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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해 남쪽 바닷가로 나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좁고 초라한 민박집에 몸을 부리고 습관적으로 TV를 켰을 때는 9시 뉴스에서 한참 이라크의 전투소식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눅눅한 장판에 온기가 감돌 즈음 화면이 클래식(?)하게 변모하며 지역뉴스가 시작되었다.

첫 소식은 4월 초에 있을 '유달산 꽃 축제'를 알리기 위해 목포 시장을 비롯한 축제 관계자들이 서울역을 찾아가 목포 알리기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

꼭 한번 다녀가고 싶다며 수줍게 웃는 생머리 여학생의 인터뷰가 지나가고, 목포 시장이 특유의 부동자세로 길고 지루한 멘트를 날리는 것으로 뉴스는 마무리되었다.

별 내용도 없는 기사를 지역의 첫소식으로, 서울까지 따라다니며 길게 보도할 필요가 있는지 조금 의아했으나 그러려니 했다.

그날 밤, 불면의 시간을 보내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문득 좀 전의 채널에서 '유달산 꽃 축제' 홍보 SPOT이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지역방송이라지만 그 정도 뉴스를 지역의 메인으로 다룰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게지...' 입맛이 썼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방송에서 이런 저런 축제들을 알리는 홍보 SPOT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디 그뿐이랴.

뉴스를 비롯한 정보프로그램에서도 지역축제는 짭짤한 소재거리고, 방송작가들은 축제 날짜를 주기도문 외듯 줄줄 외우고 다닌다. 문제는 그것에 접근하는 방송사의 태도에 있다.

지역축제와 행복한 동거를 꿈꾸는 방송사들

익히 알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지역축제들은 방송사에 협찬금을 주고 홍보SPOT과 축하쇼, 노래자랑 같은 특집 프로그램을 유치한다. 일종의 보험을 드는 셈이다. 방송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협찬금의 액수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사이를 오고 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영방송이 아닌 다음에야 제작비를 지원받아가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우선으로 삼아야 할 뉴스나 여타 정보프로그램까지 자사에 협찬을 의뢰한 지역축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도 사람이 만드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각 방송사들이 지역축제를 유치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은 해를 넘길수록 과열로 치닫는 양상이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에서 방송사의 눈치를 살핀다느니 지역방송이 축제를 이용해 한몫 잡으려한다는 볼멘 소리도 들려온다. 방송사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치단체의 장을 홍보SPOT에 등장시키는 웃지 못할 풍경까지 생겨났다.

지역의 방송과 축제, 이들의 결합은 타이틀만 다를 뿐 내용과 출연진은 비슷비슷한 방송물의 양산으로 이어지고, 지역축제 역시 고유의 색깔 찾기는 뒷전인 채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경우는 다르지만 협찬을 약속받고 특정 지역의 특산물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것도 방송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지역의 모든 방송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윗선에서 요구하는 사교성 아이템에 반기를 들며 열심히, 발로 뛰며 소재를 찾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젊은 방송인들이 우리 주위에는 훨씬 더 많다.

얼마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로 방송을 꼽았다고 한다.(시사저널.3월 27일자)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만 보더라도 방송은 단순한 '전달'을 넘어 여론을 '생성'하고 '설득'하는 기능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만큼 더욱 고개를 숙여야하지 않을까.

지금처럼 돈으로 방송을 사고 파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현실이라면 조사결과는 이렇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방송의 힘은 크다, 그러나 자본의 힘은 더욱 크다라고.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가. 우리의 4월은 온통 축제판이다. 변함없이 지역축제와의 행복한 동거를 꿈꾸는 방송사들, 과연 그것이 최선일지 한번쯤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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