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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무의도를 찾았다.

그 비싼 공항고속도로 통행료를 지불하고 무의도를 찾아간 이유가 있다. 아이들에게 넓은 바다와 예쁜 산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걸 봐야 이번 겨울을 날 것 같아서다. 아이들 핑계를 대었지만 실은 내가 바다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 곤하게 자고 있는 아이들을 뒷자석에 고이 누이고 시동을 걸었다. 영종도에 도착하니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서해에서 일출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오전 7시 30분 배가 첫배다. 차를 싣고 배에 올라탔다. 섬이 바로 앞에 보인다. 건너는데 5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배삯이 왕복 2만원이 넘어 가슴이 철렁했다.


▲ 축구 골대 위의 갈매기
ⓒ 이종원
무의도는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넓이도 무려 288만평이나 된다. 논과 밭도 보인다. 남자는 배를 타고 고기를 잡고 여자는 뻘에 나가 조개를 캐고 밭을 일구며 조용히 살아가는 곳 무의도. 그러나 영종도에 신공항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그곳을 조용한 섬dl 아니었다. 곳곳에 팬션이 지어지고 식당은 날로 늘어만 간다.

몇 년전 나는 인천연안부두에서 무작정 무의도행 배를 올라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한적한 어촌이었다. 고요한 바다는 내 고민을 들어주었고 말없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서 무의도는 늘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무의도란 이름은 말을 탄 장군이 옷깃을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이 마치 춤사위를 하는 춤꾼처럼 보여 붙여진 것이란다.

평일이고 이른 시간이라 섬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다. 한적하게 해안도로를 내달렸다. 겨울에 자리를 내주기 억울한지 가을은 마지막 몸부림을 보여줬다. 붉은 단풍이 섬을 가득 덮고 있기 때문이다.

▲ 해변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 갈매기
ⓒ 이종원
빨리 바다를 보고 싶은 심정에 '하나개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이름만큼이나 예쁜 곳이다. 이른 시간에 와서 그런지 해변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다. 철 지난 방갈로만이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밀물 때라 그런지 반쯤 잠겨진 축구골대는 갈매기 차지다. 그곳에 앉아 따사로운 아침햇살을 쬐고 있다. 오늘은 파도도 없다. 바다라기보다 호수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성수와 함께 해변을 거닐었다. 모래를 밟는 촉감이 좋다. 이 멋진 풍경을 아이들과 함께 보게 되어 무척 기쁘다. '나는 멋진 아빠야.' 라고 스스로 자찬도 해본다. 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성수도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 가보다. 때이른 인생설계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침 휴식을 즐기는 갈매기에게 우리는 불청객이다. 갈매기 떼를 보고 고함을 질렀더니 그 많은 새가 일제히 비행을 한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갈매기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다시 차로 달려갔다. 아직까지 누나 정수는 자고 있다. 누나는 이곳이 섬인지도 모른다. 안방에 자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왔으니….

"정수야, 빨리 일어나"
" 앙, 가기 싫어"
"그럼 여기 있어. 여우한테 물리게…."
그제서야 정수는 차안에서 끼적끼적 기어 나온다.

무의도에서 최고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호룡곡산(244m)에 오른다. 사람의 손을 잘 타지 않아서 그런지 곳곳에 원시림이 자리잡고 있다. 자연체험코스도 있어 중간중간에 아이들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바다바람 때문에 나무는 크지 않지만 무척 억세고 옹골차다. 의외로 경사가 깊다. 거친숨을 내 쉬고 뒤를 돌아보니 바다가 보인다.

▲ 하나깨 해변의 예쁜 집
ⓒ 이종원
저 멀리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팬션도 보인다. 호랑이 바위가 나온다. 호룡곡산이면 용바위도 있을 것이다. 빨리 찾아봐야겠다. 용은 보이지 않고 한 무더기의 꿩 떼를 만났다. 꿩이 내는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봉황의 소리인줄 알았다.

정상근처에 약수터가 있다. 암반에서 물이 졸졸 새어 나온다. 섬인데가 이렇게 높은 곳에 약수터가 있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찌나 시원하던지….

"정수야..물 맛 좋지?"
"물맛은 좋은데, 바가지가 더럽더라구…."

