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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20여년 전 학생회조차 없던 시절 학생회를 만들면서 학생운동을 벌였던 80년대 초반 선배들의 눈에 2000년대 학생운동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부터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까지 80년대∼2000년대 학생운동을 대표하는 선후배들이 모였다.

4월2일 오후 7시30분 홍익대 학생회관. 20여명 남짓한 학생운동 선후배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전대협 동우회(회장 정명수)가 주최한 '학생운동 선후배간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전학련(전대협 전신) 의장이었던 이정우(8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씨를 비롯해 정치권에 진출한 우상호(민주당 서대문갑 지구당 위원장) 씨, 오경훈(한나라당 양천을 지구당 위원장) 씨도 눈에 띈다.

한총련을 대표해서는 9기 임시의장인 이용헌(전남대 총학생회장) 씨를 비롯해 6기 의장 손준혁 씨, 7기의장 윤기진 씨, 8기의장 이희철 씨 등이 들어섰다. 이날 저녁 9기 한총련 중앙상임위(지역총련 의장단 회의)가 예정돼 있어서인지 지역총련 의장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채웠다.

정명수 전대협동우회 회장은 "80년대 학생운동과 2000년대 학생운동의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세대간 허심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라며 "특히 현재의 한총련 운동방식에 대해 사회적 시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정회장은 또 "현재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는데 '이적규정 철회'를 위해 선배들이 도울 일이 있다면 함께 할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한총련 9기 임시의장인 이용헌 씨는 "이런 자리를 후배들이 먼저 만들지 못해서 죄송하다"며 "다음엔 후배들이 선배님들을 초청하겠다"고 답했다.

▲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날 만남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됐으나 대화는 '최근 학생운동의 운동방식'에 대한 민감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선배들은 "요즘 학생운동이 축소재생산 되고 있다, 운동주체들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한총련 합법화, 새로운 대중운동 활성화는 내적 개혁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한총련에 대한 선배들의 안타까움이라고 봐달라고 전했다. 이에대해 후배들은 "학생운동이 위축된 것은 공안정권의 탄압 때문이다", "학생운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총련을 객관화 시켜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서운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된 만남의 장은 맥주 한 잔씩이 돌아가고 노랫가락이 울려퍼질 때까지 5시간여 가량 이어졌다. 정명수 회장은 이날 모임이 끝난 뒤 "첫모임에서 모든 얘기가 다 나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선후배간의 대화자리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모임에서 오간 대화내용이다.


선배들의 '안타까움'과 후배들의 '서운함'

▲이정우
[이정우-8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매체를 통해서만 한총련을 만나다 보니 '무섭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었는데 만나고 보니 한총련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게 부끄럽다. 그러나 우리 세대들은 한총련의 운동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지금의 한총련의 구호가 6.15 공동선언에 대한 것일텐데 안타깝게도 '통일·남북문제'를 제기하는 운동방식 때문에 더 발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덜 발전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건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요즘 학생운동, 노동운동은 축소재생산 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에 울리는 맛이 없다. 최근 몇 년간 그 울림이 차단됐다는 느낌이다. 그건 운동주체들의 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상투적·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운동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학생운동만이 가능하다. 창발성의 코드가 살아있어야 한다. 그것이 학생운동의 미학이다."

▲이용헌
[이용헌-9기 한총련 임시의장] "현재 학생운동의 고민에 대해 허심하고 솔직하게 말하겠다. 한총련이 백만명이 모인 곳이다 보니 여러 가지 사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총련이 '주체사상파' 조직이라는 것은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한총련의 허상'이다. 한총련은 이것이 최대의 애국활동이라는 생각속에서 투쟁하는 것이다. 아직 학생들이기 때문에 과격·과도할 수는 있다. 선배들이 '상투적'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울림이 없다'는 말은 정권의 탄압에서 우선 찾아야 될 것 같다. 단과대학생회장만 되어도 연행되는 현실속에서 학생운동이 과거만큼 활성화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공안기관의 탄압 때문이다. 또 시대가 변했으니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한국사회의 가장 주된 모순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개선된 것이 없다. 우리는 식민지사회에서 살고 있는 학생이다. 하지만 선배들이 지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해 보고 고쳐나갈 생각이 있다."

