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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년도 더 된 시절의 얘기지만 10원짜리 동전의 다보탑 속에 불상을 새겨 넣어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하였다는 유언비어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민주화가 좌절된 반감의 표출인지 아니면 그저 말하기 좋아하는 얄팍한 재미의 표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녕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불국사 다보탑 위에 놓여진 석사자상(石獅子像)을 그렇게 오인하여 야단법석을 떤 결과였지만, 모든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돈이었기에 그러한 일이 쉽게 벌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뒤집어 보면 그것이 불상이 아니라 탑 위에 간신히 하나 남은 석사자상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똑똑히 기억시켜 주었으니 그 바람에 문화재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돈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알고 보면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얘깃거리치고 돈만큼 더 확실하고 재미있는 것은 없다. 돈이 주는 재미 한 가지 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 화폐 중에는 10원 짜리 동전의 다보탑 말고 '석탑(石塔)'이 도안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뭘까?

▲ 만원권 지폐의 경회루 전경. 1983년에 지금의 도안처럼 약간 세밀하게 변경처리되었으나, 그 이후의 변화된 모습은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동그라미 표시부분에 석탑이 보인다.

▲ 경복궁 복원공사로 이렇듯 경회루 주변의 모습은 이제 크게 달라졌다.
ⓒ 강임산
정답은 만원권 지폐의 뒷면이다. 경복궁 경회루의 오른쪽 옆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미하나마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다. 경회루의 모습이 처음 만원권 지폐의 뒷면에 등장한 것은 1979년 6월 15일에 발행된 '나만원권'부터였으나, 그 이후 1983년 10월 8일에 교체된 '다만원권' 이후 도안이 좀더 세밀하게 변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원권 지폐 변천사

1972년 4월 11일에 발행 공고되었다가 석굴암 본존불과 불국사 전경을 도안한 것이 문제가 되어 최초시안이 결국 발행 취소된 이래 여러 차례의 도안변경 및 부분적인 개선이 있었다.
(명칭, 발행일자, 도안내용의 순서)
가만원권, 1973. 6. 12, 세종대왕초상, 경복궁근정전
나만원권, 1979. 6. 15, 세종대왕초상(물시계), 경회루(무궁화)
다만원권, 1983. 10. 8, 세종대왕초상(물시계), 경회루
라만원권, 1994. 1. 20, 세종대왕초상(물시계), 경회루
마만원권, 2000, 6, 19, 세종대왕초상(물시계), 경회루
하지만 지금의 '마만원권'에 이르기까지 기본도안의 변경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원권 지폐를 통해서 보는 경회루의 모습은 적어도 20년 전의 상태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그러나 현상은 어떠한가? 아쉽게도, 아니 아쉬울 것도 전혀 없이 만원권 지폐의 뒷면에 나타난 모습은 지금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경복궁의 복원공사가 착착 진행되어 이른바 침전구역인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 자리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이 1990년. 그리고 강녕전과 교태전 일대의 중건공사가 완료된 것이 1995년이었으니 경회루 주변의 모습이 크게 달라진 지는 이미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흐른 셈이다. 그러니까 그만한 세월만큼 지폐의 도안은 전혀 변화된 풍경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 박물관 권역으로 옮겨진 영전사보제존자사리탑. 뒤쪽의 것이 만원권 지폐 속에 등장한 석탑이다.
ⓒ 이순우
그럼 만원권 지폐 뒷면에 살짝 드러난 석탑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은 경복궁 주차장 옆의 잔디화단으로 옮겨진 '영전사보제존자사리탑' (보물 제358호)이다. 그때가 바로 1990년이었다. 원래 강원도 원주의 영천사(靈泉寺)에 있던 것으로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때 야외전시유물의 하나로 수집된 쌍탑이다. 말하자면 만원권 뒷면의 도안에는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일제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경회루의 동편 일대가 완전히 광장으로 변한 것은 1917년. 일찍이 1910년부터 경복궁의 전각이 상당수 방매(放賣)되었고, 조선물산공진회를 앞둔 1914년에 다시 흥례문 권역과 동궁전 일대가 몽땅 허물어졌으니 황량한 벌판의 모습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때마침 창덕궁의 화재를 빌미로 경복궁의 침전구역까지 몽땅 뜯어 옮겨 갔으니 그 이후 경복궁 안쪽의 '광장 아닌 광장'은 총독부박물관의 야외전시구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경회루의 모습. 1917년 창덕궁의 화재를 기화로 일제가 경복궁 내전건물을 뜯어 옮겨짓기로 결정한 이래 경회루 동쪽은 완전히 광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 사이 1923년의 조선부업품공진회나 1929년의 조선박람회와 같은 난장판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기본 용도는 어디까지나 총독부박물관의 관할에 귀속되어 있었다.

