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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동쪽, 안동?

안동은 중앙고속도로가 본격적으로 개통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오지 아닌 오지였다. 하지만 2001년 12월 중앙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고 나서 서서히 세인들의 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 오전 내내 게으름을 피우다 카메라를 챙겨들고 오랜만에 가고픈 안동으로 떠났다. 나를 안동으로 이끈 것은 하회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막걸리 냄새도 아니었으며, 도산서원의 유교문화도 아니었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몇 킬로미터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병산서원의 만대루 누각이 나를 잡아끄는 것이다.

병산서원에 대한 나의 바램은 딱 한 가지이다. 그것은 병산서원까지 이어지는 길을 그대로 비포장으로 놔두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동에 이르자 목적지를 일단 봉정사로 정했다. 병산서원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를 보고자 했음이다. 하지만 봉정사에서 끝내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병산서원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와 여로 유감

그전 같으면 세 시간 족히 걸렸을 길인데, 한 시간 조금 지나자 서안동 인터체인지에 다다랐다. 고속도로에서 느꼈던 맛은 솔직히 하나도 없었다. 전국 최장의 4.3Km 죽령터널, 전국 최고 높이 103m의 다리 그러나 그 조차도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다만 편리를 위해 망가진 자연 앞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편하게 그 길에 익숙해져 떠나고 돌아오는 나도 똑같은 현대인의 한 부류일 뿐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길을 이렇게 쉽게 와 버리니 앞으로 배낭 꾸릴 일이 많아짐을 기뻐하는 편이 더 나을 성 싶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의 부제를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라고 말했는데, 오늘날 다리는 강을 건너고 산은 터널을 통해 뚫어 버리고 만다.

봉정사로 가는 길

서안동에서 안동으로 향하는 34번 국도를 타고 5.3Km정도 내려오다 다시금 924번 지방도를 타고 동쪽으로 냇가를 타고 달리니 그제야 안동 맛이 우러나온다. 경치가 좋을 성 싶은 곳에는 정자가 자리 잡고 산이 내려와 멈추어 선 곳엔 어김없이 양반집이 기와집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냇가에 서있는 나무들도 역사를 말해주듯 굵은 줄기를 드러내고 한층 운치를 더해준다. 하천정비로 인해 냇가엔 모래와 자갈만 쌓여 있고 물고기가 살 수 있는 수초는 온데 간데 없다. 그래도 산과 어우러져 안동의 시골길은 아름답기만 하다.

누이를 닮은 절, 봉정사

천등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산세가 푸근하고 골짜기를 따라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절이 바로 봉정사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이 한국방문 길에 들렀던 절로 더 유명한 절. 그러나 일본문학계에서 매우 유명했던 다찌하라 마사아끼(1926-1980, 한국명 김봉규, 안동태생)의 소설 ‘겨울의 유산’에서 무대가 되었다는 절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 소설에서 봉정사는 무량사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만큼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절이라고나 할까. 봉정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 만세루를 통해야 한다. 만세루는 2층으로 된 건물로 1층은 문으로 되어 있고 2층은 누각이다. 1층 문을 통과해야 하는 데, 옛날 사람들은 키가 작았음인지 오늘날 사람들은 고개를 숙여야만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설 수 있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이는 경건함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설게했으리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만세루 누각에서 바라보는 고즈덕한 산사의 분위기는 새롭다. 경내에 접어들어 고개를 들면 대웅전과 그 뒤편 산에서 절개를 뿜어내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소리는 언제 들어도 맑고 고운 소리 그 자체이다.

봉정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그리고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 화엄강당, 고금당, 영산암 등 건물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히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더 오래된 목조건물로 밝혀져 그 역사성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가장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요사채가 담으로 둘러 쌓여있지 않아 일반인들도 가까이서 스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일 게다. 그것 때문에 더욱 더 일반인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절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보수공사로 한창이어서 공사사무실 겸 창고로 쓰이는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맛을 깍아내리진 못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영산암

영산암은 봉정사에서 200미터 떨어진 동쪽 언덕위에 자리잡은 암자이다. 우화루를 통해 마당에 들어서면 잘 꾸며진 정원같은 느낌이 든다. 응진전과 삼성각 그리고 석등이 어우러져 절보다는 집같은 분위기가 풍겨나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찍었다니 더욱 감회가 새롭다. 돋보이는 영상미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영화, 덕분에 찾는 사람이 많아져 오르는 길이 오솔길에서 계단으로 바뀌어 버렸으니 아쉬움이 남는다.

봉정사를 찾는 사람들

제각기 가족의 손을 잡고 힘들게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연인의 손을 꼭 잡고 한가로이 오르는 사람도 눈에 띄인다. 이 절은 오밀조밀해 웅장한 느낌을 주는 대신에 어울림을 말해준다. 좁은 공간 속에 건물들이 일정한 법칙 속에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스님들의 요사채도 일반 집과 같이 포근함을 준다. 그러기에 한국적인 절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누이를 닮은 절이라고 해야 할까 보다.

오히려 세심하게 절의 이모조모를 뜯어보는 외국인 일행이 있어 말을 붙여보니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 계시는 외교관들이라고 한다. 새삼 우리의 여행문화를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해가 이미 넘어가고 말았다. 또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어찌 저녁을 먹지 않고서야 안동을 떠날 수 있으리오. 그래서 차를 시내쪽으로 향했다. 바로 원조 안동찜닭을 먹으러.... 안동찜닭과의 만남은 다음에 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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