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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드라마소재 한계 벗어

공중파 3사방송사들은 각각 한두 편의 단편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는데, 보통 70여 분의 방송분량으로 매주 한 차례씩 방송되고 있다. 그리고 각 이 단편드라마를 제작하는데 PD들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한 달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대본 수정, 장소 헌팅, 출연배우자 섭외 등을 준비하다보면, 실제 드라마 제작은 1∼2주에 끝을 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각각의 드라마마다 작품의 완성도의 차이가 많이 나고, PD들도 제작 여건의 미비로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한다.

시간에 쫒기다보니, 참신한 내용이나 사회적 문제를 꼬집어내기보다는 통속적 사랑이야기로 가거나, 소설을 각색(대부분의 경우 원작에 못 미친다는 평을 듣는 것이 현실이다)한 내용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좋았다는 프로그램 역시 내용보다는 영상이 아름다웠다는 등의 평을 받을 뿐이다.

29일 방송되었던 KBS의 <드라마시티(책임 프로듀서:김현준 일 밤 10:40∼)> <배달의 기수(7/29)>에서는 기존 단편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소재 선택의 한계를 일정 부분 벗어난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닭집 배달원에서 여당 축구선수로 출세

기수(권해효)는 30대 중반의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사내 축구동아리 스트라이커였으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부인인 은정(이상아)이 운영하는 치킨전문점에서 배달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치킨배달을 하지만, 언제가는 자신이 큰 것 한방으로 제기하고, 출세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여야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친선을 위해 축구시합을 하지만, 매번 야당에게 진다. 어떻게 여당이 야당에게 질 수 있느냐며, 복수의 칼을 갈지만, 실력차로 인해 매번 시합에서 지고 만다.

시합에서 진 어느 날 여당은 야당에게 시합에서 져서 치킨을 시켜주었는데, 기수가 배달을 온다. 축구공을 보자 기수는 왕년의 실력을 뽐내며, 슛을 한 번 하는 것을 보고 여당보좌관들은 기수를 스카우트한다. 그 덕분에 여당은 야당에게 이기게 되는데, 야당보좌관 중 한 명이 기수가 닭집을 하는 것을 알고 부정선수라고 여당보좌관들을 몰아붙인다.

그러자 여당보좌관은 기수 씨는 "서울시 영등포지구 체육분과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어 부정 선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여당보좌관은 그 날 즉시 체육분과 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찍혀 있는 명함을 기수에게 준다. 기수는 드디어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시합에 열중한다.

축구 시합을 위해 동원되는 부정 선거방법들

기수가 여당에서 선수로 뛰면서부터 이제 여야보좌관들은 자신들이 각종 선거 때 쓰던 모든 부정한 방법들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먼저 야당 역시 체육특기자 출신으로 선수를 선발해 국회 보좌관들이 아닌 외부 인력을 자신들의 시합에 끼어들게 한다. 그로 인해 기수가 뛰고 있는 여당을 다시 이긴다.

그러자 여당보좌관이 기수에게 야당 축구 선수 중 학연·지연·혈연등 기수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선수를 포섭하라고 한다. 또 "시합 중에 공이 아니라 다리를 걷어차라.", "술과 미인계로 다음날 시합에 못나오게 해라" 등 각종 선거 때마다 쉽게 볼 수 있는 부정적인 방법들을 기수에게 전수해준다.

이제 여야 보좌관들은 친선을 위한 시합이 아닌 국회의사당에서 매일 싸우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축구장에 다시 옮겨놓는 듯 한 행동들을 보여준다. 기수는 출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돈을 들여가면서 보좌관이 알려준 방법에 들어가고 드디어 여당은 축구시합을 다시 이기게 된다.

