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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판 없는 미군차량이 인천 신공항 고속도로의 톨게이트를 무료통과하고 있다. 이 미군차량이 통과하자 무료통과할 수 있다는 표시인 파란 불이 켜졌다. 이 차량은 뒤에만 미군번호판이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글/김미선 기자
사진/이종호 기자


질문1] 다음중 인천 신공항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면제받을 수 있는 차량은?
①미군용차량 ②건설교통부장관 승용차 ③범인 추적중인 경찰차량 ④시위진압용 전경버스

질문2]한미행정협정(SOFA)에 '주한미군은 한국내 목욕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가정하자. 주한미군 앤더슨은 홍길동 씨가 운영하는 '시원사우나'에서 무료로 목욕을 할 수 있을까.
①소파규정에 나와있으므로 가능하다
②시원사우나는 개인이 운영하는 사우나이기 때문에 무료이용이 불가능하다


민간투자에 의해 만들어져 운영중인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에서 얼마전부터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한미군, 작전증을 소지하지 않은 한국군차량, 순찰중인 차량을 제외한 경찰차량... 이들은 '통행료 면제대상'의 범위를 놓고 인천신공항고속도로 운영자인 신공항하이웨이(주)측에 항의를 시작했다. 이들중 현재까지 유일한 승리자는 주한미군. 주한미군은 어떻게 승리자가 됐을까.

유료도로법 대 소파규정의 대결

"이것(한미행정협정 원본)에 따르면 우리는 통행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통행료를 내라고 하는가"
2001년 4월초, 주한미군 소속의 한 소장이 신공항하이웨이(주)를 찾았다. 지난해 12월5일부터 유료화를 시작한 인천신공항 고속도로에서 주한미군 차량에 대해 통행료를 징수하는 게 부당하다는 항의를 하기 위해서다. 항의근거는 소파규정 제10조2항.

소파규정 제10조 2항...선박과 항공기, 기갑차량을 포함한 합중국 정부 소유의 차량 및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 군속 및 그들의 가족은 합중국 군대가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구역에 출입하고, 이들 시설과 구역간을 이동하고, 또한 이러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의 항구 또는 비행장간을 이동할 수 있다. 합중국의 군용차량의 시설과 구역에의 출입 및 이들 시설과 구역간의 이동에는 도로사용료 및 기타의 과징금을 가하지 않는다'

신공항하이웨이(주)측은 주한미군측의 항의에 '유료도로법'으로 맞섰다.
"유료도로법에 면제대상으로 나와있는 차량외에는 절대 면제해 줄 수 없다"는 것. 유료도로법상 면제대상이 되는 차량은 △교통단속용 경찰차량 △소방차 △체신차량 △군작전용 차량(작전증 소지) 등으로 주한미군차량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들이 이렇듯 강경한 입장을 취했던 이유는 이 도로가 '사용자부담원칙'으로 운영되는 도로였기 때문이다. '사용자 부담원칙'이란 고속도로 이용자에게만 톨게이트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국민이 낸 간접세 등을 통해 도로운영비, 톨게이트비를 일부 지원하던 기존방식과는 다르다.

특히 인천신공항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에 의해 건설된 기존도로와는 달리 삼성물산 등 11개 업체 컨소시엄인 신공항하이웨이(주)가 민간투자법에 의해 건설한 고속도로다. 정부는 향후 30년간 신공항하이웨이(주)측에 운영권을 위임한 상태이며 적자가 나는 만큼만 지원해준다.

이런 가운데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차량이 늘어나면 그만큼의 손실액을 정부예산으로 보조해줘야 하기 때문에 결국 '사용자부담원칙'이 유명무실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때문에 감독관청인 건설교통부는 신공항하이웨이측에 '엄격한 법적용'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차량은 하루 20여대가 인천신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한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소파는 모든 법에 우선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항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외교통상부에 항의했다.
마침내 외교통상부는 '미 군용차량에 대해 통행료를 면제하라'는 잠정적 조치를 내렸다. 이유는 인천신공항 고속도로를 제외한 모든 고속도로에서 주한미군 차량이 소파규정 제10조2항을 근거로 통행료를 면제받아왔다는 관례 때문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유료도로법 면제규정과 달리, '한국도로공사 도로영업규정내 통행료 면제차량' 조항에 '한미행정협정에 의한 주한미군용(유엔군 포함) 차량'을 포함시켜 놓고 있다. 또 외통부 관계자는 "일본도 주일미군에 대해 유료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통부의 조치가 '잠정적'이었던 이유는 소파협정 제10조 2항을 적용해 '무료화'를 주장하는 미군측의 요구가 고속도로 통행료 외에도 더 있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인천국제공항 주차료에 대해서도 같은 조항을 들어 '무료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외통부는 "주차료까지 무료로 해달라는 미군측의 주장은 소파규정을 확대해석 한 것"이라며 이에 대해서는 '잠정적'으로 불가하다는 입장을 정했다. 한미양국은 현재 소파규정 해석에 대한 양국간의 해석차이를 좁히기 위해 소파합동위원회를 가동중이다.

