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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난방이 안 되는 집을 탈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윗목에 놓아 둔 요강이 얼고 입김이 하얗게 서리는 시골집에서 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온돌방은 등이 뜨뜻해서 견딜 만했다. 그런데 상하이의 가옥구조에서는 도무지 등이 시려서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남의 나라 와서 뭘 그리 호사하겠다고 반년만에 이사를 가느냐며 아내는 반대를 했다. 하지만 몸이 안 편하니 마음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 견디다 못해 바닥에 보일러가 깔린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사실 외국에서 이사하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다. 예상은 했지만 사사건건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첫번째 복병은 에어컨 설치였다.

▲ 아파트 외벽의 에어컨. 상하이에서 에어컨은 냉방뿐 아니라 겨울 난방용이기도 하다.
ⓒ 오기현
중국 에어컨은 냉난방 겸용이다. 온도를 낮추면 냉방용이고 온도를 높이면 난방용이 된다. 집을 지을 때 난방시설이 안된 상하이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옷을 많이 껴입고 겨울을 나지만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에어컨을 켜고 추위를 이긴다. 비록 바닥 난방이 있더라도 급할 땐 에어컨을 켜면 온풍이 나와서 금방 방안이 따뜻해진다. 그래서 상하이에서 에어컨은 겨울 필수품이다.

"에어컨 설치하러 왔습니다"

이사 오는 날 아침 네 명이나 되는 장정들이 짐을 옮기느라 분주한 집안으로 들어왔다.

"에어컨은 왜 안 가지고 왔죠?"
"아니, 에어컨이 아직 안 왔습니까?"

장정들은 다소 당황한 빛을 보이더니 돌아갔다.

"에어컨 왔습니까?"

저녁때가 되어 그 사람들이 다시 왔다.

"아니 에어컨을 또 안 가지고 왔습니까?"
"에어컨을 우리가 왜 가지고 옵니까? 우리는 설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투덜거리면 다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비로소 에어컨이 배달되었다. 그때 마침 아내와 나는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나와 있었다.

"여보세요? 미안합니다. 지금 시장 보는 중인데 설치하고 있으시죠. 빨리 갈테니…."

"설치는 설치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시고 확인증이나 주십시요."
"아니 설치하는 사람들이 같이 안 왔단 말입니까?"
"바빠서 기다릴 틈이 없습니다. 확인증 안 주시면 우린 물건 가지고 그냥 갑니다."

화가 나서 에어컨을 판매한 가게에 항의전화를 했다. 그때 비로소 판매회사, 배달회사, 설치회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판매회사가 양쪽에 연락을 해서 시간안배를 잘해야 하는데 마침 설대목이어서 일이 밀려 소홀히 한 모양이다.

답답하면 소비자가 배달회사와 설치회사 양쪽에 미리 연락을 해서 시간을 잡아 줘야한다. 그리고 회사가 달라 배달사고 방지를 위해 배달확인증이 필요했던 것이다.

▲ 시가의 10배를 요구한 에어컨의 전기플러그
ⓒ 오기현
그 다음날 아침 에어컨이 배달되었고 우리는 확인증을 끊어줬다. 오후에는 설치하는 사람들이 세 번째 방문하여 비로소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스텐드형 에어컨을 설치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전기를 연결하려면 콘센트에 연결하는 플러그가 필요합니다. 전선은 줄 수 있지만 플러그는 소비자가 준비해야 합니다. 플러그를 구해오세요."
"아니 지금 갑자기 어디 가서 플러그를 구해옵니까?"
"차오스(超市 : 슈퍼마켓)에 가봐요."

여기서 더 이상 따지고 들어본들 시간낭비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딴 데 있다. 결국 나는 그들이 가지고 온 플러그 꼭지 하나를 시가의 열 배 가량이나 비싼 30위안(4500원)을 주고 샀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에어컨의 수분을 밖으로 빼내는 고무호스가 짧아서 배수파이프까지 연결이 안 된다고 한다. 아파트 구조가 잘못되어서 긴 호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를 내어본들 그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호스는 어디에서 팝니까?"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건재상에서 팔겠죠."

▲ 난방이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 오기현
자신들이 준비를 소홀히 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룬다. 당장 구해오지 않으면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한다. 결국 에어컨 설치하는데 4일이 걸렸다. 그 다음날 호스 값으로 40위안(6000원)을 따로 지불했음은 물론이다.

침대는 배달 중에 사고가 났다며 약속 날짜보다도 열흘 뒤에나 갖다주겠다고 하고, 인터넷을 새로 개통하는 데도 3일이 걸렸다. 중국에 온 선배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들의 '만만디' 정신을 유의하라고 했다.

조급하게 서두르다간 중국사람들과의 거래에서 실패한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고 남의 사정은 조금도 고려 않는 그들을 상대하려면 우리도 느긋하게 마음을 먹어야 속이 뒤집히지 않는다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상하이에서는 여기에다 특별히 이들의 약빠른 장사 속을 경계해야한다. 상하이 출신의 작가인 위치우위(余秋雨)는 상하이 사람들이 영악하고 거만하며 계산이 빠르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지방사람들이 상하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하이에 외국인들은 돈을 싸들고 찾아온다. 외국인들의 재투자 선호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작년 상하이의 대외무역수출입은 110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상하이 항구의 컨테이너 처리물량은 부산을 제치고 세계 3위로 뛰어올랐다. 1642만 명 상주인구의 1인당 GDP도 4600달러에 달한다.

'만만디 정신'과 '약삭빠름'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이런 기록이 나오는 것인지 나로서는'백만불짜리 미스터리'이다. 하여튼 상하이인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이들의 다중적인 심리구조를 파악해야한다. 그들보다 더 배포가 크고 더 약삭빠르지 않는 한 사업은커녕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방송PD연합회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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