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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다리를 건너는 답사팀. 섬진강 돌다리를 건너며 섬진강을 이내 사랑하게 되어버린 답사팀원들의 모습 ⓒ 전영철

11월의 일요일 이른 아침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어 버스 한 대가 아침안개를 헤치고 달려 와 섬진강 상류의 진메마을에 40여명의 남녀노소로 구성된 대구한겨레문화정보센터 문화기행팀을 태우고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 7시에 대구에서 떠난지라 이들의 손엔 호박떡이 주먹밥 마냥 하나씩 쥐여 있었다.

섬진강은 흐른다, 역사도 흐른다

▲어른도 아이가 되고 아이는 하늘을 향해 감이 떨어지만을 학수고대했다. ⓒ 전영철

이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다니? 그리고 주옥같은 시인이 있었다니.... . 이들이 많고 많은 강 중에서 하필이면 섬진강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을 이끌게 한 것은 섬진강이 지니는 역사성에 있다고 답사기행팀을 인솔한 이한용 씨는 말한다.

동학농민군의 아픔을 그리고 회문산과 남부군으로 상징되는 한국전쟁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5.18의 민중항쟁의 눈물을 집어 삼켜야했던 눈물의 강이요, 이 나라 사람들의 눈물이 모여 흐르는 강이기에 안 오고는 못배기게 만들었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섬진강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정치권에서 만들어낸 지역감정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온 국민의 마음의 고향으로 인식되기에 경상도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강이라고 말을 이었다.

섬진강이 탄생시킨 섬진강 서정시인 김용택

▲김용택시인의 집에 모여서. 시인의 집에서 바라본 진메마을과 섬진강은 오늘따라 눈부셨다. ⓒ 전영철

섬진강을 섬진강스럽게 시와 수필로 엮어낸 이가 바로 김용택 시인이다. 진메마을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그러기에 답사팀은 섬진강 진메마을에 오자마자 섬진강으로 달려 나간다. 돌다리에서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출해내는 부부가 있는 가 하면, 섬진강물을 얼굴에 담그고 감격에 빠지는 여대생도 보인다.

가을날 섬진강은 그렇게 대구에서 찾아준 이들을 말없이 맞아주고 있었다. 오늘의 답사 가이드는 섬진강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은 물에 떠내려간 고무신을 건지러 광양까지 가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김도수 씨이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섬진강 진메마을의 구석구석을 설명해 준다.

"여그가 여름 밤에 누워서 잠을 자고 별을 헤던 벼락바우여요." "그리고 저그 돌다리는 진메마을 출향인사들이 주머니 돈을 털어 복원한 것이구만요."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여기에 막걸리가 없으면 무슨 맛일고, 막걸리 값으로 이들은 섬진강적성댐 반대성금을 내놓았다. ⓒ 전영철

그의 진메마을 사랑과 자랑은 끝날줄 모른다. 그 사이 성질 급한 아저씨는 까치가 먹을 감을 따기위해 장대를 쳐들고 우리의 꼬마들은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김용택 시인의 집에 당도한 답사팀은 답사자료집에서 '섬진강1' 시를 저 마다의 목소리로 낭송해 본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답사의 맛은 점심식사와 막걸리

▲시인이 걸었던 길에 서다. 김용택시인이 거닐었던 오솔길을 따라 늦가을 강변을 걸어 내려가는 일행들. ⓒ 전영철

오늘의 점심식사는 돼지고기 찌개에 구수한 전라도 포기김치란다. 벌써 손님을 몇수십번 치르신 김도수 선생 누님이 손수 장만을 하신 모양이다. 마당 한쪽 구석에선 돼지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아궁이 솥에서는 밥냄새가 그윽하게 시장기를 부추긴다.

그래도 막걸리 한 사발을 빼놓을순 없을 것이다. 막걸리 한잔에 모두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누군가가 종이상자를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섬진강 상류에 예정중인 적성댐 반대운동에 필요한 성금을 모으자고 하자 시퍼런 배추잎사귀 만원짜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들도 이미 섬진강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내일 밤에 그들은 잠자리에서 또 한번 섬진강을 찾아올 것이다. 밥을 모두다 두사발씩을 비우고서야 아이구 밥 잘 먹었다 한마디씩 한다.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다

▲아름다운 시절의 느티나무 아래로 섬진가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 전영철

일행은 버스를 먼저 보내고 비포장 도로의 강길을 따라 나섰다. 세 살먹은 꼬마부터 길을 앞장섰다. 이들을 반기는 것은 언제나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과 갈대 그리고 온 산을 붉게 물둘이고 있는 섬진강변의 단풍들이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서 나왔던 길에 이르자 미군짚차를 따라가는 장면을 연출해 보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한 쪽에선 어떻게 이런 생명력과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보듬고 흐르는 섬진강을 수몰시키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를 질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만은 넉넉한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시절'의 느티나무 아래

▲증명사진을 찍는 사이에도 섬진강은 흘러간다. ⓒ 전영철

돌담길을 따라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라는 구담마을에 도착했다. 이광모 감독도 이곳에 반해버려 영화까지 찍게 되었다는 곳, 그리고 송원규 화백의 화폭에 수수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는 구담마을 '아름다운 시절'의 느티나무에 다다랐다.

