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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세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기여입학제도가 논란을 빚고 있다. 일부에서는 부실한 사학재정을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고 그 반대편에서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어처구니없어 한다.

기여입학제도의 원래 명칭은 '기여우대입학제'.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에서 시행되고 있는 그 제도를 본딴다는 것이 연세대의 강변이다. 학교 설립자나 사재를 기부하여 학교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의 후손을 받아들여 '보은'하겠다는 것이 바로 그 기여입학제의 내용이다.

일면 들어보면, 이 주장은 별로 '모난' 내용이 없어 보인다. 학교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데 그 후손 하나 입학시켜서 보은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생각이 거기에 머물러서는 대단히 곤란하다. 왜냐하면 미국은 미국, 우리는 우리요. 기여입학제는, 어쨌든지간에 돈으로 대학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 기여입학제가 정착되어 별다른 잡음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직업의 귀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학력의 차이, 학벌의 차이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우리 사회와 같이 극성스럽지는 않다.

결국 실체가 없는 형식적인 것일지는 몰라도 미국에는 '일류 대학에 꼭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인생이 빛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최소한 우리나라보다는 적을 것이다.

반대로 학벌, 학력이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기여입학제가 실시되었을 때, 기여를 통해서라도 자녀를 일류 대학에 입학시키고자 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 아마 그 답은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는 달리 연세대가 추진하는 기여입학제는 말 그대로 기여해야 입학할 수 있는 제도이지, '보은' 따위로 빗대어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20억원이라는 상한선을 미리 설정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이 내세우는 두 번째 논리는 기여입학제를 통한 학교재정의 확충과 그를 통한 대학교육의 질 향상이다. 그러나... 과연?

연세대의 계획은 80명의 신입생을 매년 기여입학제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80명의 학부모가 20억씩 낸다면 그 돈은 1600억원에 달한다. 어중간한 사립대학의 1년 예산이 1000억원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 돈은 상당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이 1800억만 매년 대학교육을 위해 재투자한다고 하여도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단순히 건물 하나 새로 짓는 차원이 아니고 광범위한 면에서 시설과 내용에 대한 개선이 있으리라는 것은 미리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만일 정말 그렇게 된다면 대학에 20억 내고 들어온 사람도 좋고, 그 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좋을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거의 90% 이상은 거의 대부분의 예산(90%)을 학생들의 등록금과 국고보조금으로 해결한다. 1년 살림을 꾸리기도 빠듯한데 교육의 내용과 시설에 대한 재투자를 고민한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정이 이런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사립대학치고 재단의 운영이 투명하지 못하다거나 투자할 계획은 없고, 오히려 대학의 예산에서 돈을 빼내어 재단이 유용하거나 투기를 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없는 대학이 거의 없다.

만일 주변에 사립대학을 다니는 이가 있다면 꼭 물어보시길, 너네 학교는 이런 사건 없냐고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열에 아홉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일류 사립대학은 그렇지가 않다고?
글쎄, 연세대나 고려대, 거기에 서강대, 이대, 성대 등.. 이런 사립대학은 위의 대학보다는 유연하게 대학운영이 이루어짐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비리가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며 더불어 이런 대학들에도 재단의 전횡은 틀림없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막 나가는 사립학교의 질서를 바로잡는다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추진할 때, 가장 전면에 나서서 반대하고 법 개정안을 추진하던 정당 대표들에게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던 사람들이 이런 일류 사립대학 총장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시는지?

여하튼 만일 기여입학제도가 시행된다면 그 수혜자는 극히 일부 대학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학부모들은 아마 20억+a를 싸들고 일류 사립대학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설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런 행렬을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대다수 사립대학은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되풀이할 것이다.

결국 이 기여입학제는 발상 자체가 '소수 중에서도 소수를 위한 계획'일 뿐이며 우리 교육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그런 접근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단언컨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가 개인을 판단할 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서 기여입학제는 절대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못할 것이다.

나의 독설을 비난하실 분은 비난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연세대의 이런 발상을 들을 때마다 내게는 역사적인 2개의 선례가 기억이 난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며 다른 하나는 유럽의 일이다.

지금은 대한민국에 양반이 아닌 사람이 없지만 예전에 신분제가 붕괴할 때, 양반족보를 사고팔고, 어느 가문에 돈을 주고 그 족보에 슬며시 끼어들고 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이다.

그리고, 중세 유럽에서 지나치게 세속화하고 타락한 카톨릭 교회가 죄를 면죄받는 길이라면서 면죄부를 돈 받고 팔던 것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글쎄, 잘못된 비유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과연 그런 사례들과 지금의 기여입학제의 발상이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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