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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로 한정없이 올라 가시오."
용전리 마을 아저씨의 진한 전라도 사투리를 뒤로 하고 천관사(天冠寺)로 향한다. '한정없이'라는 말에 무언가 중요한 보물이라도 찾아나서는 탐험가라도 된 것 같다. 사실 천관사에 보물이 있긴 있다. 오랫동안 폐찰이었다가 복원되면서 '3층석탑'은 보물로, '석등'과 '5층석탑'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막 비포장길로 들어서는데 뒤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불러세운다. 절에 가는 길이면 말동무 삼아 같이 오르자고. 멀리서 총소리가 들린다. 군부대가 있는 걸까. 용전리에 도착하자마자 간간히 들리던 총소리에 대해 아주머니께 물었더니, '농작물을 먹는건 좋은디 이리저리 뒹굴어 전부 못쓰게 해놔서...'라며 멧돼지의 횡포를 나무란다.

살기위해 그랬을 것이다. 멧돼지의 거친 행동이야 사람 입장에서는 괘씸하겠지만 점점 생활터전을 잃어가는 멧돼지의 입장에서는 살기위해서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멧돼지의 출현을 거부하는 총소리가 다시 울린다.

시집 안간 딸을 걱정하는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쉬엄쉬엄 오르길 40여분이 되어서야 천관사에 도착했다. 보물과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라기에는 너무 초라하지만 불자들이 맘 편히 기도하러 들락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소박하고 편한 사찰이다. 스님 한분이 칠석을 맞아 찾아온 30여명의 불자들을 반기고 있다.

열명만 들어서도 꽉차는 법당과 쇠기둥 네 개만 박아 종을 걸어놓은 종각, 간단간단하게 지어놓은 이곳도 신라때는 천여명이 운집했던 고찰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나보다. 밥이라도 한술 뜨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인심을 물 한잔 얻어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은 한명이 걷기에 알맞은 좁은 길이다. 양옆으로 소나무와 대나무가 섞여 하늘을 가리고 있다. 10여분 가까이 걸으니 한쪽은 환희대 다른쪽은 자연휴양림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등산로를 가로지르며 쳐놓은 거미줄과 신경전을 벌이며 환희대로 향해 오르길 20여분정도가 지나자 거미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양옆이 트인 길이 나온다.

하늘은 온통 구름으로 깔려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이다. 하지만 산행에선 여름이건 겨울이건 오르다보면 항상 땀이 흐르기 마련이다. 한줄씩 등줄기를 긋고 내리는 땀이 반바지를 적신다. '에라 모르겠다'며 T-셔츠를 벗어 배낭에 걸고 맨살로 오르는 산행. 맞은편에 누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1시간 30여분정도 올라 환희대에 도착. 네모난 책 만권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의미로 대장봉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가릴 것 없이 산전체가 다 보인다. 많은 기암괴석과 산아래 마을 그리고 멀리 다도해(多島海)까지.

환희대에서 목을 축이고 연대봉으로 향한다. 이길은 억새군락지로 유명하다. 해마다 10월 중순에는 억새제까지 열릴 정도이다. 20여분정도 억새길을 걸으면 고려때 봉화대가 설치되었다는 연대봉에 다다를 수 있다. 이곳이 천관산(723m) 정상이다. 연대봉에서 다도해를 바라보며 잠시 간식시간을 갖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라도 불어와 주길 바랐지만 사방은 그저 고요하기만하다.

정원석∼장천재로 이어지는 하산길에서는 나름대로의 의미와 이름을 갖고 있는 정원암, 양근암을 만날 수 있다. 천관산은 높지 않다. 조금만 오르면 사방이 모두 보이는 개방형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산 구석구석에 솟아있는 기암괴석으로 인해 소박하지만 당당한 위엄을 갖추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산행안내: 산행은 4시간정도이다. 쉬엄쉬엄가도 5시간정도면 충분하다. 광주종합터미널에서 장흥 경유 회진행을 타고 관산에 내려 15분정도 걸으면 천관산 입구가 나온다. 코스는 장천재∼환희대∼연대봉∼장천재, 천관사∼구정봉∼환희대∼연대봉∼장천재 등 여러코스가 있고 길이 좋아 산행에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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