▲오경훈
[오경훈-86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들에게 전설과 신화보다는 실패와 아픔을 듣는 게 지금의 학생운동을 위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올해 학생운동과 운동진영이 통일운동의 핵심과제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 긴장완화·교류협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문제만 나오면 이를 완강히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 법률로서의 국가보안법을 보지 못하고 이를 보수세력이 지켜야 할 마지노선, 안전판으로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총련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전면화할 경우 긴장완화, 교류협력에 대한 분위기까지도 얼어붙을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좌우갈등을 최소화 하면서 남북관계의 실질적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본다. 보수권이 오히려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똘똘 뭉치게 되는 그런 기회를 줘서는 안된다."

▲우상호
[우상호-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 "여기 이 선배들은 80년대 학생운동의 산증인들이다.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학생운동의 경험·고민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해본 사람들이다. 지금 학생운동에는 '이적규정 철회'가 중요하다. 과거에도 학생회 건립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랐다. 지금 여당내의 학생운동 출신들도 이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탄압을 돌파하는 방식은 대중들의 엄호속에서만 가능하다. 학생운동진영의 주장이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한총련에 가해지는 탄압의 원인을 외적에서 찾기 보다는 내적에서 찾는게 맞지 않겠나 싶다. 외적원인으로 돌리게 되면 내적 성찰이 쉽지 않아진다. 운동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직도 개혁되지 않은 것들에 의해 문제를 겪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도 10여년전의 운동방식을 강요하지는 않겠다. 합법화, 새로운 대중운동 활성화는 내적 개혁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돕겠다. 민족의 운명을 위해 이 문제를 고민하겠다."

[이희철-한총련 8기 의장] "지금 학생들에게 국가보안법 철폐는 아주 절박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개정이나 철폐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자주민주통일투쟁의 터전을 어떻게 공고히 다지면서 나아갈 것인지 국가, 민족을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는 무엇인지 방법을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정명수
[정명수-전대협 동우회 회장] "앞서 말한 세분 선배는 최근의 학생운동이 대중과 함께 하지 못하는 원인이 내부 주체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다. 너무 원칙만 강조하다보면 대중으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전대협동우회는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것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러려면 우선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게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다. 똑같이 학생운동을 한 우리끼리도 생각을 달리하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판단이다. 여러분 스스로의 패턴과 논리를 뒤집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보면서 얘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청래-전대협 동우회 부회장] "과거엔 학생운동의 공로자는 전두환이라는 역설적인 말도 있었다. 그만큼 탄압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대협은 그런 일이 있을 때 더 많은 학생들이 엄호해줬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이 참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이걸 푸는데 선배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학생들은 좀 유연하게 입장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용헌] "열린공간에서 합법적, 대중적으로 통일운동을 벌여 나가려고 하고 있다. 선배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줬으면 한다."

[우상호] "나는 학생들이 주장하는 '김정일 위원장 답방 환영위원회'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내가 지금 학생운동권이라고 하더라도 그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보수언론들은 '어, 주사파가 먼저 환영하네'라면서 딴지를 걸 것이다. 그러나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가 제기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적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명수] "한총련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한 결과 9기 한총련의 총노선에서 걱정되는 것은 6.15남북 공동선언 이후 지금까지 8개월간 한총련이 대중적 역량을 갖고 진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6.15선언이 역사적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권이 이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당위적인 입장도 중요하지만 원칙만 주장하기 보다는 좀 늦더라도 대중적으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총련이 지금 어차피 정권으로부터 몰려있는 상황에서는 1보 후퇴하더라도 유연화, 합법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고립되고 우리같은 사람들이 함께하기 힘들어진다."

[우상호]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이전에는 보수세력의 답방저지 움직임이 더 거셀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활동이 거기에 이용되지 않았으면 한다. 김위원장이 오고나면 대중적 교류의 물꼬가 열릴 것이다. 이 때 대중교류의 중심은 학생들밖에 없다. 그 전에 학생운동이 합법화되어야 한다. 통일운동을 제외한 다른 투쟁은 관계없지만 남북관계만큼은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공기 보다는 단일기를 든다든지 했으면 좋겠다."