총독부박물관이 수집한 갖가지 석조문화재들이 1927년에 건춘문 너머로 옮겨진 광화문(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자리)과 경회루의 중심축을 따라 양쪽으로 나란히 이열배치되어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배치형태는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존속되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불과 10여년 전까지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일제가 남겨놓은 모습을 오래도록 잘 보존(?)하고 있었던 셈이다. 경복궁 복원공사의 진척에 따라 차츰 원래의 모습을 찾아나가고 있으니 자연스레 씁쓰레한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하나씩 지워져야 할 텐데, 정작 그렇지도 못한 것이 지금의 형편이다. 기억의 힘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더욱이 만원권 뒷면에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확실한 기억의 끄나풀이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천원권 지폐 도안에도 문제가 있다는데...

▲ 천원권 지폐의 도산서원 전경. 타원형 표시가 금송(金松)이고, 큰 원 표시가 회화나무이다.

천원권 지폐의 뒷면에 등장하는 도산서원. 그 도안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은 최초 도안이 만들어진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문제의 하나. 천원권 지폐에 도산서원의 모습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8월 14일이었다. 그 후 1983년 6월 11일에 일부 도안에 약간 손질이 가해지긴 했으나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모습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천원권 지폐 속의 도산서원은 적어도 30년도 더된 시절에나 구경할 수 있었던 풍경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사이에 수령(樹齡) 400년의 회화나무(사진의 큰 원 표시부분)가 말라죽었다. 그러다가 결국 지난해 11월 21일에는 밑둥만 남긴 채 나무가 완전히 잘려나갔다고 전해진다. 지폐 뒷부분에는 아직도 수세(樹勢)가 왕성하게 살아있어 잎이 무성한 나무인냥 그려져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지폐도안 속의 풍경은 지금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하나 더. 1970년 12월 8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 했다는 금송(金松)이 문제이다. 금송(錦松)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다는 이 나무(사진의 타원형 표시부분)는 원래 일본특산수종이고, 따라서 우리 화폐의 도안 속에 버젓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수년 전부터 이러한 주장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은 계명대학교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이다.

그는 이에 대해 도산서원의 담장 밖으로 이 나무를 이식(移植)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책이 시도된 적은 없다. 달리 보자면 이 부분은 딱히 지폐도안의 잘못이라고까지 연결하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어쨌거나 '금송'의 처리만큼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에 조속히 마무리 지어져야 할 성질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 이순우

덧붙이는 글 | 기사 본문에 수록된 경회루의 사진은 '한국의 재발견' 강임산 사무국장께서 제공해준 것이다. 기자로서는 억세게 운이 좋게도,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을 때 마침 만원권 지폐의 뒷면과 완전히 동일한 앵글로 촬영한 사진자료를 예전부터 준비해둔 것이 있노라고 하면서 흔쾌히 이 사진자료의 인용을 허락해주었다. 그의 배려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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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얘기이고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에 관한 얘기들을 찾아내고 다듬고 엮어 독자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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