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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란 주제의 강연차 5일간 방한했다.
ⓒ 한국철학학회
지젝이 왔다. 그런데 과연 온 것인가. 자연적 실체로서 그는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여 몇몇 강연을 진행 중에 있다. 오긴 온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니 오래 전에 도착하였으나 그 학문적 실체가 제대로 구성되거나 조명되지 않았다. 상상적 실재로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을 뿐, 지젝은 늘 오고 있는 중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사상계의 거목에 대한 탐사가 손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가 단순히 '철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최신의 서구 철학계(이 용어에 대하여 지젝은 거부하겠지만)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어마어마한 질량을 압착한 한 권의 사유물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지적 바탕이 없고서는 그의 저작, 심지어는 목차조차 도대체 어떤 사유의 그물로 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플라톤에서 코소보 사태까지, 구조주의에서 공포소설까지, 그저 두루두루 아울러서 지식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거의 한 문장 속에 동시에 출현시켜 그 자체로 세계의 복합성을 문자로 드러내버리는 지젝의 사유는 전공자는 물론이거니와 '국영수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의 인문 환경에서는 도무지 해독 불가능한 암호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젝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는 박학다식한 동구권 학자'에 머무르고있다.

방한한 지젝, 하지만 그의 학문은 여전히 오고 있는 중

두번째 이유로는 성실하지만 부주의한 번역물과 불성실하고 빈약한 오역물이 지젝에 대한 관심을 차단시킨다. 문학과 영화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그 착오를 가려낼 수 있을 <환상의 돌림병>(인간사랑)이나 <향락의 전이>(인간사랑)의 오역은, 저작권법에 따라 다른 이가 좀더 섬세하게 번역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지젝의 저작에 대한 리뷰를 쓴 '로쟈'씨가 작년 12월 말에 쓴 내용에 따르면 <향락의 전이>(인간사랑)의 경우 "일반 독자가 이 교양서를 읽어낼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지젝의 작업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역서는 짜증만을 불러일으키며, 처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독자들에겐 고역만을 선사한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은 원래 초역판이 2001년 7월에 출간되었다가 번역 과정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2002년 9월에 '개역판'으로 내면서 책값을 무려 9000원이나 인상하여 하드커버로 출간하였는데, 의미있는 교정과 보완은 전무하다는 것이 로쟈씨의 의견이다.

세번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인 이 세계의 불가해한 속성 때문이다. 그의 저작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것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의 실례이다. 현대사회의 본질은 (그것이 미국이든, 이라크든, 슬로베니아든, 한국이든) 기본적으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인 억압적 융합과 긴장과 대립에 따라 매우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현상 속에 감춰져 있으므로 그 실체에 대한 접근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이론적 바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의 말대로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의 억압은 사라지거나 축소되지 않고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다. 그리고 '귀환'한다. 다양한 시선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지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세 권의 책

ⓒ 박형숙
지젝과 더불어 사색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괴롭다. 누구보다 소통을 열망하는 학자지만 우리의 허약한 지적 기반은 의미있는 최소한의 소통, 곧 '독서'조차 불편하게 만든다. 지젝은 말한다. 현대는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아편을 대신한 마리화나, 사이버 섹스 등 실체가 없는 가상현실에 대해 열망'한다고.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현대는 혁명, 테러리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등 '실재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따른 근본주의적 충동'에 사로잡힌다고 지젝은 말한다. 따라서 그 사이 제3의 길, 곧 자유·다양성·인권·관용 등의 민주적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만 따로 추스르고, 그 정치적 발언록의 즙만 짜낼수록 지젝은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므로 세 권만 따로 추려 읽도록 하자.

한국인이 쓴 지젝 해설서
<잉여쾌락의 시대>

지젝의 방한에 맞춰 그의 '어려운' 저작들을 다이제스트한 책이 나왔다.

'지젝이 본 후기산업사회'라는 수식을 달고 있는 <잉여쾌락의 시대>(문예출판사)는 지젝이 바라보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안내서 역할을 한다. '잘 안 읽히는' 지젝의 번역서들에 질려 포기하기 전에 이 책으로 지젝의 학문체계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도 좋을 듯.

저자인 권택영 교수는 서문에서 "세상을 똑바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너무 흥분하지 말라"는 지젝의 경고를 인용하고 있다. / 박형숙 기자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김소연 옮김). 홀로코스트, 후천성 면역결핍증, 체르노빌,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를 성찰하는 지젝의 진지하면서도 날렵한 시선이 충만한 저작이다. 라깡식 판독법으로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경쾌하게 드러내준다.

