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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휴가철이면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 좌석이 매진되고 국내의 유명콘도의 객실이 모두 동이 나서 미리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방콕행(?)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곤 한다.

그렇다면 항공사나 콘도업체는 분명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을 터인데, 얼굴을 보면 울상이다. 비행기 좌석과 콘도의 객실을 예약한 사람들이 아무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서 빈 좌석과 빈 객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른바 예약부도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되었으니 속이 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예약문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도 이처럼 아직껏 정착이 안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미흡해 보인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인데, 에드워드 홀의 <생명의 춤>을 읽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에드워드 홀은 시간을 체계화하고 사용하는 방식을 모노크로닉한 시간체계(M-타임)와 폴리크로닉한 시간체계(P-타임)로 구분한다. M-타임은 북유럽에서처럼 일을 각각 분리된 항목으로 나누어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도록 스케줄을 짜는 방식이며, P-타임은 '몇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지중해식 모델에 따른 방식이다.

즉, M-타임이 스케줄에 의해서 통제되는 일 중심의 빡빡한 시간체계라고 한다면 P-타임은 미리 정해진 스케쥴을 고수하는 것보다는 인간관계와 완성된 업무처리를 중시하는 보다 느슨한 시간체계라 할 것이다. 예약은 미래를 선점하여 스케줄에 편입하는 과정이기에 분명 M-타임에 기반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의 시간체계는 P-타임에 훨씬 가까워서 M-타임에 기반하는 예약문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시간체계에서는 예약문화의 미덕인 신속함(빨리 예약하면 더 좋은 자리를 얻는다)과 정확함(예약을 준수하며 약속한 시간은 지킨다)이 부정되기가 쉽기 때문에(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연줄이 있으면 막판에라도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예약문화가 쉽사리 정착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설령 예약을 했더라도 그것이 남이 확보할 수도 있었던 자리를 내가 확보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며, 예약을 가볍게 여기는 이러한 태도가 사전 연락 없이 예약을 부도내는 결과를 낳는 것이리라.

시간을 체계화하고 사용하는 방식은 비단 예약문화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친 통찰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시간은 에드워드 홀의 문화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연구대상이 된다. 에드워드 홀이 그의 문화인류학 4부작의 완결편인 <생명의 춤>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서양(미국)과 동양(일본)의 시간체계 분석을 통하여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인, 미국인의 시간체계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같은 서양문화권 내에서도 시간체계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그의 '문화학'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경험 가운데 가장 사적인 것으로서의 시간, 즉 경험으로서의 시간을 다루는 순간 '인간학'으로 변모한다.

그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측정가능하고 단편화된 시간보다는 인간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리듬에 의해 경험되는 시간이 문화를 이해하는데 훨씬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문화란 인간의 연장물의 총화이며 연장물은 인간으로부터 기원하기에, 인간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이야말로 바로 시간의 본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접어놓은 페이지들

내가 다루는 주제는 계몽에 이르는 많은 길 중 하나가 자신의 발견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자기와는 다른 남들을 진정으로 알게 될 때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29쪽)

르네상스 시대 이전에는 신(God)을 음 또는 진동으로서 상상했었다. 그것은 한 민족의 리듬이라는 것이 인간을 함께 엮어주는 모든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임을 입증해줄 수 있는 것이기에 이해가 가는 일이다. 사실 나는 인류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로 표현될 수도 없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감지될 수 있는 리듬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는 그 리듬의 바다로부터 느끼기는 하지만 아직 음악으로 표현되지 않은 리듬을 끌어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능력을 참으로 지닌 듯한 작곡가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준다.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시인 역시 같은 일을 한다.(261쪽)

백인은 모든 것을 대문자 또는 그에 필적하는 것(결혼식, 의식, 취임식 등등)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누구나 일이 시작된 특정한 시점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커다란 리듬을 음악의 경우를 들어 살펴보면, 우리의 음악은 육상경기의 출발을 알리는 피스톨처럼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더불어 시작된다. 사실 베토벤의 제5교향곡의 제시부(타타타 타-)가 강렬한 충격을 주는 이유는 구미 전통의 핵심에 있는 지배적인 테마와도 너무도 일치하기 때문이다.(288쪽)

일본문화와 구미문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단 하나의 중요하고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구미인들에게는 시간이 외부로부터 부과된 것이며 스케줄이나 신속성과 같은 가치가 아무리 내재화되었다 해도 우리의 기본체계는 개인의 외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정반대라는 점이다. 일본인의 시간은 개인의 내부에서 출발한다.(324-325쪽)
따라서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생명의 춤, 즉 리듬을 읽어내는 일은 바로 문화의 지형도를 파악하는 일과 바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직도 너무나 적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경외심을 거의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감수성, 무한한 재능, 갖가지 다양성에 관해 보다 잘 알아야만 할 것이다.

에드워드 홀의 문화학이 인간학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미래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본성에 관한 새로운 통찰의 개발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리스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경구 '너 자신을 알아라!'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생명의 춤 - 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3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한길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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