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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에 발생한 제주 4.3을 다룬 연극이 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민족의 비극이자 고난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제주 4.3은 발생 40년이 지나도록 입에 오르는 것조차 금기시 되었고 현재까지 진상규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역사 속에 가려져 있다.

연극에 대한 소개와 한라산 모양의 무대 소개 / 한상언 기자

"그동안의 연극은 서구식의 프로시니엄아치가 있고 관객은 숨어 있었다" / 한상언 기자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공연장면 / 한상언 기자

▲ <앞산아 당겨라...> 공연장면
ⓒ 한상언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오태석 작,연출 / 극단 목화)는 제주도의 전통 연희인 ‘디딤불미’를 극에 도입하여 갈라진 역사를 하나로 모으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 연극의 중심에서 역사성과 사회성 있는 작품들을 무대화했던 중견 연출가 오태석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고 정진각, 황정민 등 극단 목화의 연기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여 극의 완성도를 높혀주고 있다.

28일, 공연중인 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을 찾아 40년간 한국 연극의 중심에서 연극계를 이끌고 있는 연출가 오태석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공연중인 '앞산아 밀어라 오금아 당겨라'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 한상언
본래 해방되고 나라를 운영할 수 있는 준비가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념이란 문제가 먼저 들어온다. 그래서 남한만이라도 국가를 세우자, 선거를 하자 그러니까 반대도 많았다. 그때 이념문제 때문에 백범 선생 같은 경우 그렇게 되면 나라가 반쪽이 되어 버리니까 삼팔선을 그으려면 나를 자르고 그어라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그 3년 뒤에 (분단되고) 50년 민족상잔이라는 있을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진다. 그 전 48년에 제주도에서 이념이라는 것이 제주도의 순수한 도민들을 참혹하게 할퀴고 지나가 버리는, 그리고 6.25, 현재 지금까지 우리는 이념이라는 멍에, 우리를 암담하게 만들고 우리의 모든 능력을, 가능성을 짓누르고 있는 여기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또 북핵문제에 긴장해야하고.

이런 일이 벌어진 최초의 땅, 그런 참혹한 땅, 비명에 돌아가신 분이 많은 그곳에서 대체 이 수려한 때가 묻지 않은 조랑말이나 길들이고 사나운 파도 속을 헤집어서 해삼, 멍게, 전복 이런 것이나 따다 먹는 그런 섬사람들을 대체 왜 이런 것(이념)을 심어 가지고 할퀴는지. 이것은 이후 한반도를 할퀴는, 즉 현재까지도 (할퀴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창피하다. 부끄럽다. 왜 아직까지도 이것을 해결 못하고 이것을 넘겨주고 있는지. 그래서 처음 일어났었던 그 자리, 그 순진한 모습과 소리와 몸짓, 그것이 있는 곳에 이념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했는가? 그것을 보면 우리가 저것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가, 어떻게 멍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을 벗어나는 하나의 (제의이다).

결국 부부라는 것이 길거리 가다가도 콩 하나 주으면 나눠먹는 것, 그것이 부부다. 그런 부부의 사랑, 남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그 사랑, 원초적인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가지고, 그래도 제주도 말이라도,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전체는 어느 세월에 될지 모르니까. 제주도라도 이런 상처를 씻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일종의 용서를 빌었으면 한다.

- 48년 제주도의 비극을 현재 무대화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까?

그렇다. 지금의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왜, 독일만해도 20년전에 벌써 베를린 장벽이 없어졌다. 그런데 아직도 DMZ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다. 더 고약한 쪽으로 가고 있다. 결국은 우리가 벌려 놓은 일인데, 물론 이념이 쳐들어와서 양분시켰다, 우리 스스로 독립을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자책할 수 있지만 그 이후 두 세대나 지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지심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 무대가 한라산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 한라산의 나무들, 한라산의 유채꽃, 한라산을 아름답게 만드는 남국정서가 있는 분위기..

