민단체들이 쟁취한 소수주주권을 활용하면서 이른바 '주주가치 극대화'를 내세우고 있다. 과연 이들이 한국의 "경제 민주화"를 달성할 지원 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경제민주화인가, "시장의 독재"인가?

신자유주의의 선봉인 초국적 금융자본이 투자수익률 향상을 위해 각국에 '기업지배구조 개선', '회계 투명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한국과 같은 후발국에서는 자신을 '경제민주화'의 리더로 포장한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소버린 펀드의 SK그룹 공략에서도 논의 지형은 비슷하다. 분식회계 사건으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는 등 그룹의 기업지배권(경영권)이 약화된 틈을 타 소버린이 SK의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소버린은 재벌개혁에 요구하는 국내의 '진보적'인 경제민주화 여론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100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전 세계 증권시장에 투자하는 미국의 캘퍼스(CalPERs) 펀드가 전세계에서 벌이고 있는 '좋은기업지배'(Good Corporate Governance') 캠페인을 한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음으로 양으로 역할을 하였다.

먼저 소버린 측이 추천한 김준기 사외이사 후보는 좋은기업지배연구소의 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현재 힐스 기업지배구조연구센터 소장인데, 힐스는 바로 1990년대 내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로서 한국 정부에 대해 터무니 없는 통상압력을 가했던 그 콧대 높은 여인, 칼라 힐스이다.

또한 영국판 캘퍼스라고 할 수 있는 헤르메스(Hermes) 펀드는 이번 SK(주) 주총에서 소버린을 공공연하게 지지하였는데, 헤르메스는 캘퍼스와 마찬가지로 '좋은기업지배' 국제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소버린 사태가 던져준 교훈

주류 재벌개혁론자들은 소수주주권 강화와 주주이익 향상을 위해서라면 기업사냥 행위와 공조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번 소버린의 행위로 주식투자자들은 큰 이익을 얻고 있다.

소버린의 주식 매집 및 적대적 M&A 노력으로 인해 주가가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사냥꾼(company raiders)과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하나로 합치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수한 기업실적에도 불구하고 주식이 저평가된 기업을 주로 노리는 기업사냥꾼의 행위는 원리상 당연히 주가상승을 통해 소액주주들에게도 큰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은 적대적 M&A 소식을 환호로 맞이한다. 기업사냥꾼이 처음 등장한 미국에서는 전국소액주주협회 의장이 유명한 기업사냥꾼일 정도이다. 한국에서도 연일 적대적 M&A 테마주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소액주주들을 유혹하고 있다.

▲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 정승일 박사
ⓒ 오마이뉴스
오늘날 이른바 ‘시장원칙’ 즉 "주식시장의 전일적 지배 원칙"이 경제전반을 규율하면서 투자 감소, 성장 지체, 실업자 증대, 빈부격차 심화 등 심각한 경제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소버린 사태는 기업이 장기투자와 종업원 보호, 국민경제 기여에 전념하기 보다는 “주식투자자 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본격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또한 그것은 주주가치 자본주의 흐름을 이용한 금융투기 행위를 지금처럼 "경제민주화"의 이름으로 용인할 때 한국경제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해질 수 있는지를 알리는 전주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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