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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출판사
오늘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해 보니,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 황사가 올해에는 발생 빈도나 농도에서 사상 최악이 될 것이라는 환경부의 발표가 눈에 띈다. 휴교령을 내려야 할 정도로 황사가 유난스러웠던 2002년보다 훨씬 더 심각한 황사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 뉴스를 이곳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읽으면서 나는 잠시 아득해진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아름답게 피어나는 봄날의 화려한 빛깔과 소란스러움을 순식간에 덮어버리는 그 거대한 먼지의 장막이 기억의 저편에서 빠져나와 나의 시야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뉴질랜드라는 사실을 재빨리 상기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뉴질랜드는 먼지의 나라가 아니다. 확실히 뉴질랜드는 먼지 공해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깨끗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거의 집들이 대부분 잔디밭과 정원을 가꾸는 문화 덕택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깨끗하고 먼지 없는 나라인 뉴질랜드가 세계 수위를 달리는 천식 환자들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묘한 역설을 느낄 것이다. 한국의 장판 문화와는 다른 뉴질랜드의 카펫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한 이 역설의 중심에는 ‘먼지’라는 것에 대한 개념적 혼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고 하찮은 것들로서의 먼지들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들과 구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지프 어메이토의 매혹적인 책 <먼지 :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먼지’의 개념 혼동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조지프 어메이토는 이 책에서 일상생활에서 작고 하찮은 것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먼지의 어제와 오늘을 추적한다. 일상의 동반자로서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던 먼지들은 르네상스 이후 작은 것들을 다루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차 그 숨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과학기술의 급격한 진보가 이루어진 산업혁명 이후에는 ‘소우주’라 불릴 정도로 작은 것들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되었다.

그래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이었던 일상의 먼지는 이제 특수화되고 개별화된 존재로 바뀌었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의학, 유전공학, 미세공학 등의 연구 대상으로 낱낱이 분화된 작은 것들은 각 분야별로 관리되고 통제된다. 문명의 기반은 작은 것들에 대한 통제에 있다는 저자의 통찰은 여기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가 수 백 년 전 중세 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지프 어메이토는 누구인가

이 책을 쓴 조지프 어메이토는 미국의 미네소타 사우스웨스트 주립대학에서 지성사와 문화사를 가르치면서 농촌 및 지역학 학과장을 맡고 있다.

그는 다재다능하고 의욕에 넘치는 지성사 연구자이자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문화사 연구자로서 현대 프랑스 사상, 근대적 의식의 기원, 미국의 농촌, 솜엉겅퀴, 골프 등 천차만별의 주제를 가진 십여 권의 저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중 최근에 나온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기는 건 언제나 골프(그래서 우리는 골프를 좋아하지)>(1997), <미네소타 농촌 지역의 쇠락>(1993), <위대한 솜엉겅퀴 서커스 - 시골풍 어메리칸 드림 사고 팔기>(1993), <희생자와 가치 - 고통의 이론과 역사>(1990)가 있다.

1999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인 <먼지 :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는 LA타임즈 선정 올해의 베스트 넌픽션에 뽑히기도 한 수작이다. 여러 신문들이 이 책에 대하여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사회적이고 의학적이고 또 철학적인, 작고 보이지 않는 것들과 인류와의 관계를 조망하는 상쾌한 경험!" (워싱턴 포스트)

"이 책이 당신의 커피 테이블 위에 방치된 채, 제목의 유래가 된 물질-먼지-을 끌어모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시카고 트리뷴)

"도발적이면서도 잘 쓰여진 책. 더구나 멋스러운 중성지에 인쇄된 것은 부스러져 먼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인 듯......" (데일리 텔레그래프) / 정철용
그것은, 이렇게 작은 것들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광대한 넓이로 확장되었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그것을 따라갈 정도로 기민하지도 못하고 넓지도 못하다는 점에서 그는 해답을 찾는다. 언제나 모든 사물을 두들겨 자신의 신체 사이즈에 맞추는 인간의 상상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대인의 사고 속에는 언제나 두 왕국이, 즉 인체로 정의되는 작은 것들과 과학기술에 의해 창조되는 작은 것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이리하여 ‘먼지’라고 불리는 작은 것들은 유례없는 약속과 원초적인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최후의 변경’이 된다.

‘최후의 변경’이라는 그의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거기에는 묵시록적인 전망이 깔려 있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고엽제 살포를 비롯하여 체르노빌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수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인체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의 세계적 확산, 아직도 그 공포가 끝나지 않은 사스(Sars)와 조류 독감의 출현, 그리고 전 지구적 관심사로 떠오른 온실가스 배출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작은 것들이 지구상의 인류와 생명체들에게 미칠 수 있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에게 작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조지프 어메이토의 <먼지 :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의 진정한 책읽기가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은 후에 비로소 시작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먼지 :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Dust : A History of the Small & the Invisible)> 
조지프 어메이토(Joseph Amato) 지음, 강현석 옮김, 이소출판사 펴냄, 2001년 5월

이 기사는 인터넷 서점 YES24의 독자리뷰에도 기고했습니다.


먼지 - 작은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의 역사

조지프 어메이토 지음, 강현석 옮김, 이소출판사(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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