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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텐베르크 은하계>
ⓒ 커뮤니케이션북스
모든 미디어는 인간이 지닌 재능의 심리적, 물리적 확장이다. 바퀴는 발의 확장이다. 책은 눈의 확장이다. 옷은 피부의 확장이다. 전자회로는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마샬 맥루한, <미디어는 맛사지다>)

“자네들, 왜 젊은이들은 핫(hot)이라는 말 대신에 쿨 (cool)이라고 쓰지?”
“우리가 핫이라는 말을 쓰기 전에 당신들 기성세대가 그 단어를 다 써버렸기 때문이죠.”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핫의 세계 쿨의 세계,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

‘미디어는 메시지다’ 라는 유명한 선언을 했던, 미디어 비평 학자인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를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로 구분하고 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보면 ‘귀의 세계는 뜨거운(hot) 감각 과민증의 세계, 주술적인 세계인 반면 눈의 세계는 상대적으로 냉정(cool)하고 중립적인 세계’ 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의 이해>에 와서는 이를 전제로, 핫미디어와 쿨미디어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고 있는데 귀와 눈의 구분이 아니라, 한 가지 감각과 여러 감각의 활용 문제를 잣대로 쓰고 있다.

‘도구를 만드는 동물인 인간은 오랫동안 그것이 말하기든 글쓰기든 라디오든 간에 감각 기관 가운데 어떤 하나의 감각은 확장하면서 다른 감각이나 기능은 억압해왔다.’ (<구텐베르크 은하계>, 18쪽) / 5개 감각 중 어떤 하나를 강조하고, 그것이 전체 감각들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을 상승시키게 되면 우리의 5개 감각들간의 지배 비율은 바뀌게 된다. (같은책, 56쪽) / 문명은 야만적 혹은 부족적 인간에게 귀 대신 눈을 중요하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오늘의 문명을 전자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같은책, 59쪽)

그는 한 가지 감각에만 의존하는 매체를 ‘핫 미디어’ 라고 규정한다. 핫미디어란 라디오나 영화처럼 한 가지 감각에 집중하게 하여, 청취자나 관객의 참여도를 떨어뜨리는 배타적인 미디어를 뜻하며, 쿨미디어는 텔레비전이나 전화처럼 여러 감각의 활용을 이끌어 내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참여도를 높일 수 있게 하는 포괄적 성격의 미디어이다.

핫미디어가 나쁘고 쿨미디어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맥루한의 주요 저작들의 기본 전제가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중 ‘시각’의 패권화를 경계하는 것’ 이고 보면, 쿨미디어인 텔레비전이 핫미디어로 변질되는 것에 대한 경계 또한 포함돼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불필요한 자막을 지나치게 ‘보여’ 주어, ‘들을’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요즘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핫미디어의 성격에 가깝지 않을까.

교통법규 위반자들에게 교통사고의 끔찍한 장면이 담긴 교통질서 계도 영화를 상영한다면, ‘핫한 내용을 담은 핫한 미디어가 핫한 운전자들을 쿨하게 만들기 위함’ 은 아닐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는데,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핫미디어가 ‘주입’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쿨미디어는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웹은 쿨 미디어인가?

웹은 어떨까. 웹은 쿨한가? 핫한가? 먼저, 맥루한처럼 미디어의 개념을 확장해 보자. 그는 매체의 변화가 세계관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전기를 만들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전신(電信)’, ‘전광(電光)’ 이 등장하게 됐는데, 전신이나 전광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킨 미디어들이었다. 전기 미디어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경험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전신이 등장하면서 메시지(정보)가 메신저(정보 전달자)의 속도를 따라잡게 되는 ‘놀라운’ 일도 벌어졌다.

그의 선언 ‘미디어는 메시지다’에 비춰 본다면 전광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란 ‘세상의 전면적인 변화’ 였다. 전광은 세상을 바꿔놓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오게 한 ‘웹’ 또한 전광 같은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새로운 미디어가 기존 사회에 미치는 주된 영향은 가속과 붕괴이며, 가속에 의하여 모든 ‘의미’에 변화가 생긴다. 전광의 등장은 웹의 등장과 유사점이 많다.

