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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유적답사단 일행(왼쪽부터 김중생, 필자, 이항증. 베이징 교외 만리장성에서)
ⓒ 박도
이대만씨는 중국 동북에서 태어나 1944년까지 영길현 강밀봉(江密峰) 조선족 소학교에서 교사로 복무했고, 1947년에는 연변신문사 기자로, 1949년부터 중앙정부에 발탁되어 중국민족어문 번역사업국에 복무하여 국장으로 재직하다가 최근에 정년 퇴임한, 조선족으로 비교적 성공한 지식인이다.

이대만씨는 남북 양측 정부로부터 초청 받아 두 곳 모두 두루 살펴본 분으로 남북 국내 사정에 매우 밝았다.

중국 고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두고 앞을 보라”라고 했습니다. 지나간 일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앞일을 그르칠 수 있을 테지요.

지금도 조선 문제는 단순히 조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제 문제입니다. 그동안 조선의 분단도, 전쟁도 강대국의 이해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통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선 중국이 고개를 끄덕여야 하고,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자기가 약하면 남에게 당한다.”
“국내 일부터 잘하라.”
“국력이 강해야 남이 업신여기지 않는다.”

이 모두가 조선 백성들이 명심할 말들입니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조선의 해방은 조선인의 온전한 힘으로 이루지 못했기에 나라가 분단된 겁니다. 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강해지면 모든 게 다 해결됩니다.


이런저런 얘기로 밤이 늦었다. 이야기 마무리로 이태형 선생에게 독립운동가 1세대로서 후손에게 남길 말씀을 부탁드렸다.

▲ 이태형 선생
ⓒ 박도
"나를 독립1세대로 호칭해 주는 건 잘못됐다. 독립1세대는 이미 생존하신 분이 없다고 봐야 한다. 나는 2세대나 3세대 정도로 봐야 한다.

첫째, 옳은 일을 해야 된다. 곧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 일본놈들도 사람인데 우리 세대가 그렇게 미워했던 것은 그들이 정의롭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그들이 우리 조선을 침략했기 때문이다.

둘째, 옳고 그름의 판단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인문의 발달에 따라 사물에 대한 견해가 달라질 수도 있다. 사상이란 고정된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시대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한다.

일본놈 밑에서는 마땅히 독립운동을 하는 게 그 시대 양심이었다. 개미나 벌 같은 미물도 자기의 왕이나 제 집을 헤치면 죽기를 각오하고 외적을 물리친다.

이민족 치하 가만히 있는 것도 비겁한데 하물며 외적 편에서 그 놈들의 앞잡이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미물보다 못한 인간이다.

셋째, 지금의 매장 풍습을 바꿔야 한다. 오늘날 매장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모택동 주석이나 김일성 주석도 죽은 후에 화장하지 않고 안전관에 모셔 두고 있는데, 인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 지는 몰라도 나는 잘못된 일로 생각한다.

지금은 몰라도 앞으로 100년이나 1000년이 지난 다음에는 분명히 잘못된 일로 판명될 것이다. 한 줌의 재로 날려버린 주은래 등소평 지도자야말로 얼마나 멋진 선각자인가.

호화 분묘를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 일은 다 소용없는 일이다. 정말로 후손을 위한다면 화장하는 게 옳다. 나는 이미 부모와 처를 모두 화장했고 나도 화장하라고 일렀다.

넷째, 남북 조선이 서로가 상대를 헐뜯지 말고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청산리 전투를 북쪽에서는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한 게 아니고 조선 빨치산이 했다든지, 남쪽에서는 요즘은 쑥 들어간 듯 하지만, 지난날 ‘가짜 김일성’이라고 역사를 왜곡한다든지, 보천보 전투의 김일성 장군 항일운동을 부인한다든지 하는 것은 서로의 틈만 더욱 벌리는 일이다.

그 당시 항일 독립운동은 민족계열 공산계열이 모두 힘을 합쳐 한 일이지 사실은 어느 한쪽만이 한 것은 아니다. 3.1운동 때 기독교, 천도교, 불교계가 일심 단합하여 만세를 부른 것과 같다. 거짓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서로가 자기만이 옳다는 극단은 좋지 않다.

