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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22개 시, 군 단체장 당선자 가운데 무소속 신정훈 당선자가 38세의 나이로 도내 최연소 단체장으로 당선되 화제가 되고 있다.

신 당선자의 승리는 지난 민선 1,2대 선거에서 김대동 시장 후보와 끈질긴 박빙의 승부를 펼쳤던 나인수 전 시장이 '김대동 후보' 교체를 명분으로 신 당선자에게 후보를 양보하고 단일한 한 것이 결정적인 승인으로 풀이되고 있다.

신 당선자는 이번 승리를 "간판에 의존하고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 정치와 주민에 근거하고 지역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정치간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선거가 신정훈 대 김대동 후보 개인간의 싸움이 아니라 '새정치를 지향하는 지방지치세력'과 '간판에 의존해 온 구시대정치'와의 대결에서 얻은 승리라는 것이다.

나주와 전남의 지역정치를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신(辛)바람의 진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본다.

나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63년 12월 6일 나주시 왕곡면 장산리 장사마을 영산신(辛)씨 자자일촌에서 태어나 마을 근처 양산초등학교와 영산포 읍내의 영산포중을 거쳐 82년 광주인성고를 졸업하고 같은해 고려대 정경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여 언론과 정치학에 관심을 두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광주학살을 고발하는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하고
고려대 재학중 학생운동에 투신하여 전두환등 신군부의 장기집권 음모에 맞서 84년 민정당 중앙당사 점거 농성투쟁에 참여했으며, 85년 5월에는 민주당 서울시장후보 김민석 등과 함께 80년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미국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하여 징역3년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나주 농민들과 함께 전국적 수세투쟁을 승리로 이끌며
87년 7월 석방후 고향 나주에서 농민운동에 뛰어들어 나주수세폐지대책위를 조직하고 전국적 수세거부운동을 전개하여 1년에 1천억원씩 징수하던 부당한 수세를 완전히 폐지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아내 주향득과 함께 89년 또다시 8개월 동안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나주 농민을 대표한 무소속 농민후보로
도의원에 2회 연속 당선되어 90년 9월 나주수세투쟁의 성과를 기반으로 나주수세대책위와 카톨릭농민회, 기독교농민회를 통합하여 명실상부한 전국 최대의 나주농민회를 조직하여 조직부장, 민원실장,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95년 6.27과 98년 6.4지방선거에 무소속 농민후보로 추대되어 민주당 일색의 황색돌풍을 잠재우고 2회 연속 최연소 도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깨끗하고 소신있는 나주시민의 일꾼으로
그의 지난 7년 동안의 의정활동은 일당일색의 지방정치 풍토속에서 전남도의회 유일한 무소속 의원으로서 원내 교섭단체 바른정치연합의 원내총무와 도의회 도청이전반대 및 시도통합추진위 대변인을 맡아 일하는 등 건전한 비판과 대안세력으로서 역할을 다해 왔다. 그리고 이제 나주의 변화와 개혁 그리고 진정한 시민화합을 바라는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신바람 나주를 이끌어가게 됐다.

가족관계
농민운동의 동지이자 아내인 주향득과 사이에 백두, 창호 두아들을 두고 있으며 어머니 이기순 여사를 모시고 나주배 과수원 2천여평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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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신문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정치, 스포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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