웹은 쿨한가? 하는 질문은 전기불빛은 쿨한가? 하는 질문과도 같다. 전신이나 전광의 발명 이후 등장한 라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매체를 살펴보자. 라디오의 어떤 프로그램은 쿨할 수도 있고, 텔레비전의 어떤 프로그램은 핫할 수도 있는데, 각 미디어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으로만 본다면 라디오는 핫한 미디어이고, 텔레비전은 쿨한 미디어이다. 그럼, 이렇게 질문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포털사이트는 쿨한 미디어인가? 블로그는 쿨미디어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포털도 핫미디어이고, 블로그도 핫미디어다. 그럼 웹에서 쿨한 미디어는 무엇이 있나? 별로 없다. 왜냐하면 웹의 테두리 안에 있는 대부분의 미디어가 속성상 ‘시각’ 한가지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음악 파일이나 동영상 파일 등 멀티미디어 자료를 받아들일 때 청각을 활용하긴 하지만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 중 시각의 비율이 거의 압도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는 웹이 특히 시각적이라는 말도 되지만, 시각이 다른 모든 감각을 압도하고 억압하고 있는 근대 이후의 인간의 생활양식 안에 웹도 포함됐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대상을 접촉하는 방식

모든 미디어는 인간의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려는 적극적 힘을 갖게 되는데, 핫한 미디어이든 쿨한 미디어이든 모든 미디어가 일정 부분 메시지를 강요한다는 말이다. ‘미디어는 메시지’ 이니까. 문제는 사람들이 미디어를 얼마나 ‘촉각적’으로 대할 수 있냐는 점이다.

맥루한에 따르면 ‘촉각적’ 이나 ‘접촉’ 이란 말은 피부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감각의 상호작용, 여러 감각의 마주침이다. 다시 말해 촉각적이라 함은 여러 감각이 동원되어 대상에 접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핫한 미디어이든, 쿨한 미디어이든 상관없이 미디어를 통해 대상을 촉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새로운 충격이 인간에게 가해질 때마다, 모든 감각의 배분 비율이 변화된다. 오랫동안 한 가지 감각의 지배가 지속된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웹 미디어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공감각을 자극할 수 있을까.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설명처럼 ‘지혜’ 가 감각들의 집합적 상호 작용의 결과물인 반면 하나의 감각 작용으로만 이뤄진 것이 ‘지식’이라고 본다면, 웹은 지식의 공간에서 지혜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제임스 조이스는 <피네건의 경야>에서 “나의 소비자들이 나의 생산자들 아닌가?” 라고 말하고 있다. ‘나’에 ‘미디어’ 혹은 ‘웹 미디어’를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웹 미디어가 전달하는 대상을 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 핫한 웹에서 쿨한 미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 소위 ‘프로슈머’ 라고도 불리는 네티즌을 향한 화두처럼 들린다. 맥루한이 블레이크의 시를 인용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본다면, 세상과 접촉하려고 할 때 웹 미디어에만 주로 의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각기관이 다르면, 지각되는 대상들도
다른 것으로 보일 것이다.
지각기관이 닫혀 있다면, 그 대상들 또한
닫혀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 블레이크, ‘예루살렘’ ( <구텐베르크 은하계> 중 )


웹브라우저가 상용화되고 10년이 지났다. 맥루한이 경계한 것처럼, 웹도 시각의 패권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시각’의 패권화에 대해 그리고 웹 미디어에서의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 똑같은 미디어를 보거나 경험하더라도, 접촉하는 방식은 늘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미디어는 맛사지다>에 나온 유머처럼 말이다.

200인치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천문학자가 "비가 오겠다" 고 소리쳤다. 조수가 물었다. "어떻게 아십니까" , "내 발가락 티눈이 욱신거리거든."

덧붙이는 글 | * 참조 도서 : 
조너선 밀러 저 / 이종인 역, <맥루안>, 시공사.
마샬 맥루한 저 / 임상원 역, <구텐베르크 은하계>, 커뮤니케이션북스. 
마샬 맥루한 저 / 박정규 역,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마샬 맥루한 외 공저 / 김진홍 역, <미디어는 맛사지다>, 커뮤니케이션북스.


구텐베르크 은하계

마샬 맥루한 지음, 임상원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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