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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님! 우선 축하드립니다. 투표를 마치시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말씀하셨다죠?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올해 2002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올해 우리 국민은 생애 잊지 못할 두 가지 가슴 뿌듯한 경험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하나된 마음으로 이뤄낸 월드컵 4강의 신화일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기존의 정치 공학이 아닌 바로 국민들이 손수 이루어낸 노무현, 당신의 대통령 당선일 것입니다.

이제 그 동안 당신의 고단하고 험난했던 여정은 하나의 의미 있는 결실을 이루어냈습니다. 88년 정치입문 이후 당신이 그토록 지켜오고자 했던 원칙과 소신을 국민들이 받아들여준 것일 테지요. 당신은 선거 기간 동안 '국민후보'임을 항상 자랑해오셨습니다. 돈도 계보도 조직도 없이 국민의 힘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항상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국민이 당신을 대통령후보로, 또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동안 당신을 눈물나게 지지해왔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와 당신을 연결하기 시작했던 2000년 총선 이후 당신이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에 대한 지지를 이만 거두어들이겠습니다. 이제 당신은 지지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니까요. 그것이 또한 당신을 줄곧 지지해왔던 국민들의 책임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박수 받고 떠나는 전임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그토록 애타게 눈물로 지지했던 국민들을 배반하지는 않으리라는 꿈도 말입니다.

그 동안 많지는 않으나 후원금도 보내고 저금통도 드렸습니다. 당신에게 투표하라고 설득하느라 다음 달에 전화요금도 아마 꽤 나올 것 같습니다. 당신이 갚아준다고 했습니다. 과외비 덜 들게 하고 경제를 살리고 취직되게 해서 몇 배로 갚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수만 명이 돈 내놓으라고 청와대로 몰려가든지, 법원에 대여금반환소송을 제기할지도 모릅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우리 정치가 달라질 거라고, 우리나라가 좋아질 거라고, 우리 애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호소도 하고 협박(?)도 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당신을 지지했던 수많은 국민들이 심각한 정서적 공황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당신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 축구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루어냈듯이 불과 9개월 전만 하더라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우리가 감히 포르투갈을, 이탈리아를. 스페인을 물리친 것처럼 당신도 예상을 뒤엎고 이인제를 물리치고, 당내의 '진드기정치인'들도 잠재우고 불리한 조건에서도 정몽준과의 단일화도 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당신이 큰 어려움이나 난관에 부딪혀도 쉽게 굴복하리라고 보지 않는 것은 당신이 걸어왔던 험난한 길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만과 교만이라는 숨어있는 병균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숨어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일단 이루고 난 다음에는 그 병균들이 쉽게 활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병균에 쉽게 감염되지 않는 사람만이 큰 위업을 이루어 내더군요.

당신의 홈페이지 '노하우'는 아무리 보아도 걸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대한 자료,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동영상과 글들. 그 동안 많은 국민들이 즐겨 찾아오고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울고 웃고 감동하였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하루에 한번씩 꼭 들여다보십시오. 자만과 교만이라는 병균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그 속에 있습니다.

당신이 그 동안 국민들에게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호소했는지, 또 무엇을 다짐했는지 매일 다시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당신이 대통령이 되고자 했을 때의 당신 마음가짐을 반추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보 노무현'이 이제 '대통령 노무현'이 되었습니다. 왜 바보가 대통령이 되었을까요? 그 바보는 약삭빠르게 현실의 이익을 챙기지도 못했고 정치권력에 빌붙어서 갈 수 있는 편안한 길도 거부하였습니다. 그 바보가 아는 것이라고는 원칙과 소신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바보 대통령'이 되십시오. 오로지 국민의 편에 서고 국민의 편안함만 생각하는 그런 바보 말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국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도 아는 그런 바보 말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바쁘시겠지만 가장 먼저 이회창씨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치열하게 비판했고 때로는 거북할 정도로 공격하였지만 이제 승부는 끝나지 않았습니까? 패배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앞으로의 협조를 정중히 요청하십시오. 물론 권영길 후보나 기타 다른 후보들에게도 마찬가지겠죠. 이제 승자나 패자나 결과를 훌훌 털고 서로 어깨를 걸고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님! 이제 당신은 새로운 출발점에 또다시 섰습니다. 지금부터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던 그 마음으로 당신을 따갑게 질책하고 비판할 것입니다. 당신이 5년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설 때 그때까지 모아두었던 박수와 찬사를 모아서 보낼 겁니다.

부디 잘 하십시오! 간곡히 기원하고 당신을 지지했던 그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당신을 오늘날의 자리에 있게 한 국민들을 욕보이지 마십시오. 당신마저도 국민을 실망시킨다면 우리 국민들에겐 이제 더 이상 희망이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이제 우리의 '노짱'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당신을 떠나 보내야겠지요.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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