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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어머니는 아이의 교육 환경을 위하여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고사성어로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다. 맹자의 어머니 못잖게 오늘을 사는 우리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맹자의 어머니 못잖게 대단하다. 온 나라가 과외와 교육 이민 열풍으로 난리지 않는가?

모처럼 평일 날 회사가지 않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서재에 앉아 책을 보고 있으려니 아파트 건물 사이의 주차장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다. 넓지 않은 주차 공간에 1톤 트럭 몇 대가 엉켜있는 것을 보고 '누가 이사 오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사하는 모습치고는 좀 이상한 느낌이 드는 모습이다. 보통 이사라고 하면 5톤 트럭 한 대나 두 대 정도와 사다리차 정도가 오는 것이 보통인데 화물칸에 거적을 두른 1톤 트럭이 몇 대 보이길래 처음에는 '이사도 참 특이하게 한다' 싶었다. 그런데 좀 보고 있자니 이사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장터가 서는 것이다.

아파트 앞이나 주변도 아니고 아파트 내부로 쑥 들어온 좁은 주차장에 장이 서다니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이고 졸도할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혹 내막을 알까 싶어 "아파트에 별 이상한 일도 다 있다. 저게 도대체 뭐야?"라 물었더니,

"응, 웃기지? 이 동네 부녀회가 그래. 알뜰 장터 자리 내주고 한 자리당 3만원씩 받는데."

부녀회 재정 마련을 위해 부녀회가 그런 일을 꾸민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파트 주변에 장터가 서도 조용한 생활 환경을 위하여 그것을 몰아낼 궁리를 해야 마땅할 일이거늘 이건 거꾸로 도떼기 시장을 아파트 내부로 깊숙이 불러들이는 그네들의 생각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런 것 하지 말고 아파트 주민들끼리 집에 안 쓰는 물건 가지고 나와 소위 선진국에서 하는 개라지(garage 차고) 세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꼬맹이들도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책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와 싼 값에 팔면서 알뜰정신도 키우고 이웃간의 안면도 넓힐 수 있으니 일타이득(요즘 유행하는 "알까기" 용어:일석이조)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개라지 시장 중앙에 부녀회 모금함 같은 것을 마련하고 말이다. 아이디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아파트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공기가 아주 좋은 곳이다. 서울로의 교통도 아주 편하여 서울에서 은퇴한 왕년의 베테랑(veteran:노련가)들이 노년을 조용히 보내기 위해 많이 내려와 사는 곳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는 여러 집의 보일러들에 문제가 생겼었다. 고층 아파트에서 한 연통으로 연소가스를 빼는 건물 설계에 맞는 보일러 시설을 시공해야 하는데 비용을 줄이느라고 이상한 짓을 하여 보일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문제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해결하려고 업체측에서는 집집마다 벽에 구멍을 뚫고 연통을 내는 시공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부녀회를 설득하여 집집마다 그런 시공에 동의한다는 도장을 받게 했다. 그것이 급기야 문제가 되어 동네 아줌마들끼리 농성을 하고 대결을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초고속인터넷이 들어오는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마치 그 옛날 석탄 난로를 떼던 시절의 학교 모습같이 집집마다 연통이 삐죽히 나온 모습으로 바뀔 뻔 했던 일을 막은 결정적인 역할을 노인정의 어르신들이 했다는 설이 있다.

과거에 말발 좀 서던 자리에 종사하던 어르신들이 공기 좋은 곳에 살기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냐고 크게 반발하여 집집마다 벽에 구멍을 뚫어 연통을 시공하겠다던 업체의 술책이 결국은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부녀회가 이제는 자신의 아늑한 생활 공간을 스스로 도떼기 장터로 만드는 일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정체불명의 트럭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학교로 등교를 하고 그 다음에는 유치원과 놀이방 차들이 아이들을 태우고 갔었다. 엄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차까지 나와 아이를 배웅하는 집어 여럿 보였었다. 그렇게 아이 교육에 열성인 여자들이 집 앞마당을 스스로 장터로 만들어 버리는 발상을 하는 심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과거에 "보통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가 크게 실패를 했었다. 한 민족을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는 보통 사람이어서는 안되고 아주 비범하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야 깨달았다. 수업료로 지불된 비자금은 아직도 다 회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군인은 안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뭐가 되는 줄 알고 군정 이후에 처음으로 민간인을 대통령에 올렸지만 역시 민간인이라는 것보다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다시 느껴야 했다. 민족을 생각하기 보다는 오로지 권력에만 관심이 있는 대통령을 뽑아 결국은 한일합방과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적 환란과 수치를 맞아야 했었다.

우리 국민의 그런 우매함은 결국 조용하고 아름답게 꾸며가야 할 생활 공간인 아파트에 스스로 장터를 끌어들이는 아줌마들의 그런 문화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생각 수준이 아직 장돌뱅이 수준이 아닌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 수준이 이리 더디 발전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국민의 정신이 아직 바르게 서지 않아서가 아니겠는가?

올림픽에서 백미터 달리기 선수가 스타트할 때 관성을 최대한 얻기 위하여 고개를 땅으로 콱 처박고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앞도 뒤도 안보고 그냥 달리기만 하는 우리는 이제 가슴을 넓게 펴고 멀리도 한 번 보고 가는 방향을 잘 잡아보는 그런 지혜로움을 견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창의력을 동원하여 물질과 정신과 환경을 동시에 풍족케 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에 아이디어를 내보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이 글을 통해 상인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사람들이 생활 공간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하고 생각에 절도가 없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두들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욕심은 있지만 보다 큰 것을 위하여 작은 욕심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 즉 생각과 행동에 균형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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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현대자동차 연구소 엔지니어로, 캐나다에서 GM 그랜드 마스터 테크니션으로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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