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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토마토는 무슨 색일까? 우문인 것 같지만 대부분 '빨간색'이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답 중 하나일 뿐입니다. 파란색, 빨간색, 황금색 토마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최상의 상품으로 치는 것은 황금색 토마토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황금빛을 가지고 있는 토마토가 가장 최상품인 것이죠.

몇 년 전에 잠시 목회를 쉬는 동안 하우스 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썼던 글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 김민수
토마토가 하루가 다르게 익어 가는 통에 한낮에도 하우스에 들어가 소금 땀을 흘릴 수밖에 없다. 어느새 빨갛게 익어버린 토마토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기에 농군들에게는 달갑지가 않다. 오늘 낮 하우스 중앙의 온도는 45도. 토마토 물이 들으면 씻어내기가 쉽지 않아 긴 팔을 입고 토마토 따는 작업에 들어갔지만 10분도 못되어 긴 팔 옷을 벗어 던졌다. 주룩주룩 비오듯 내리는 땀방울은 사우나에서 강제로 빼는 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러 면에서….

목사로서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터…. IMF가 시작되던 그 해에 기관목사직을 사퇴하여 그 당시 실직자들의 고충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고, 잠시 교회를 떠나 자유로운 몸이 되어 재충전하는 시간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농사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며 흙과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이 좋은 시간을 안쓰럽게만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 땀흘림을 통해 순수해 지고, 겸손해 질 수밖에 없는 귀한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토마토를 따다보면 전지를 제 때에 못해 주어서 잎사귀만 무성한 놈들이 있다. 이파리가 무성한 만큼 열매도 없고, 있어도 보잘것없어 3등급 정도에 머무른다. 토마토를 다 따면 다마살이를 한다. 과거에는 손으로 일일이 했겠지만 요즘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서 자동으로 선별을 한다.

1등급부터 3등급까지 나뉘고, 상, 중, 특대 등으로 10kg씩 박스에 포장을 하면 농업협동조합에서 전량 수거를 해간다. 맨 처음 선별기 안으로 떨어지는 놈들은 3등급이다. 물론 등급 외의 토마토는 손으로 골라낸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박스에 떨어지는 놈들은 특대토마토다.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좋아하는 크기가 있으니 이 등급은 사람의 편의대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몇 키로냐, 토마토에서 황금빛이 나는가 하는 것이 가격을 결정한다.

ⓒ 김민수

토마토를 따면서 떠오르는 단상들.

먼저,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철저하게 줄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 좀 단순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토마토 전지를 안 해주면 꽃도 피우지 못할 곁가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고, 설령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토마토를 맺질 못한다. 어려서부터 전지를 잘해주면 토마토 열매가 열린 후에 곁가지가 자랄 틈이 없다. 모든 양분들이 토마토로 가기 때문이다.

둘째, 외형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그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토마토 나무가 무성한 곳이 있다. 잎과 꽃이 화들짝 피어서 아주 잘 자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곳에는 토마토가 별로 맺히질 못했다. 토마토 열매를 위해서 양분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커버린 덩치 때문에…. 한마디로 깨진 독에 물 붓기다.

외적인 미의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 시대는 타락한 시대다. 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면의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타락한 시대는 외형적인 미만 가지고도 살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부수적인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셋째로, 살아온 세월에 따라서 성숙해 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토마토를 따다 보면 크기에 따라 따는 것이 아니라 황금빛이 돌기만 하면 크기에 관계없이 딴다. 이제 더 이상 크기를 포기하고 열매 자체를 익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능력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이에 따라서 모든 권위를 부여하는 가부장적인 구조가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다. 인격이나 인간은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훨씬 더 인간적이고, 인격적일 수 있는 것이다. 나이를 가지고 권위를 부리지 말 것이다.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넷째로,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 것이다. 가끔 토마토 중에는 익다가 만 것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익기를 포기해서 황금빛도 아니고 붉은빛도 아닌 어중간한 빛이다. 그런데 꼭지는 말라있다. 토마토 스스로 다 익었다고 생각한 탓일까…. 이런 토마토는 가차없이 따서 버린다(2001년 5월).

ⓒ 김민수

그렇게 하우스 토마토를 한 지 2년이 지난 후 작은 농어촌 교회를 섬기면서 나의 텃밭에 우리 가족들이 먹을 만큼의 토마토만 몇 그루 키우고 있습니다.

토마토 꽃이 피기 시작하니 그 때의 생각도 나고, 장에 나가니 토마토가 지천이더군요. 제 철을 만난 토마토를 많이 드셔서 땀흘리며 일하는 농부님들에게 힘을 보태 주십사해서 오래된 글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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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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