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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골마을 앞에는 서강이 흐른다.
ⓒ 이종원

삶의 무게에 짓눌린 도시인들은 하던 일을 집어던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일상 탈출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묵묵히 흘러가는 강을 보며 인내를 배웠고 힘차게 솟은 산봉우리를 보면서 용기를 배웠다. 바로 영월에 그러한 탈출구가 있었다. 동강, 서강, 주천강이 굽이치면서 만든 비경을 보면서 대자연 속에서 티끌에 불과한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영월군 남면 들골은 우직한 강원도 정서가 살며시 밴 곳이다. 그곳에 350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우구정 가옥이 있다. 거기서 하루 밤을 자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 우구정 가옥
ⓒ 이종원

우구정 가옥(강원도 문화재 자료 70호)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다. 깜깜할수록 별은 더욱 빛이 났다. '별세계'라는 말은 이런 하늘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주인장은 350년 된 고택의 안방을 내주었다. 사전에 연락을 드려서 그런지 진작 방에 불을 지펴 놓은 것이다. 방바닥이 하도 뜨거워 제대로 몸을 누일 수 없을 정도다. 자꾸만 윗목으로 올라가지만 그 열기는 방 끝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잔솔가지와 통나무로 불을 지피면 그 열기가 12시간이나 지속된다고 한다. 구들장의 진면목을 톡톡히 느끼게 된다. 몇 겹의 이불을 깔고 앉으니 그제야 앉을 만했다. 더덕술 가득 담은 술잔 부딪치는 소리에 겨울밤이 깊어간다.

▲ 아궁이
ⓒ 이종원

방바닥에 누웠다. 어찌나 뜨거운지 식은땀이 절로 난다. 등살은 뜨겁지만 찬 공기 때문인지 얼굴은 시원하다. 특히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황소바람이 횡 하니 몰려 들어와 짜릿함을 느낀다.

우구정 가옥 여행정보

1)위치: 영월군 남면 북쌍리

2)교통: 서울-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IC-38번국도-쌍용지나서 연당역 직전에 들꽃민속촌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3)민박: 방 한 칸에 3만원

4)문의: 033-372-5704/ 011-9419-5707 우수명씨

5)민속박물관: 무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게" 이런 구호를 따라 살아가는 곳이 한옥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뜰 수 있었다. 개 짖는 소리와 꼬끼오 소리에 움켜쥔 이불을 던지고 살며시 눈을 떴는데 방안 구석에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 덩어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350년 동안 수많은 메주들이 저 자리를 차지했겠지.

우구정 가옥의 추녀는 무척 길어 넉넉하게 보인다. 안채와 건넌방 그리고 사랑채를 두고 있는 'ㄷ'자 건물이다. 막돌 초석으로 기둥을 받치고 있어 자연미가 흘러나온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차돌처럼 아주 다부지게 보인다. 35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수돗가에 갔더니 물이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어젯밤 무척 추웠나 보다. 아궁이에 활활 타올랐던 나무는 숯덩이로 변해 있었다. 누런 황토벽에 손을 대었다. 강원도인의 심성을 말해주듯 그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진다. 수돗물이 얼어 무쇠 솥에서 물을 퍼내 세수를 했다.

"아, 좋다." 황토벽엔 시래기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된장을 풀어 만든 시래기국이 눈에 아른거린다.

▲ 아늑한 부엌
ⓒ 이종원

부엌문을 살며시 열었다. 한옥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 부엌이 아닐까? 어린 시절 부뚜막에 걸터앉아 할머니가 건네주신 누룽지 맛을 어찌 잊을까? 들창을 통해 들어온 아침볕이 시커먼 솥을 비추고 있다. 바라만 봐도 넉넉한 곳. 우리네 부엌이다.

▲ 반닫이 농
ⓒ 이종원

반닫이농이 마루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세밀하게 조각된 경첩이 눈에 들어온다. 농 위에 전기밥솥이 놓여 있다. 저 놈의 전자제품은 이곳 두메산골에도 어김없이 찾아 들었구나.

우씨 집안은 들골마을에서 10대를 이어오면서 살아왔다. 한때 머슴까지 거느리면서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에 순응해서 그런지 소박하고 우직하게 살고 있다. 서울 사람이 수억원의 돈을 줄 터이니 집을 팔라고 해도 주인장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조상이 물려주신 가옥을 어찌 팔겠습니까? 이 집은 우씨 집안의 뿌리지요." 순리대로 살아가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한다.

▲ 사랑채
ⓒ 이종원

깔끔한 사랑채다. 일체의 장식이 없이 순박하고 아늑한 맛이 우러난다.

▲ 강둑에서 바라본 들꽃 민속촌. 좌측이 우구정 가옥이고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들꽃민속촌이다
ⓒ 이종원

들꽃 민속촌

고택 옆은 바로 들꽃 민속촌이다. 93년 지금 주인인 권정인씨가 근처의 농가를 사들이면서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어릴 때부터 민속용품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삼더니 기어코 이렇게 아기자기한 민속관을 만들어 어릴 적 꿈을 실현했다.

▲ 마을 입구에 벅수가 자리잡고 있다.
ⓒ 이종원

민속촌 입구에 벅수(장승)와 비석이 버티고 있다. 돌마다 하얀 서리를 뒤집어쓰고 있다. 품고 있는 미소가 참 정겹다.

▲ 느티나무 밑에서 차를 음미 할수 있다.
ⓒ 이종원

들꽃민속촌에는 항아리가 참 많다. 항아리 의자에 앉아 녹차 향을 음미하며 서강을 바라보는 맛이 그윽하다.

▲ 민속박물관
ⓒ 이종원

민속품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소장품이 있는 줄 몰랐다. 축사를 개조해 만든 전시장에는 농기구, 토기, 뒤주, 장신구와 심지어 축음기까지 보인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의 꿈꾸던 고향이 있을 것이다. 그곳과 아주 닮은, 강원도 산골 마을로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종원기자의 홈페이지:http://cafe.daum.net/mon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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