같은 단군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외세에 밀려 분단이 된 채, 서로가 대화를 하지 않고 불구대천 원수처럼 사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오늘만 보지 말고 지난날을 돌아보고 먼 장래를 내다보면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답이 나올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밤이 늦었다. 하루 동안 90평생을 사신 인생 역정을 다 듣는 것은 무리이리라. 동석한 이항증 선생이 당신이 한 일은 ‘먹줄 잡는 심부름 정도밖에 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겸손의 말씀으로 선생의 장인어른이 의성 김씨가의 월송 김형식 선생으로, 일송 선생 못지 않는 대단한 항일 운동 집안이라고 했다.

월송 선생은 해방 후에도 조국의 분단을 막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고자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 등이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협상(남북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을 할 때 사회를 봤던 분이라고 했다.

나는 말씀 도중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셨는지, 이따금 어른께서 무언가 숨긴 듯한 이야기가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아서 굳이 캐묻지 못했다.

그것이 당신 후반 공산사회에서 무장 투쟁으로 살아온 얘기인지, 남북 정부에 대한 섭섭한 얘기인지, 괜히 심중의 말을 내뱉어서 힘없는 글쟁이를 다치게 할 지 모른다는 속 깊은 배려인 지, 나로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심전심 침묵의 대화로 그 숨긴 뜻을 헤아려 볼 수밖에 없었다. “남북이 분단된 이대로는 고향 땅에 묻힐 생각은 없고, 죽으면 화장을 해서 중국 땅에 재를 뿌리겠다”는 노옹(老翁)의 단호한 말씀 속에 담겨진 의미를 내 나름대로 추리하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손자가 태워준 승용차에 타고서 빈관으로 돌아왔다.

깊은 밤, 베이징의 하늘 가운데는 보름을 갓 넘긴 달이 높이 떠 있었다. 서울에서 본 달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오랜 대담의 여운 탓인지, 나그네의 여수 탓인지, 이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커튼을 열어제치고 창을 열자 푸르스레한 달빛이 방안으로 실비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이 달빛 아래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가리라.

누구나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삶 - 어떻게 살아야 사람다운 인생일까? 중천의 달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흐드러지게 웃을 뿐이다. 그것은 네 삶의 길을 스스로 터득해서, 네 의지에 따라 사는 거라고 계시하는 듯하다.

달은 지상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도, 숱한 사람의 영고성쇠도, 다 알면서 모른 척 서쪽으로 쉬엄쉬엄 흘러만 갔다.

[연재를 마치며] 취재 후기

▲ 자금성에서의 필자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까막눈이었던 필자가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항일유적답사기를 참선하는 마음으로 엮었다. 이는 선배 학자 여러 분의 값진 저서와 증언, 자료 제공으로 이루어졌을 뿐 필자는 오직 다리품만 팔았을 뿐이다.

역사 현장을 답사하거나 문헌을 들추면서 내 마음을 울린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이 현대사의 주역이 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끝내 사라진 현실이 매우 가슴 아팠다.

이제라도 역사학자나 작가들이 발벗고 나서서 묻혀진 진실을 발굴하여 그분들의 이름이나마 드높여 주는 게 시대의 소명이리라. 미력하나마 앞으로도 이 방면에 더욱 관심을 갖고 무딘 필을 들고자 한다.

이 답사기가 완성될 때까지 수많은 분들이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줬지만, 특히 행촌학술문화진흥원 이영기 이사장, 이항증, 김중생, 강만길, 박창욱, 김우종, 서명훈, 장세윤, 리정문 선생님, 왕산 허위 선생 후손 허벽, 허호, 허창수씨와 원고를 감수해 준 이범증 중앙중학교 교장 선생님, 중국 당사 관계자 여러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왕빙, 한룡운, 김택현 운전기사, 낯선 이국 땅 길거리에서 길 안내를 해준 이름 모를 호로 촌민들에게도.

나는 역사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글에는 잘못도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이 글을 참고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내 분 외의 영광으로 여기겠으나, 꼭 원전을 살펴주기 부탁드린다.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이 글을 될 수 있는 한 쉽게 쓰고자, 다른 분의 글을 인용할 때도 내 자의로 풀어썼기 때문이다.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에게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언젠가 남북한에 흩어진 항일유적지도 답사하면서 여러분을 다시 뵐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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