- 무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한상언
그러니까 여기는(무대) 한라산, 그때 당시 해안과 한라산 사이에서 사람들이 죽어난 것이다. 심지어는 해안에서 4㎞ 이내에 들어가는 모든 촌락을 전부 불지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무대 중앙이) 그 중간쯤 된다고 보면 된다.

여기는 한라산 올라가는 길, 이것은 한라산 곳곳에 있는 동굴 같은 것. (한라산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생성된 섬이기 때문에 사실 황토흙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흙 자체가 전부 화산재이다. 그래서 척박한 땅이다. 밭을 일구려면 돌맹이를 주워내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돌맹이로 만들어진 제주도의 돌담은 전부 밭을 일구기 위해 걷어낸 (것이다) 멀리 가져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담을 치고 한 것이 제주도 담들. 한라산에는 사계절이 다 있다고 하니까 일정한 색을 줄 수 없으니까 관객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알아서 산의 모습을 보시길 바랬기 때문에 까맣게 했다.

- 제주도의 전통 연희 디딤불미를 연극에 도입했는데 그 이유는?

ⓒ 한상언
디딤불미는 대단히 흥미롭다. 풀무질을 제주도 말로 하면 불미이다. 풀무질은 쇠를 달구는 것인데 이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 있다보니까 디딤불미를 크게 대동제처럼 확대시킨 것 같다. 불을 받아서 그 불씨로 용광로를 데워 끓는 쇳물로 쇠스랑이나 낫이나 호미 등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농사를 지으면 풍년이 든다 믿었다. 그 불을 팔도에서 받아갔다. 그래서 그 불씨를 모아 화력을 세게 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 위해 대동의 장치가 필요했다.

풀무질이 널처럼 디디는 것이다. 여섯명이 하는 것도 있고 4인조씩 하는 것도 있고 아주 큰 것은 양쪽에 40명이 하는 것도 있다. 40명이 서서 디딤불미 노래를 하는 것이다. 자연히 高家, 盧家, 趙家, 李家 뭐 姓이 어떻게 되던 간에 같이 힘을 모아서 쇳물을 끓여서 새농사를 짓는다. 이 행위가 대륙의 힘을, 반도의 힘을 이어 받아 그것을 땅에 부어서 풍년을 일궈낸다는 제의적인 대동제의 장치로서 디딤불미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부부의 힘이라고 했는데 부부의 힘일 수도 있고, (작품 속에) 방목이라는 하나의 시비 거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반대하는 쪽과 “그것 괜찮지 않는가? 제주도가 말만 기르던 곳인데 다른 모습으로 개혁할 수 있는 좋은 장치 아닌가? 죄수들이 가서 사람 될 수 있는 곳이라면 지금까지 받아오던 제주도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찬성하는 쪽과 같이 제주도가 달라질 것을 이렇게 선포하는 것으로 (디딤불미를 통해) 모아지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어디든지 편가르기를 잘하는데 편가르기 때문에 이 나라가 국력이 손실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것도 편가르기보다 디딤불미 하듯 상대말을 듣고 이해하는 쪽으로 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제주도의 방언을 무대 언어로 사용한 이유?

ⓒ 한상언
순수하고 덜 오염되어 있었다는 것.
(제주도는) 문명이 대륙에서, 반도에서 건너갈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 조건에 있었다. (그래서 육지와 떨어져 있는 제주도의) 언어는 오염도가 덜했다. 아닌게 아니라 아래아(촵)자가 살아있다. 그래서 많은 말들이 틀리게 들리는 것은 아래아자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아래아자가 살아있다는 얘기는 뒤집어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 했을 때 그 소리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래아자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의 방언은) 500년전의 소리,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소리일 수 있다. 그것은 그만큼 아직 다른 문화에 많이 침식당하는 것을 미뤄온 것이다. 그렇게 아직 1900년대로 넘어오지 못한 그런곳에 이념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제주도의 방언을 통해) 우리가 전혀 이념과 관계가 없는 민족이었는데 그것(이념)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겠다.

