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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대구 시민회관에서 바라본 남쪽하늘은 이미 노을지고 구름만 봄이 오는 저녁하늘을 푸른빛 감도는 회색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든가. 구름의 모양이 심상치 않았다.

처음 보는 순간, 정말 맨 처음 사건이 일어나던 때의 그 시커먼 연기 같았다. 다행히 그 구름보고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별 대수롭지 않은가 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오늘이 3월 8일 토요일. 2월 18일 사건이 나고 5일째 되던 23일 경기도 광주에서 내려와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났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희생된 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교회 예배드리러 갔다온 것 외에는 이곳에서 모든 숙식을 제공받으며 이름그대로 순수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시간이 좀 남아서? 원래 자원봉사를 할까 말까 반반이었지만. 상황을 보고 미력이나마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력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실종자 가족 대책위원회 홍보담당.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식사나 기타 유가족들을 위한 복지를 담당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분들은 아직 추운 바깥에서 고생하시는데 사실 실종자 가족 자원봉사단은 실내에서 호강하고있는 셈이다. 특히나 지금도 중앙로 역에서 지푸라기라도 움켜쥐는 심정으로 떨고 계시는 유가족들에 비하면….

이곳 자원봉사단의 전산실에서는 컴퓨터를 지원 받아 실종자 가족들의 사진을 영정용으로 확대해 준다든지 CCTV 동영상을 정지화면으로 출력해 준다든지 하는 업무를 맡고 있고 전산팀이 아닌 사람들은 주로 여러 가지 행정서류 접수, 대책위원회의 업무지원, 홍보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중앙지원단과 큰 줄기는 합의가 되어가고 있어서 자원봉사단의 역할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더 이상 실종자 가족의 신고접수는 거의 없고 실종자에 대한 여러 법적인 정리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신속한 지원을 받아 실종자의 카드발급 및 사용정지 신청을 직계가족으로부터 받는다든지 하는….

자원봉사자들도 미안한지 밤에 잠을 못 자면서까지 일을 하거나, 아무튼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새로운 만남, 인간관계, 새로운 이야기가 오가고 그 중에 걷기 캠페인을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가족들 몇몇이 즉석에서 무릎을 쳤다. 나보고 차 량운전하면서 혹시 모르니까 뒤에서 졸졸 따라와 달란다. 오늘 하루 따라 다니다가 주일 예배는 광주에서 드리고 다시 합류할 생각이다.

어제 하루를 정리하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내게 한 자원봉사자 후배가 얘기를 꺼냈다.

이 후배의 말인 즉, 아무 생각 없이 잠시 TV를 보려 유가족들이 쉬고 있는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머니 한 분이 이불을 덮고 주무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무시는 줄 알았던 이 아주머니는 이불을 덮고 혼자 울고 계시는 거였다는 거다. 흐느끼는 소리가, 전혀 크게 우시는 게 아니었는데도 후배의 귀에 쩌렁쩌렁 울리더라는 것이다. 뒤돌아 후배가 알아보니 아저씨도 안 계시고 딸도 외동딸이라고 들은 것 같다고. 그 딸 하나만 보고 딸이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느끼면서 살아 오셨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어깨에 힘이 죽 빠졌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어떤 경우라고 더하고 덜 하리요 마는, 도보행진에 함께 하겠다는 이 중에는 이번 사고로 부모님을 다 잃은 친구도 있다. 가족이 다 가고 혼자 남은 것이다. 시민회관 안에서 친하게 되어 자주 마주칠 때마다 눈길을 바로 바라보기 힘들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든 무슨 희망 같은 아주 조그만 거라도 줄 수 있었으면…. 어떻게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우리가 가족이 되어 주겠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함께 가면서, 운전하며 뒤따라가면서 곰곰이 내 자신에게 되물어 보아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떠나기 전에 실종자 대책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띄워 드리겠습니다. 

길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전에 자원봉사 경험을 함께 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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