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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김민석씨의 행보가 논란이 됐습니다. 그중에 '김민석은 무늬만 386세대'라는 평가가 있더군요. 386으로 불릴 수도 있는 저로서는 그런 평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참 서글픈 생각이 앞섭니다.

김민석이 386세대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은 그다지 뜻있는 일도 아니고 쓸모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과연 386세대라는 게 뭔가'를 되짚어 보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386세대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나타나겠지요.

'386세대'라는 말이 '시사용어'로 자리잡은 지는 거의 10년이 돼 갑니다. '30대이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60년대생'을 가리킨다지요? 요즘은 따로 설명이 없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다 압니다.

그런데 사실 '386세대'라는 말은 어거지 조어(造語)입니다. '386'의 뜻이 앞서 본대로라면 거기다가 '세대'라는 말을 붙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대'란 특정 시기에 태어난 사람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386은 그 중에서 대학 다닌 사람들만 가리키는 말이잖습니까? 아무리 봐도 '386'과 '세대'는 원래 궁합이 안 맞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세대'가 인구학적 범주라면 '386'은 사회적 범주입니다. 서로 다른 범주의 말을 어거지로 붙여 놓고서 두리뭉수리하게 쓰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그 말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선정적인 언론과 무비판적인 언중의 합작품이라고 봅니다.

형식 뿐 아니라 내용도 그렇습니다. 그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얕잡아 보는 말이었습니다. 컴퓨터는 이미 486을 넘어 펜티움 시대에 접어들었을 때였지요. 그런 상황에서 386으로 비유된다는 것은 거의 모욕입니다. 시대착오적인 낙오자라는 뜻이니까요.

한국 사회가 10년전쯤 어째서 386세대를 시대착오적인 낙오자라며 냉소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책에서 배운 것을 감히 사회에도 적용해 보려는 무모한 경향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나 과연 그게 어째서 그다지도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는지는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말에 가서 조금 긍정적인 뜻을 얻게 됩니다. 정치권에 일었던 변화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시작하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뒷북을 친 소위 '젊은 피 수혈'이 그것이었지요.

그래서 이제 386세대란 학생운동 경력을 가진 젊은 정치인을 가리키게 됐습니다. 신선한 정치를 기대하는 사람들과 그런 기대를 받는 사람들이 그 말을 즐겨 썼습니다. 이제 그 말은 정치 용어로 자리잡았지요.

요즘 김민석씨의 처신을 평가하는 중에 '386세대의 가치'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저는 김민석씨에 대한 말보다는 386세대의 '가치'라는 말에 마음이 자꾸 끌립니다. 과연 그런 게 있는 것일까요? 있다면 그 가치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가치' 이야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이제 그 용어가 시사용어와 정치용어를 거쳐 사회학 용어로 정착될 단계가 됐다고 봅니다. 특정한 가치는 특정한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낳게 마련입니다. 386세대가 독특한 가치를 갖고 있다면 그 말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개념도 될 수 있겠습니다.

유용한 개념이 되려면 그 뜻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용어 정리를 좀 해야겠습니다. 저는 386의 본래적 의미를 대학 인구나 운동권에만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가치'의 면에서 본다면 386이라는 이름 때문에 비운동권이나 비대학 인구가 제외돼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386세대'라는 말보다는 '3*6세대'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렇게 써놓으면 어떻게 읽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삼별육 세대'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컴퓨터 자판에서 별(*)은 '모든'이라는 뜻이니까요.

'별'자가 들어가는 마당에는 아예 '3★6'이라고 써도 괜찮겠습니다. 일일이 별자를 그리거나 써넣기가 불편하면 그저 줄여서 '삼육(36)세대'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다만 육십년대의 그 '육삼세대'와 혼동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아무튼 '3*6세대'이든 '3★6세대'이든, 혹은 그냥 '삼육세대'이든 그것이 가리키는 뜻은 모두 같습니다. 60년대에 태어난 30대를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6세대'라고 쓰고 '삼별육 세대'라고 읽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한때 우리를 감동시켰던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삼별육(3★6)이 386을 대체하는 말은 아닙니다. 386은 '대학을 다녔던 삼별육'이라는 뜻으로 계속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386은 삼별육 세대의 일부라는 말이지요. 더 나아가 386은 삼별육 세대의 전위(前衛)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앞장서서(前) 지킨다(衛)는 말이지요.

한 세대가 전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더구나 좀 더 배운 층이 전위 역할을 맡아주는 것은 한민족 전통에도 부합됩니다. 두레나 향약이 제대로 이어지는 동안에는 그 전통도 계속됐었습니다. 그런 제도를 통해서 선비와 민중이 만났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배운이들의 전위 전통은 일제 강점기 어느 시점부터 끊어져 버렸습니다. 식자들은 식민 통치자들에게 빌붙어서 제 배운 것을 무기로 못 배운 사람들을 착취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일제 부역자들은 대부분 웬만큼씩 배운 사람들이었잖습니까? 감언이설로 민중들을 징용이나 학도병이나 일본군의 위안부로 보냈던 것이 다 당시의 지식층들입니다. 못 배운데다가 전위도 갖지 못한 민중들은 그저 이중 삼중으로 수탈을 당하면서도 하소연할 데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전위 전통은 삼별육 세대에서 되살아납니다. 더 배운 386이 덜 배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다시 시작한 것이지요. 80년대에 정치 운동의 틀을 뛰어 넘어서 도시빈민 운동, 노동조합 운동, 농민 운동 같은 생활 운동에까지 뛰어들었던 세대가 바로 그들입니다.

심지어 일부 386들은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거나 위장취업자로 몰려 감옥에 쳐 박히면서도 그렇게들 했었습니다. 때로는 덜 배운 사람들의 협력자라기 보다는 그들의 지도자가 되려고 설치는 바람에 부작용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내렸던 결단 때문에 지금 어렵게 지내는 386들이 많습니다. 혹은 그때 그런 활동을 빌미로 지금 행세하려는 386들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식인층이 전위 전통을 되살려 놓은 것이 바로 386들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군요.

덧붙이는 글 | '평미레' 작업을 한참 쉬었습니다. 공백 기간과 주제 때문에 다소 뜸이 있더라도 시간과 힘이 닿는대로 그 작업을 다시 시작해 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정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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