또 하나는 지금 정보화 시대가 되어감에 따라 말을 속도있게, 빠르게 하다보니 기호화되기도 하고 아주 줄여서 사용하다보니 ‘방가방가’ ‘잼나’ 이렇게 사용한다. 이것은 시대와 같이 가고 있으니까 괜찮다. 그런데 (언어가 급속히 변화해 가는 시기) 원초적인 말,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과학성, 조형의 아름다움, 흐름의 유연함, 이런 것들이 더 살아있어야 되지 않는가.

(사투리들이) 더 생생하게 울림을 울리고 있어야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정체성이 사라져 버릴 위험이 있다. 언어를 살려주고 있는 것은 사투리다. 지방마다 곳곳의 사랑의 말이있다. 예를 들어 ‘사랑 한다’라는 말을 우리 할아버지들은 쓰지 않았다. “그 썩을 년” 이것이 사랑한다는 말이다. 풍부한 사투리들이 그대로 제울림을 가지고 있을 때, 가지고 있는 세상과 그것을 지킬수 있는 어느 힘, 언어가 생생하게 살아있어야지 마음 놓고 변화한다. 이것이 위험하면 변하지 못한다. 사투리의 소중함, 이것을 젊은 친구들이 알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정보시대가 되서 그런지 표준말도 아닌 그냥 텔레비전에서 사용하는 말을, 사용해야하는 말인지 알고 그것을 표준어로 알고 사용한다. 그런데 그것은 정확하게 따라야 하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자꾸 순화되면서 자꾸 체에 걸러서 표준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막가다 보니까, 바쁘다 보니까 그것을 순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어느때 그것을 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선 사투리가 제대로 살려져 있을 때 그 연구가 가능하다. 사투리의 소중함 그것을 젊은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 작품들을 만들어왔다고 평가받는데?

ⓒ 한상언
그 동안에 연극은 서구식의 프로시니엄 아치가 있고 관객은 숨어있었다. 객석은 깜깜하다. 제4의 벽이 있는데 그 제4의 벽을 뚫고 연극을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관음병 환자처럼 남의 방을 훔쳐보는 것 같은 그런 구도가 서양의 볼거리였다. 그렇게 익숙해오니까 우리가 연희되어온 우리들의 볼거리를 공연하면 다 낯설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익숙한 것은 <세일즈맨의 죽음>이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니 하는 일련의 현대 희곡들이다.

전통이라는 것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없이 흘러와서 그렇다. 구한말 이후의 한일합방, 합방으로 우리의 모습을 치우려 했던 36년, 남북전쟁으로 인한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군부가 미신이다 뭐다 해서 전통을 치우려 했던 그런 세월, 한 100년 동안 전통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끊어지면 사실 우리는 정신없는 사람들이 된다.

