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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서 먹지 말아야 할 것은 음식 뿐만 아니라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문서, ~개론 따위의 책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읽으면 본인에게도 덕이 되겠지만 모든 분야의 사람을 처음 만나더라도 대화가 술술 잘 풀려나갑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 운을 띄우면 그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을 테니까요. 사실 저는 아무 음식이나 고루고루 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늘 주위 분들로부터 타박을 맞곤 합니다.

하지만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습니다.
미술, 음악, 역사, 의학서 등 잡식성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제 서고를 보는 사람은 늘 "답답하다"고들 말을 합니다.

반 룬의 예술사이야기(1권~3권)는 일단 쉽습니다.
분명 읽기 쉽다는 것은 그 책의 큰 장점입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시오노 나나미의 팬이 되었고 "작은 인간"을 읽고 마빈 해리스의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지 읽어야 직성이 풀리듯 이 책을 읽고 반 룬의 책을 좋아하게 되더군요.

반 룬이라면 잘 모르는 독자가 많겠지만 "아버지가 들려주는 세계사이야기"를 쓴 사람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즉 이 책을 예술사의 고전으로 불리게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예술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을 벗어나 있어서 우러러 봐야할 것이 아니고 다른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생활 속의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 룬은 예술사를 공부할 때는 지도를 옆에 펴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술이라는 것이 지리나 사회의 체제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 왜 일류조각가가 없는가? 라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지리적인 이유로 그러하다라는 대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즉 네덜란드는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야외에서 작업을 해야하는 조각은 힘들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반대로 언제나 날씨가 맑은 그리스인들은 조각은 훌륭한 반면 그림은 신통치 않은 것이 다 지리나 기후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지리나 기후 역사 등의 눈으로 예술을 보는 작가의 방식은 기존의 예술사 서적이 풀지 못했거나 관심을 두지 않던 여러 가지 것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공해줍니다. 그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그 그림을 보고서 감탄할 뿐 그 그림을 그린 사람들의 생활이라든지 어떤 마음으로 그 작품을 그린 것인지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이기도 한데 이 책을 읽어나가노라면 이집트인의 예술을 감상할 때 몇천년전 사람인 그들의 마음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단지 오래 전에 살았던 한 사람이 아니라 마치 옆집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웃인 것처럼 그들을 느끼고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어떤 책에서 맛볼 수 없는 재미를 반 룬은 이 책 내내 우리에게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제게는 이제는 너무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사막에서 만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가깝게는 수백년 멀게는 몇천년전의 예술작품을 보고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몇 천년이 지날 때 우리의 후손들이 지금 우리처럼 감탄해하고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볼 우리들이 만든 문화유산이 있느냐는 의문을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은 물론 "아니다"라는 것이었죠.
반 룬에 의하면 제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론은 같지만 반 룬은 제가 모르는 그 이유를 명쾌하게 알려줍니다.

우선 오늘날에는 예술이 일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며(그래서 예술가는 일반인과 동떨어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둘째 누군가 시간은 금이다라는 예술가에게는 끔찍한 슬로건을 만든 이후 느긋하게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렸다는 것있니다.

마지막 이유는 빨리 건설되고 빨리 철거되는 요즘의 세태 때문에 조각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야 그들의 작품이 곧 철거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영원히 보존될 작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분명히 읽어야 할 가치가 있고 마땅히 이 책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아까워 이 책을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동양예술에 대한 언급이 너무 적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 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동양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룬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볼 것이라는 제 결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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