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플레이어로 남고 싶어요!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남긴 말이다. 여우의 이야기는 길들이는 것에 비중을 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책임에 대한 얘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들이기만 알고 있다. 자기가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기란 그만큼의 노력이 있어야 하기에 그런가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은메달 이후 배드민턴붐을 일으켰던 어린왕자 이동수. 그가 길들였던 배드민턴에 책임을 느끼고 다시 라켓을 움켜쥐었다. 토마스·우버컵 예선을 앞두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태릉선수촌 오륜관을 찾았다. 입춘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오의 봄햇살은 잘 발효된 한 잔의 술 같았다.

지금 그의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옛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맞는다는 '송구영신'이다. 2001년은 그에게 돌아보고 싶지 않은 한 해였다. 고질적인 부상이 그림자처럼 그를 쫓아다녔고 그만큼 그는 허덕였다. 98년 우승, 99년과 2000년에는 준우승을 차지했던 전영오픈에 2001년에는 출전조차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어리지 않았고 '어른답게' 고난과 역경을 당당히 이겨내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코트에 돌아왔다. '돌아왔다'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는 최고의 플레이어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동수는 2월에 출전하는 토마스·우버컵 예선전에서 절정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예전의 기량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1974년생, 스무 살의 끄트머리에 선 그에게 서른이란 어떤 느낌일까? 이 중요한 시기에 그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년 6월에 '베스트 플레이어'로 취재했을 때와 지금의 그는 분명 많이 달랐다. 무엇이 그를 달라 보이게 했을까? 배드민턴 스타로서의 희망과 대표팀 주장으로서의 고민, 최고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플레이어로서의 집념에 대해 진실한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 1. 스물 아홉이다. 결판을 내야 할 나이가 아닌가?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후배들과 지내다보면 나이를 잊고 산다. 그리고,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하기로 했으니까 열심히 해야하지 않을까? 우선은 곧 있을 토마스·우버컵 예선부터 잘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 2. 배드민턴에 대한 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철학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나름의 신조가 있다면 ‘열심히 하자’다. 운동을 시작했으면 최고가 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최고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만큼 열심히 해야한다. 운동을 하다보면 육체의 한계를 스스로 정할 때가 있는데 정신력으로 견뎌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경우가 많았다. 감독님께서도 겪으셨고 선수들 대부분이 그랬다. 참고 견디는 자의 열매는 달다고 생각한다."

- 3. 최고의 실력자라고 생각한다. 코트에서 실수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가?
"나도 인간인데 왜 없겠는가? 특히 첫 게임에 대한 부담감이 많다. 첫 게임에서 실수를 하면 긴장하게 된다. 그렇다고 시합을 앞두고 머리를 깎지 않거나 씻지 않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깔끔하게 하고 코트에 들어서야 마음이 편하다."

- 4. T/U 예선부터 코리아오픈, 아시아경기대회까지 올해는 국제대회가 많다.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마음가짐은 어떤가?
"준비를 착실히 하지 못해 마음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목표를 크게 잡으면 부담이 되는 것은 운동선수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작년에는 부상 때문에 코리아오픈 준우승과 홍콩오픈 우승 뿐 이렇다할 성적이 없었다. 일단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뒤 상위권 입상이 목표다."

- 5.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어 훈련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 훈련을 하고 있는가?
"체육관에서 하는 훈련은 같이 한다. 아무래도 부상이 있다보니 개인훈련에 치중하게 되는데 근력강화, 근조직 및 인대 강화운동 등을 물리치료와 병행하고 있다. 본운동은 점프라든지 셔틀콕을 맞히는 타이밍 훈련과 수비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경기운영 능력 배가를 위한 훈련도 하고 있다."

- 6. 복식파트너로서 유용성 선수와 어떻게 호흡을 맞추고 있는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으니 15년째다. 나에게 배드민턴은 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으로서 유용성을 좋아한다. 그는 강하고 냉철하다. 또한 자기투자에 철저하다. 오랜 기간 함께 호흡을 맞추어 왔지만 성격이 반대인지라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연습 때 말을 많이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합이 닥치면 많은 얘기를 한다. 우리는 잘 되는 사람이 먼저 얘기를 한다."

- 7. 뒤를 이을 후배들이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의 후배들을 보면 나이가 어리다. 그 나이에 나는 그들보다 더 못했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었다. 용성이가 고등학교 때 국가대표가 된 것에 비하면 많이 늦었다. 선수들을 믿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면 머지 않아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또 후배들도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집중해서 열심히 하면 실력이 늘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간 때우기식으로 해서는 아니 된다."

- 8.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그리고, 배드민턴 커플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감독님, 코치님 모두 배드민턴 커플이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배드민턴 선수는 아니지만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다. 착하고 나를 많이 이해해준다. 결혼은 일단 아시안게임 끝나고 생각해 보겠다."

- 9. 국내 배드민턴 전문지로써 월간배드민턴이 창간 1주년을 맞이하였다.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지금 국내 배드민턴은 침체된 것이 사실이다. 배드민턴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한 방법으로써 배드민턴 전문지의 역할은 지대하다고 본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 주기를 바란다.

독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커다란 대회를 앞두고 관심을 가졌다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질타하기보다는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질타하는 것과 관심이 없다가 질타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이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배드민턴 선수가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2002-03-20 23:3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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