우리 선조들이 놀았던 탈춤이나, 판소리 등을 찾아보니까 객석과 무대는 나눠진 것이 아니라 거의 등고(等高), 같은 높이에 있고 ‘내가 만들었으니까 봐라’가 아니라 서로 만들어가는 그런 형식이다. 그러니까 많은 몫이 관객에게 주어져 있다. 작품자체는 생략과 비약을 좋은 구조로 써먹었다. 생략과 비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저 양반(관객)들이 그냥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저 양반(관객)들이 충분히 같이 볼거리를 운영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저쪽에서 보면서, 예를들면 “박수고개 얼른 넘어 춘향의 집에 당도하니 후원에서 비는소리가 들리는데..” 그러면 벌써 이도령이 성춘향을 보고 싶어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박수고개 얼른 넘어 몇 마디 안했는데 벌써 담 뒤에 와있다. 그것을 상상하면서 자기(관객)가 다 연출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정화수 떠놓고 장모가 이러고 있다. “내가 어사된 것이 선영덕인지 알았더니 저 빙모의 덕이 반이 넘는구나” 이런단 말이다. 그 모습을 관객은 다 머릿속으로 그린다. 그릴 수 있지요. 이렇게 담 넘어 넘겨다보면서 전라감사나 어사를 해주지 않으면 춘향이 죽겠다는 빙모의 모습하고, 그것을 넘겨다 보는 이도령의 모습을 (관객이) 그릴 수 있다. 그럼 이 자식이 싸릿문을 들어서면서 “야 장모 나 어사 됐다” 그래야 되는데 이게 또 얼씨구씨구하구 백년 거지로 나온다. 그것을 몇 마디로 합니까? 순 몇마디 안한다. 몇마디 안하고 거기까지 막 뒤집어 업고 난리 친다. “박수고개 얼른 넘어 춘향이집..”. 박수고개 얼른 넘을 때는 아~ 춘향아 그럴 심사로 왔지만 물론 춘향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단 장모를 보러 온 것이지요. 장모를 보러 왔으면 이렇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뒤집어서 뒤집어서 뒤집어서 엇간다고 해야할까? 전혀 예상 밖으로 의외성으로 돌아가는 그것을 이 양반(관객)들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즐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막 뒤집는다. 그것이 바로 생략이고 비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놀아진 판을 만들다보니까 별로 설명 안 해도 대충대충해놔도 이 사람(관객)들이 다 아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어붙이고 생략된 것을 메우고 비약된 부분을 이어붙이는 것, 그 재미가 구경하는 재미다.

볼거리 보러가자. 그러면 현실은 그냥 개판이다. 재미가 하나도 없고 답답하고 그런데 볼거리 보러 가면 내 맘대로 이렇게도 꿰매고 저렇게도 꿰매고 이렇게도 메우고, 내가 그림을 그릴수도 있거든. 그래서 즐거워서 가는 것이다. 그것이 동양, 특히 한국 우리 선조들께서 볼거리를 만든 정신,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저쪽에서 되도록 참견한 꺼리를 많이 줘야한다. 당신(관객)들이 심심하면 안 된다. 팔짱끼고 구경한다. 남 방 훔쳐보는 사람들이라고. “어이 잘한다. 저년, 생기기는 서운한데 소리는 꾀꼬리네. 저기서 수건을 놓으면 안되는데, 아니 거기가 아니야 조금 있다가 내, 아이구 저거, 나한테 배워야 돼 저년” 이래가면서 또 한 잔하고 그러고 또 구경하고 그러거든.

그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판소리 한마당 완창을 하려면 8시간 9시간 걸린다. 고수가 세 사람이 바뀐다. 북치는 사람은 세 사람이 바뀌는데 소리하는 사람은 혼자서 한다. 그것이 3.4조 4.4조로, 우리 숨쉬는 식, 우리 숨쉬기에 얹히는 것이다. 무조건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박수고개 얼른넘어 춘향집에 당도하니 후원에서 비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건 뭐냐 숨쉬는데 슬쩍슬쩍 그냥 얹히는 것이다. 9시간을 노래하는 것이다. 안숙선이 키 150㎝ 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하잖아. 하여튼 그런 지혜로움, 판소리 만드는데 그런 지혜로움이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저쪽(관객)을 믿었던 것이 더 중요하다. 관객과 같이 만든다.

되도록이면 이런 요소, 이런 징검다리가 있으면 저 사람들이 보는 것이 쉽겠구나 이렇게 징검다리만 있으면 대충간다. 그런 것을 잇는 재미를 가지려고 저 사람(관객)들이 보러 온다 그렇게 생각한다.

- 내년에 연극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연극 교육이 중 고등학교에서 하고 있다.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은가?

