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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새 정부 각료에 대한 인선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인선에 관한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뒤, 노무현 당선자는 '국민제안'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통해 장관을 추천받아 정부 구성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것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정부 구성에 직접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일찌기 그 유례를 찿아보기 어려운 참신한 시도였다. 국민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노무현 식' 정치가 우리 정치사에 '국민 참여의 시대'를 열어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최근 각료 인선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막판 힘겨루기는 이런 기대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우쳐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 조짐은 사실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라는 해괴한 말이 나돌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른바 '안정 총리'로 지명된 고건씨를 둘러싸고 보수세력은 세 규합에 나섰고, 변화와 개혁을 기대하는 국민의 뜻은 차츰 변두리로 밀려났다. 대통령의 '개혁'을 뒷받침해야 할 '안정 총리'가 거꾸로 '개혁'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교육부총리 인선문제에 와서 절정에 도달한 느낌이다. 처음에는 국민들이 교육부장관 후보로 추천한 인물들을 소개하며 한껏 기대감을 부풀려놓더니, 언제부턴가 국민추천에서 거의 거론되지도 않은 엉뚱한 인물들이 하루 아침에 '유명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유망주'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정권 시절에 양지만 골라 입신의 길을 걸어 온 '탁월한 처세술'의 소유자이며, 우리 교육을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은 교육시장화 정책을 옹호하는 '시장 예찬론자'들이며, 그 동안 교육부를 중심으로 철옹성을 구축해 놓고 교육계를 주물러 온 기득권 세력과 유형 무형의 교감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득권 세력은 마침내 고건 총리 내정자를 등에 업고 새 대통령의 정부 구성을 훼방놓는 대담무쌍한 행동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지금 교육부총리로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오명 아주대 총장은 개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사람이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육사 교관을 지냈으며, 5공 때는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체신부 차관으로 승진했다. 또 6공 때는 체신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 자문위원이 되었다.

그 뒤에도 세계박람회 위원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교통부 장관을 거쳐, 마침내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 겸 편집인 겸 인쇄인'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있으면서 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격동하는 한국현대사의 한 중심에서 가장 따스한 양지만 골라 살아 온 대표적인 사람이다. <육군사관학교-청와대 비서관-차관-장관-대통령 자문위원-언론사 경영인>으로 이어지는 그의 화려한 이력에서는 한국 교육의 짙은 그늘을 눈을 씻고 찿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그의 이력에는 혹독한 시대를 살아 온 지식인의 고민도, 왜곡된 교육현실이 가져다 준 상처의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잔상을 남기듯, 그의 현란한 이력서는 '처세'와 '순종'이라는 잔상을 남긴다. 그는 개혁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 교육과 인연을 맺은 시기라고는 육사 교관 시절과 아주대 총장 시절이 전부다. 더구나 그에게는 초중등 교육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 물론 자신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경험과 학부모로서 옆에서 지켜본 경험은 빼고 말이다.

그런 그에게 교육 개혁의 사령탑을 맡기자는 것은 차라리 한 편의 개그에 가깝다. 교육개혁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이런 경력의 소유자에게 '참여정부' 교육개혁의 지휘봉을 맡긴다는 것은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뺨을 갈기는 짓이다.

새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둔 지금, 국민들은 묻고 싶어 한다.

'국민제안'을 통해 추천된 인사들은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국민제안'은 국민의 눈을 속이기 위한 속임수였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만들어 준 '개혁의 강물' 위에 떠 있는 배와도 같다. 강물의 흐름에 겸손하게 몸을 맡기면 순탄하게 항해할 수 있겠지만, 그 흐름에 역행하는 그 순간 강물은 가차없이 배를 집어삼킬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당면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이며, 달리 생각하면 기회이기도 하다.

개혁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을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정부 요직에 임명하는 것은, 마치 출항을 앞둔 배 밑바닥에 큰 구멍을 뚫는 것과도 같다.

국민들은 새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이런 저런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힘차게 출범하기를 바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선거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밀실에서 이뤄지는 각료 인선을 당장 중단하고 국민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개혁의 첫 단추를 끼우는 일은 새 정부 각료 인선부터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오명 총장은 결코 적절한 단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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