어쨌든 외교통상부의 잠정조치에 따라 주한미군은 2001년 4월부터 인천신공항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대상'에 포함됐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측의 정식항의가 있기 전까지 4개월여간 주한미군들은 인천신공항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어떻게 통과했을까.

신공항 하이웨이(주) 측에 따르면 1일 평균 10-20대의 미군차량이 톨게이트를 통과했으나 이들은 통행료 징수를 거부, 요금을 내지 않은 채 톨게이트를 지났다. 넉달간 '도주차량'으로 구분된 미군차량은 대략 3천여대. 이 도주차량들도 외통부의 조치에 따라 소급해서 면제처리됐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한국도로공사에서조차 유료통행을 시키는 미군속(미군부대 종사자, 미군가족)에 대해서도 덩달아 통행료가 면제됐다는 것이다. 미군속차량은 톨게이트에서 '특수임무차량증'을 제시할 경우 통행료를 면제받을 수 있으며, 대다수의 미군속 차량들이 이 특수임무차량증을 제시, 무료통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인천신공항 고속도로 면제차량에 대한 손실보전금을 포함해 올 한해동안 총8백억여원의 예산을 신공항하이웨이(주)측에 지원키로 약속했다.

'왜 우리는 면제대상이 안되는가' '우린 공무수행중이다'

▲톨게이트에서 도주를 하면 빨간 불이, 무료통과를 하면 노란불 또는 파란불이 켜진다. 하이웨이 관리차량이 통과하자 노란불이 켜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주한미군 차량이 유료도로법 면제규정을 깨고 '예외' 적용을 받으니 약이 오른 집단은 우리나라 군·경 차량들이다. 이들 또한 유료도로법상 면제대상에 포함돼있지는 않지만 관례상 대한민국의 모든 유료도로에서 통행료 면제혜택을 받아왔던 집단이기 때문이다.

신공항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고 '도주'한 건수는 6월 현재 총 4천여건(주한미군 차량 제외). 이중 절반 가량이 국내 군, 경 차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공항하이웨이(주)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의 통행료 미지불 사유의 상당수가 '왜 우리는 면제대상이 안되는가' '우린 공무수행중이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몇몇 군관계자는 신공항하이웨이(주)에 직접 항의를 오기도 했고, 한 경찰은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내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범인추적에 실패했다"며 소송을 걸겠다고까지 했다고 한다.

신공항하이웨이 관계자는"공무수행중인 군, 경의 경우 군경의 자체예산에서 통행료를 지원해줘야 맞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불평등한 소파규정이 문제다

인천신공항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제는 인천신공항고속도로의 통행료 면제범위가 향후 건설될 민간투자 사업 통행료 방침에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공무수행중인 국내 군경 등 내국인에겐 엄격한 유료화사업이 주한미군과 군속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것 아니냐는 지적은 이 시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이는 "우리나라 군대의 경우 '작전중인 차량'이라고 면제대상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으나 소파에서는 '미군용차량'이라고만 되어있어 '미군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세부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외통부 관계자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유료통행 대상인 미군속 차량들의 톨게이트 통행료 미징수 '도주'건수가 99년 450건, 2000년 135건인데 반해 징수율이 1-2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한 미군속의 경우 99년 한해동안 20회까지 도주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이 통행료를 내지않고 도주하더라도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미8군에 협조를 구하는 방법외에는 차적조회 등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군차량에 대한 차적조회가 가능한 우리나라 기관은 용산구청과 서울시 뿐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2000년도 이후로는 미군측이 '시스템정비'를 이유로 자료제공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게 용산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대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이소희 사무국장은 "주한미군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힘센사람이 이기는 식"이라며 "불평등하게 되어있는 소파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차량은 소파규정을 내세워 무료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외교차량이 통행료를 내고 통과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덧붙이는 글 | 기사 머리 질문의 답은 질문1이 1번, 질문2도 1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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