[손준혁-한총련 6기 의장] "50년간 적대적 관계에 있던 남북이 지난해 '6.15 남북공동선언'을 했다. 공동선언문의 마지막 조항이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에 의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초청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다만 남한사회의 여러 이데올로기 문제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총련이 활로를 여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서부터 먼저 나서서 '환영위원회를 꾸리자'고 했으면 좋겠다."

▲ ⓒ 오마이뉴스 김미선


[우상호] "환영위원회는 때가 되면 대규모로 조직될 것이다."

[김 철- 연대 83학번] "학생운동을 할 때는 모두 마음이 뜨겁다. 80년대나 지금이나 어조나 말투다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마음과 현실은 다르다."

[손준혁] "선배들이 우려하는 바가 뭔지 잘 알겠다. 그래서 9기 한총련도 사고방식을 많이 바꾼 것 같다. 기존에는 정치권 자체가 투쟁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통일을 원한다면 정치권까지도 함께 끌어안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이런 모습을 한총련이 대중적으로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아달라. 선배들은 학생운동을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 객관적 평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배들도 우리민족의 가장 큰 과제인 6.15 공동선언에 나섰으면 좋겠다. 한총련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정지환-87년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우선 학생들이 남북문제를 여러 가지 코드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니 많이 발전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노선을 세우고 멋진 조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특성에 맞게 발전을 꿈꾸는게 더 중요하다. 운동을 다원화하고 대중화하고 이기는 싸움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강준만 교수를 너무 쉽게 글을 쓴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고급글쓰기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소용없다. 물론 중심을 필요하지만 중심을 세우되 신명나게 대중화할 수 있어야 한다. 선배들의 얘기를 뒷전으로 흘리기 보다는 새겨듣고 멋진 학생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정명수] "이런 말들은 한총련에 대한 선배들의 안타까움이라고 봐달라. 88년 통일운동을 할 때에도 북한에 밀입북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결국 폐기했다. 우리시기에 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89년도에 임수경 씨가 북에 밀입북했다. 우리가 뭔가를 해야 된다고 해서 한번에 다 할 필요는 없다."

[우상호] "이 시점에서 여기 모여있는 우리끼리 결의를 하나 하자. 첫째는 한총련이 많이 바뀌고 있고,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는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는 측면을 홍보하자. 그리고 둘째는 한총련이 여론에 제대로 비춰질 수 있도록 다각도로 홍보하자는 것이다."

[윤기진-한총련 7기 의장] "97. 98년의 어려움이 정권의 탄압 때문만이 아니라는 선배들의 지적에 공감한다. 한총련이 사업하는 데서 경직된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위축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계속 혁신하려고 하고 있다."

▲노혜령
[노혜령-홍익대 부총학생회장]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서 많은 고민도 되고 배우는 자리였다. 힘들도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선배들이 지지, 엄호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선배들은 뭔가'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못됐었다는 판단이다. 선배들과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모임 참석자>

정청래(전대협 2기·건대 85학번·현 전대협 동우회 부회장)
이정우(서울대 84년 총학생회장·81학번)
우상호(87년 연대 총학생회장·전대협 1기 권한대행·현 민주당 서대문 갑위원장)
정지환(서울시립대 87년 총학생회장·전대협 1기 의장 권한대행·현 월간 <말>기자)
김철(연대 83학번·'제3의 힘' 사무국장)
정명수(연대 총학생회장·전대협 2기 의장 권한대행·현 전대협동우회 회장)
이중기(전대협 2기·85학번·현 전대협동우회 서울지역 회장)
허영일(전대협 3기·현 전대협동우회 서울지역)
오경훈(서울대 86년 총학생회장·83학번·한나라당 양천을 지구당 위원장)
이용헌(9기 한총련 임시의장·현 전남대 총학생회장·94)
연덕원(9기 한총련 학자추위원장·현 광운대 총학생회장)
윤기진(한총련 7기 의장·현 범청학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
이희철(한총련 8기 의장)
허경(현 강총련 의장·현 한림대 총학생회장)
김주훈(현 서총련 의장·한총련 9기 대변인·홍대 총학생회장·97학번)
노혜령(현 홍대 부총학생회장)
손준혁(6기 한총련 의장·영남대 98년 총학생회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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