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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을 하면서 가능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하나의 목표입니다. 조금은 낯선 환경이지만 적극적으로 임하자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거니와 미국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도 있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도 가능하면 3~4개월에 한번씩은 헌혈을 하곤 했는데, 미국에서는 1년 반 동안 그런 경험을 가져 보질 못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체육관에 운동하러 갔는데 마침 미국 적십자에서 나와서 헌혈을 받고 있더군요. 운동을 마치고 이 참에 몸 속에 남아 있는 피도 방출(?)할 목적으로 접수대로 갔습니다.

미국에서의 헌혈과정은 다소 복잡하더군요. 우선 신청 서류에 기본적인 인적사항에 관한 정보 외에도 무려 40여 가지에 달하는 의료 관련 정보를 요구하더군요. 최근에 무슨 주사를 맞은 적이 있느냐, 가족 중에 신경질환을 앓은 사람이 있느냐 등등.. 전문용어가 하도 많아서 기억을 전부하지 못하겠군요.

다만 한가지 신경에 거슬리는 항목이 언뜻 눈에 들어 왔습니다.
“최근 3년 동안 외국을 여행한 적이 있느냐? 다만 호주, 뉴질랜드, 일본, 서유럽 제외” 언뜻, ‘아니 피까지도 차별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생뚱하게 맘속에서 피어 났습니다.

‘그냥 무슨 의학적인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다음 코스로 갔습니다. 의문은 그곳에서 풀렸습니다. 50세 정도의 마음씨 좋게 보이는 백인 할머니였습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역시나 “South, or North” 라고 물어보더군요. 아주 두꺼운 바인더를 보여주는데 전 세계의 말라리아 관련 정보가 수록되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은 DMZ 주위로 해서 경기도, 강원도 북부 지방으로 제한되어 있더군요. 나보고 혹시 DMZ 너머 북한을 여행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가보고 싶은데 못 가봤다고…

미국 학문은 소위 경험실증주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즉 대부분 학문의 가치가 현실 세계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어서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작지만 매우 다양한 여러 기초 데이터를 이용해서 일반적인 사실이나 법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헌혈에 관해서도 전세계적으로 구체적인 자료를 이용하는 것을 보니 미국식의 정보력에 새삼 느껴지더군요. 물론 이러한 접근 방식이 절대선은 아니라고 봅니다. 도서관이나 컴퓨터에 나타나는 엄청난 숫자의 데이터에서 인간의 특성을 얻는 것은 결코 쉽지만 않을 뿐더러 옳은 방법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무려 한 시간을 넘는 동안 헌혈을 마치고 2개월에 한번씩 하는 헌혈은 건강에도 좋다고 권장하던 흑인 의사와 하이 파이브를 뒤로 하고 나서 체육관을 나설 때 그냥 입가에 웃음이 묻더군요. 헌혈을 하면서 미국식의 지식 접근 방식을 접해 보았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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