▲ 호룡곡산에서 바라본 바다
ⓒ 이종원
정상에 올랐다. 땀이 목줄기를 타고 내려온다. 성수까지 메고 올라오느라고 힘에 부쳤지만 확 트인 경치를 보고 있으니 그 짧은 고통이 한 방에 날아간다. 활처럼 휘어진 하나개 백사장과 실미도가 보이고, 용유도와 영종도도 손에 닿을듯하다. 인천공항엔 쉴새없이 비행기가 들락거리고 있었다.

▲ 해무 뒤에 희미하게 영흥도가 보인다.
ⓒ 이종원
뒤를 돌라보니 해무 사이로 영흥도가 힐끔 보인다. 바다도 아름답지만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 입은 가을산도 나무랄데 없이 황홀하다. 이렇기 때문에 호룡곡산을 극찬하는구나.

하산하려는데 정수가 배고프다고 보챈다. 새벽에 출발하느라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정수야, 조금만 참아."
하산하다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구마를 까먹는 등산객을 만났다.

"아저씨, 나 배고픈데…. 우리 아빠가 그냥 참으래요"
그 소리 듣고 고구마 안 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빠 것까지 얻어왔다.
"잘했어 정수야…."

▲ 마을 사람들이 삶의 터전인 갯벌로 향하고 있다.
ⓒ 이종원
하나깨 백사장으로 다시 내려오니 그 많았던 물이 하나도 없고 해변은 갯벌로 변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분주히 삶의 터전인 뻘로 향하고 있었다. 썰물 때 8km나 빠진다는 말이 맞나보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경운기를 타고 다녔을까?

아이들과 하염없이 걸었다. 바다에서 게도 만나고 소라도 만났다.
두 마리가 붙어 있는 게가 있어요. 정수가 그걸 보고….

"야 너희들 짝짓기 하지마"
"정수야 짝짓기 하게 내버려 둬…. 그래야 애기 게가 생기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해파리도 죽은 듯이 앉아 있다. 정수가 조심스레 다가가 건드려 본다. 아이들에게 뻘은 마술처럼 신기한 곳이다.

뻘을 대략 2킬로미터 걸었을 것이다. 해변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저 멀리 말뚝이 박혀 있다. 물이 빠지면 이곳에 걸쳐진 그물에 숭어나 망둥이가 걸린다고 한다. 얼마나 쉬운 고기잡이인가? 매년 맨손으로 숭어잡이 행사도 이곳 하나개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 아이와 함께한 갯벌 체험
ⓒ 이종원
"심봤다."
정수가 무지 큰 조개를 캤다.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빠는 골뱅이를 캤다. 두 개를 들고 어찌나 웃었는지…. 아마 심마니의 기쁨도 이런 맛일 거야.

성수는 피곤한지 골아 떨어졌다. 아무 곳에서나 피곤하면 자는 아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 장면 같지 않은가?아기는 뻘에다 재우고 누나는 조개 캐서 학비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뻘에서 정수와 아빠는 한바탕 노래시합을 벌였다. 진흙을 얼굴에 묻히고 부르는 노래 소리엔 뻘의 자양분까지 묻어있어 더욱 신명이 난다.

▲ 실미도
ⓒ 이종원
하나개에서 선창가로 가다보면 실미도 넘어가는 고개가 나온다. 요새 이곳에 예쁜 집이 많이 지어졌다. 포도밭을 지나면 실미도 유원지가 나온다. 이 곳의 소나무 숲이 일품이다. 솔향이 코끝을 스쳐가면 저절로 눈이 감긴다. 이 곳에서 한 숨 자면 정말 개운할 것이다.

바다 건너 섬이 '실미도'다. 그 유명한 북파공작원 양성소인 것이다. 저렇게 아늑하고 한적한 섬에서 살인기술자를 양성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분단이 낳은 비극이랄까? 희생당한 그들을 넋을 위해 기도해본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진다. 그 때 건너갈 수 있다.

▲ 제 아이들입니다. 바다바람 때문에 성수는 감기 걸렸나 봅니다. 콧물이..
ⓒ 이종원
실미해수욕장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오죽했으면 성수가 그걸 먹으려 들었을까…. 이곳 역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새 힘이 빠졌는지 아무도 뻘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새벽에 왔지만 어느덧 석양이 길게 늘어진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정수야, 성수야…. 우리 열심히 살자."

▲ 실미도 갯벌과 갈대
ⓒ 이종원
이제 무의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갈대도 아쉬운지 손을 흔들어 준다. 무위도, 가족과 함께 꼭 가볼 만한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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