<항상 라깡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 김소연 옮김). 지젝이 영화학자들과 더불어 라깡의 정신분석학 방법론으로 히치콕의 영화를 분석한 책이다.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골고루 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히치콕 영화의 분석을 통해 현대 사회의 주체 형성을 다루고 있다.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한나래. 주은우 역). 할리우드로 집약되는 현대 대중문화의 풍부한 사례를 통해 라깡을 재구성한다. 라깡을 사이에 두고 푸코, 하버마스, 롤스 등이 얽힌다.

"탈이데올로기 아니다, 맑스 교훈 지금도 유효"
'240만원짜리' 강의하는 지젝의 매력

▲ 강연이 끝난 뒤 지젝이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형숙
7일 지젝의 첫 강연이 있던 서울대 박물관 강당은 일찌감치 모든 좌석이 찼고, 계단도 모자라 서서 보는 사람들까지 총 350명 가량이 강연장을 메웠다.

'실제의 열망, 가상의 열망'이라는 주제의 지젝 강연은 3시간 가량 이어졌고, 질의응답과 사인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시간은 더 지연됐다. 더욱이 지젝은 말이 많았다. "주변의 사례를 동원해 설명하는데 거의 천재적인 재능가"라는 말처럼 지젝은 미리 배포된 강연문을 벗어난 즉흥적인 말들을 토해내 통역자의 정신을 빼놓았다.

지젝의 고급독자층(헤겔, 라캉, 프로이트 연구자)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젝을 찾는 사람들'이 꼽은 그의 매력은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해준다"는 데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들쑤셔 놓는다는 것.

가령 이날 강연회에서 지젝은 행복의 개념을 "우리가 진짜로는 원하지 않는 대상을 꿈꾸는 위선적 행위"라고 뒤집었고, 또 관용은 "타자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의지로 수용이나 포용이 아닌 보호와 경계의 심리"하고 못박았다. 따라서 제3세계 기아에게 매달 3달러를 기부하는 것은, 기실 제3세계를 내 현실 저 편에 묶어두려는 행위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젝 강연일정을 관리하고 있는 김선욱 교수(숭실대. 정치철학)는 지젝의 매력에 대해 "헤겔, 맑스, 프로이프, 라깡 등의 어려운 이론들을 영화, 만화, 일상영역의 대중코드로 설명한다"는 점을 들었다. 김 교수는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말도 있지만(물론 한반도는 예외) 지젝에 따르면 단지 그렇게 보여질 뿐, 이데올로기는 일상 속에서 인간행동의 틀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령 지젝의 그 유명한 '변기'의 예를 들면, 미국·독일·프랑스의 변기구조가 다른 것은 각각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했기 때문. 가령 독일의 변기는 변이 떨어지는 걸 앞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독일인의 사변적·형이상학 태도를 반영한 결과라는 얘기다. 지젝은 "이데올로기는 전처럼 강압적이지는 않아도 우리의 일상적 삶에 녹아들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김선욱 교수는 지젝에 대해 "동구권 몰락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화 체제 내에서 저항의 동력을 찾아내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고 평가하면서, 오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소프트혁명의 시대'를 주목하라고 권한다. '소프트혁명'이란, 가령 영화기술의 발전처럼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실제(제3세계 전쟁)를 가상(영화)으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따라서 실제는 "어떤 악몽의 출현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는 장면이 단적인 예다.

지젝은 이날 강연회에서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금이 탈이데올로기 시대라고 전혀 생각지 않으며, 맑스의 교훈대로 이데올로기는 추상적 사상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실제행위"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주도의 이데올로기에 좌우된다는 점을 덧붙였다.

한편 지젝 학문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라깡 등에 대한 출판 인프라가 빈약한 우리네 인문학 풍토에서, 그들을 '뛰어넘는' 지젝에 대한 과도한 열광은 또 다른 '지적패션'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5강좌를 하게 되는 지젝의 강연료는 약 1만 달러(우리 돈 1200만원). 인구 200만명, 국민소득 1만불의 슬로베니아 출신 지젝(55)은, 현재 류블랴나대학 교수로 적을 두고 있지만 학생들은 가르치지 않고,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로 돌면서 강연과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 박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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