늦가을 섬진강변의 느티나무 아래엔 낙엽들이 뒹굴고 모두들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증명사진을 빼놓을순 없겠지. 찰칵 사진한 장 그 사이에도 섬진강은 구비구비 흐르고 있다. 조정량 어린이는 "낙엽이 한잎 두잎 떨어지고 이렇게 우리의 가을은 가는구나"하고 즉석에서 한편의 시를 엮어낸다. 어떤 어른은 "강물을 흘려 보내며 한잔 마시는 술도 강물같이 취하지 않는구려"하며 권주가를 지어낸다. 모두가 다 시인이 되버리고 말았다.

천년의 신비 장구목으로

▲갈대숲을 지나 섬진강 돌다리를 향해. ⓒ 전영철

일행들은 빠르게 흐르는 차가운 강물살 위로 섬진강을 건넌다. 심장 강한 아저씨 한 분은 강물속으로 양말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다가간다. 온몸으로 섬진강을 부둥켜 안고 싶은 심정일까? 아니면 강물을 바라보니 누군가 강속에 모습이 나타나서일까?

'그 여자네집'은 김용택 시인의 청년시절 애인집인데..... 장구목, 드디어 요강바위가 나타났다. 어느 졸부에 의해 서울로 팔려나가 10억원에 거래되려다 다시금 섬진강으로 귀향한 돌, 그래서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섬진강기행에 떠오른 섬진강의 명물 요강바위, 그 속은 어머니의 품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주민들이 무려 500만원을 각출해 법원에서 이곳 강변까지 바위를 날랐다고 하니 가히 전설같은 이야기가 되리라. 바위들은 제각각 천년의 세월동안 물살이 깎아내는 대로 제각각 파도모양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라 모양의 바위도 만들어 내었다. 해는 뉘엿뉘엿 해지고 해저무는 섬진강은 껄껄껄 웃는다.

섬진강의 사람들

▲어머니의 품속같은 요강바위. 요강바위는 그렇게도 사연이 많은 섬진강변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 전영철

섬진강변의 사람들은 늦가을 무렵인데도 밭에서 콩을 털거나 감을 타고 있다. 그들에게 겨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길거리에 즐비한 섬진강적성댐 반대 플래카드는 이들을 슬프게 한다.

"댐 막기전 이말저말 막고나면 찬밥신세", 이미 섬진강댐의 민원이 35년이 흘렀는데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이들은 알고 있다. 적성댐을 위해 광주시의 2011년인구가 통계청추계보다 무려 32만6천명이 부풀려졌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답사팀원들은 언제 구했는지 섬진강 적성댐반대대책위(http://antidam.inp.or.kr)에서 만든 우편엽서를 꺼내 "섬진강을 손대지 마라"라고 휘갈겨 쓰기도 한다.

▲장구목의 가을풍경. 장구목의 가을풍경 사이로 섬진강은 흐른다. ⓒ 전영철

그 사이 버스는 산골마을 들판 한가운데 멈추어 선다. 섬진강상류 답사의 하이라이트 덕치면 사곡마을의 좆바위이다. 옛날 산지세가 여자의 음부를 닮아 사람들이 병에 시달려 하나둘 죽자 사람들은 한을 삭히며 화강암에 양기를 상징하는 남자의 성기를 세웠다. 가장 터프한 모습의 남근석에 답사팀의 여성들은 한동안 말을 잃고 요모조모 뜯어본다.

김도수 답사가이드는 "넘들은 작다고 하는데 실물 크기보다 훨씬 안크요" 하면서 답사팀을 웃음도가니로 밀어넣는다. 이렇듯 섬진강변의 사람들은 강을 보듬고 그렇게 착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삶을 살아오고 있다.

답사팀은 해저문 섬진강을 뒤로하고 다시금 섬진강을 찾았을 때 댐 이야기가 다시 나오질 않기를 바란다고 눈눌을 적시며 대구로 향했다.

▲사곡의 좆바위. 근심과 걱정을 달래려는 이땅 사람들의 애환을 닮은 좆바위. ⓒ 전영철

그 사이에도 섬진강은 그렇게 흐르고 있다. 대구사람들도 섬진강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흐르는 강물을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회문산자락을 굽어보며 기원하며 섬진강변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덧붙이는 글 |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섬진강은 11월 늦가을 하늘아래 더욱 눈부신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저문 섬진강의 쓸쓸한 모습은 적성댐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섬진강은 흐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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