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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항용 맞닥뜨리게 되는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시간'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시간 없는데", "나 지금 바빠", "그렇게 한가하냐" 따위 표현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만큼 시간은 언제나 우리들 곁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거의 언제나 시간의 영향이나 하중을 경험하고 있다.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체 가운데 인간은 시간을 의식하고 그것과의 대면과 대화 혹은 대결에 익숙해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러므로 시간을 배제한 인간의 생애는 현실적으로나 관념적으로나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할 도리밖에 없다.

<시간의 발견>(The Discovery of Time)은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여 인간이 경험하고 인식해 온 '시간'을 주제로 여러 연구자들이 저간의 성과를 묶어서 펴낸 책이다. 이 저작에는 고천문학자부터 리듬 연구소장과 시간 심리학자 및 고전 연구자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여덟 사람이 참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얼굴을 다양한 생각과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레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시간의 발견>에 허여된 첫 번째 미덕이다.

이 저작에서 우리는 적지 않은 유쾌한 상식을 얻게 되는데, 예를 들어 영어로 표기되는 1년 열두 달의 이름에 대한 설명을 들 수 있겠다.

"January, February, March, April, May, June, July, August,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 여기서 살펴보면, 1월부터 6월까지는 로마의 신이나 축제의 이름에서 따왔고, 7-8월은 황제의 이름(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서, 9-12월은 숫자에서 따온 것이다." (101쪽)

재미있는 것은 septem, octo, novem, decem은 라틴어로 7, 8, 9, 10을 의미하는데, 7-8월의 이름에 황제들이 끼어 드는 바람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어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절대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대목이다.

<시간의 발견>에 담겨 있는 미덕 가운데 하나는 저자들이 '문화제국주의' 관점에서 멀리 비켜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특히 제5장 '고대의 다양한 시간개념'에서 필자 러글스는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사회들을 우리 사회에(여기서는 서구사회-김규종) 비추어 판단하거나, 우리가 이룬 업적을 잣대로 다른 사회의 발전 정도를 재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는 수많은 인간 사회들이 나름대로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토대로 환경에 어울리는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138쪽)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인식된 서양에서의 시간은 매 시기 다양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다가왔는데 이것은 특히 고전 그리스 시대와 르네상스 시기에 매우 대립적인 모습을 취했다고 전해진다.

"고전시대에 해시계를 들고 있는 날개 달린 쾌활한 젊은이로 묘사되었던 시간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파괴와 쇠퇴의 피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냉혹한 노인으로 바뀌었다."(155-156쪽)

시간에 대한 명징한 인식과 사유가 불필요했던, 저 풍요롭고 넉넉한 고전시대의 시간이 해시계가 일반화된 로마 시대를 거쳐, 14-17세기의 상인의 시대를 지나면서 어떻게 그것의 본질적인 개념이 바뀌었는지를 명시적으로 웅변하는 내용이 바로 위의 인용문이다.

그 후 일상에서 시간을 측정하고, 시간에 맞추어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정밀한 시계에 대한 욕구가 팽배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시계산업은 급속한 진전을 이룩하게 된다. 이런 바탕 위에서 21세기에 과학자들은 100억년에 1초의 오차 밖에 나지 않는 '이온 트랩 (ion trap)' 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도들은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동일한 시간관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고전 그리스와 동양에서는 순환적인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부문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제9장 '먼 시간으로의 여행'은 본질적으로 직선적인 시간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 내부의 시계'에서 필자는 시간이 어떻게 지각되는지를 인간이 처한 다양한 물리적 정신적 상황과 결부하여 해명하려고 노력한다. 이상과 같은 여러 자료들을 기초로 마지막 장 '시간에 관한 수수께끼'를 집필했는데 여기서 필자는 '시간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투스, 칸트에 이르는 철학자들의 사유와 저작에 기초하여 필자는 시간에 내재된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유쾌한 형식으로 제기한다. 필자는 이 중 제논의 역설을 제기하는데 이를 계기로 나는 예전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기도 했다.

문제는 시간이 시간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공간과 상호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발견 - 휴대폰 소녀 밈의

조정화 글, 퍼니이브 그림, 세종서적(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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