이 시대 대표 연출가 오태석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시작, 1967년 <웨딩드레스>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40여년의 연극 인생을 살았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전통성)을 고수해오며 우리 연극 문법과 시대마다 연극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탐구해 왔다.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고 연극을 통한 메시지로 경종을 울리며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소중한 정서들, 의식들, 사람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진언하고 있다.

김수근 문학상, 백상예술상, 동아연극상, 대산문학상, 연극평론가협회상, 연극협회상, 기독교 문화대상 외 다수 수상
자기를 쉽게 열 줄 아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면 여러 가지 사회와의 약속, 제약에 맞추어 가야 된다. 그러나 자꾸만 자기를 닫게 되어있다. 유일하게 무대라는 것은, 곧 연극이라는 것은 자기를 여는, 스스럼없이 열수 있는 (외부와) 충돌하는 것이다. 충돌하니까 열어야지 충돌하는데 열지 못하면 깨지는 것이다.

(연극 교육은) 열 줄 아는 것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열 줄 안다는 것은 뒤집어서 저쪽이 연 것을 본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토론을 못한다. 국회를 봐도 그렇고. 자신을 열 줄 알면 토론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상대의 의견을 듣고 내 소견을 얘기한다.

소견을 갖는 것은 자기의 우주, 소우주가 되던, 큰 우주가 되었던 자기 자신이 열심히 그것을 가꾸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지금까지 누가 소견을 가지면 “쟤 이상해, 왕따” 이렇게 왕따 당했다. 다양성이 다 없어졌다. 누가 어쩌자 그러면 다 따라가고, 어쩌자 그러면 다 따라가고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저 사람 저런 소견이 있구나 저것도 들을만해, 왠만하면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한 10년 지나니까 그 말이 정말 좋은 말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할 때 질이 풍부한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

- 젊은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

세상이 점점 미분화 되어가고 있다. 직업도 너무 많아서 자기만 아는 사회에 있다. 하루 종일 거기에 파묻혀 있다시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하는 경우도 많고 외로움을 탈 때도 많을 것이다. 자기 혼자 처져 있는 것은 아닌가? 나 혼자 마치 우주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느낌도 들 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을 와야 될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 그곳은 음악회일 수 있고, 콘서트일수도 있고, 구체적으로 희로애오를 표현해주는 연극 공연장 같은 곳일 수 있다. 이곳에서 같이 막 웃다보면 나만 웃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웃어, (이것을 보고) 나도 동시대에 같이 가고 있구나, 내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자기를 위로해 줄 수 있다.

그것을 한번 거쳐야 다시 (일상으로) 가서 일 할 수 있다. 마치 월사금 내듯이, 매달 한번씩은 이 생생한 라이브를 보러가야 되지 않을까. 앞으로 가면 갈수록 이래야지 집안에서도 처(妻)하고도 얘기를 주고받는 그런 세상이 될 것 같다. 한달에 한번은 월세 내듯이 와서 공연을 구경하고, 같이 숨쉬기를 하라. 숨쉬기를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라.

80년에 뉴욕서 7개월을 브로드웨이에서 남의 연극을 구경한 적이 있다. 문예진흥원에서 보내줘서. 한 3개월 지나니까 문제없겠더라. 동구라파 그러니까 체코, 폴란드, 헝가리에서 온 작품들을 보니까 우리하고 비슷했다. 그 작품들이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서구식 프로시니엄 아치 안에 들어가는 것이 연극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저 것이라면 나는 너무너무 많지 않은가. 우리 집 창고 안에 우리 유산이 너무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빨리 오고 싶었다. 1년 더 있어도 되는데 자르고 왔다.

과학적인 유산, 문화적인 유산이 아주 너무너무 방대하다. 이것을 캐가지고 얼마든지 팍팍 뛰어오르는 활어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창고는 무궁무궁 하다 그것을 꺼내서 활용하라.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공 연 명 :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공연기간 : 2002. 12. 12 ~ 2003. 2. 23
공연장소 : 대학로 아룽구지 소극장
문의전화 : 745-3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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