점점 축구시합이 친선이 아니라 승패만 따지는 과열경기(정쟁)로 가자 여야국회의원 둘이 모여 "서로 잘해보자고 시작한 축구시합인데, 너무 과열된 것 같군요. 마지막 한 판만 한 뒤 그만 끝내죠"라면서 여야자존심을 건 최종 승부를 제안한다. 마치 국회가 과열되면 각 당의 대표들이 영수회담을 하듯이 이들은 회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책임은 없이 권리만 요구하는 정치인의 모습

자꾸 밖으로만 도는 남편의 행동에 은정은 더 이상 그들(국회의원 보좌관)을 따라다니면 자기랑 이혼할 줄 알라고 협박을 한다. 그러나 마지막 한 판이기에, 또 이번 시합에서 잘보여 출세를 하면 은정의 화도 풀어질 거라 생각하고 부인의 경고를 무시하고 시합에 뛰어든다.

경기는 1:1로 팽팽하게 흐른다. 마지막 시합이라 국회의원들까지 나와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경기 종료 직전 여당에게 패널티킥이 주어진다. 그러나 여당보좌관들은 혹시 실축을 하면 모든 원망이 자신에게 돌아올까봐 기수에게 킥을 하라고 부추긴다. 책임은 지기 싫어하고 권리만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킥으로 가정의 행복과 자신의 성공이 동시에 올 수 있다고 믿는 기수는 그러나 너무 긴장한 탓인지 실축을 하고 만다. 여당의원의 허탈해하는 모습과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보좌관들. 시합은 결국 동점으로 끝나고 만다.

여야국회의원은 "비긴 것이 잘 되었다...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졌다...."라고 정치판에서 많이 보았던 행동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들의 공(功)을 남기기 위해 여야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자고 한다.

잘못은 내 탓이 아닌 남의 탓

한편 기수의 시합을 보던 은정은 차라리 잘됐다고 속으로 좋아하고 있는데, 주위에 있던 여야 보좌관들이 "이렇게 친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운 거야. 맞아 저 친구(기수) 때문이야, 괜히 정치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경기만 과열되었군"이라면서 모든 시합의 잘못을 기수에게 돌린다.

자신의 실축으로 시합에 졌다고 생각하고 운동장에 혼자 남아 있는 남편에게 집으로 가지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서 슛을 한 번만 해달라고 기수에게 요구한다. 기념 촬영을 위해 모여있는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있는 곳으로... 기수의 슛은 정확히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있는 골대 앞으로 날아가고 기념 촬영은 엉망이 된다.
몇 달 뒤 마음을 잡아먹고 배달을 열심히 하는 기수는 한 배달 주문을 거부한다. 부인이 이유를 묻자, 기수는 "국회"라고 한다.

너무 사랑이야기만 있는 현재 우리 나라의 드라마들

이처럼 이날의 드라마는 국회를 축구장, 국회의원을 보좌관으로 비유하고 있다. 선거를 이기기 위해 수많은 금품과 학연·지연·혈연을 동원하는 모습이나 축구시합을 이기기 위해 싸우는 모습, 시합 때는 모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이기려 하지만, 시합이 끝나고는 언제나 사이 좋은 상생의 관계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들은 뉴스에서 나오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경기에서 졌으면 다시 자신들의 실력을 길러 이길 생각은 없이 외부의 인사를 들여와 쉽게 승부(선거)에서 이기려 하는 모습이나, 그들의 실력이 좋지 않으면 모든 잘못을 그들에게 돌리는 모습에서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이런 어느 정도의 시사성이 있는 내용만이 좋은 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사랑이야기로 흐르고 있기에 어제(29일) 방송되었던 <드라마시티>는 시청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것이 한계이기는 하다.

드라마의 소재로 정치인들이 쓰였으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뉴스를 제외하고는 방송에서 정치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기가 쉽지 않다. MBC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총리가족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에 정치권에서 압력이 들어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인의 모습을 외국처럼 코미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면 정치인들의 모습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 대화는 드라마이다. "××가 죽었네, ××는 연기를 못하네, ××는 꼭 살아야 한다"는 등의 대화를 자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을 다룬 드라마나 코미디프로그램이 늘어난다면 일상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지금보다 좀더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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