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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게'란 말을 자주 듣고 저도 자주 씁니다. 사람이면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비판을 한다면 비판답게 철저히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더불어, 헌책이라면 헌책다워야 한다고도 말하고 헌책방이라면 헌책방다워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헌책방만이 아니고 헌책만이 아니고 비판만이 아니며 사람만이 아닙니다. 헌책방을 찾는 이들도 헌책방다운 모습을 생각해야 하고 헌책을 생각하고 제대로 비판할 생각을 하고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려 애써야지요.

헌책방은 새책방이 아닙니다. 꾸려가시는 분들께서 사거나 들여놓는 책들은 어찌되었든 헌책들이고 반품으로 들어오는 책은 드뭅니다. 그런데 헌책방을 찾는 우리들은 좀더 깨끗하거나 사람 손이 덜 간 책을 찾기도 합니다. 깨끗하고 손이 덜 간 책을 사려면 새책방에 가야죠. 헌책방에 찾아가서 깨끗하기만 한 책을 찾는 이들은 생각이 덜 여문 사람들입니다. 깨끗한 책은 말 그대로 새책방에 가거나 도서관에 갓 들어온 책으로 찾아서 보면 그만입니다.

헌책방엔 온갖 책이 많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들여와 갖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한 번 갖췄어도 팔리고 나면 다시 들어오기도 어렵고요. 가끔 어느 책손님은 이런 책도 없냐는 말씀이나 책이 별로 없네 하는 말씀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자신이 책을 찾아보지 못하는지, 책이 참말로 없는지. 볼 책이 없다면 온누리 모든 책을 다 보았기에 볼 책이 없는지, 책방에 있는 모든 책을 다 보니 자신에게는 도움이 안 되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말입니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는데 사 놓고 읽다 보니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샀는데 읽다 보니 읽는 사람을 끌여들이는 맛과 깊이가 그윽한 책도 있고요.

누군가가 참 좋다고 말하는 책이 모든 이에게 참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려 할 때는 `자기에게 맞는 책'을 찾읍시다. `인기 있는 책'이 아니라 `자기가 읽어서 자기 삶과 생각을 북돋우는 책'을 찾습시다. 잘 알려지지 않았고 글쓴이도 펴낸 곳도 낯선 곳이면 어떻습니까. 수천 군데도 넘는 출판사 모두를 다 꿰뚫어보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저마다 다 다르게 반갑게 다가오는 책도 다 다름을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헌책방 문화나 살림도 새로운 흐름에 발맞추어 고쳐나가야 하고 책값도 좀 제대로 매겨야 한다는 분도 계십니다. 헌책방도 장사하는 일인데 찾아오는 손님에게 `봉사'도 해야겠죠. 그러나 봉사를 할 만큼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 우리네 헌책방 문화와 살림입니다.

책장을 들여놓으려 해도 모두 손으로 짜야 하기에 적어도 서너 달은 걸리고 책을 정리해도 일손이 많이 가고 사람을 얻기가 어려워 해를 넘기기 일쑤입니다. (어느 헌책방 할아버지는 `그냥 내가 해야지 뭐' 하면서 정년퇴임도 한 나이인데도 손수 책방에 놓을 책장을 짜기도 했지만 당신 자식은 당신이 하는 책방 이름이 무언지조차 모르기도 했다죠)

전산화를 하거나 옛책 자료를 목록으로 엮는 일도 하면 좋지요. 하지만 헌책방을 꾸리는 분들이 지금 갖추고 있는 책들을 관리하기 어려운 한편 애써서 책방까지 찾아와 살뜰하게 사서 알뜰하게 읽는 사람들이 부쩍 준 탓에, 당신들 살림 꾸리는 일도 쉽잖은데 새로 셈틀을 익히거나 풀그림을 익혀 쓸 수 있을까 하는 물음도 듭니다. 그리고 모든 헌책방이 전산화를 해야 할 까닭도 없고요. 모두 자기 나름대로 책방 살림을 꾸려나가니까요.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하는 헌책방 문화에 도움이 될 좋은 생각을 책손님들이 많이 펼치기도 하고, 고칠 이야기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맞은이 형편을 헤아리며 하는 이야기인지 더듬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야기로는 좋지만 실제로 실천하고 몸으로 부대끼며 움직여야 할 사람 형편을 생각하고 함께 어깨동무하지 않는다면 한 번 더 생각을 곰삭이기도 해야겠죠.

우리 생각을 좀더 올곧고 튼튼하게 다지고 책 읽는 버릇도 옳게 들이고, 헌책과 헌책방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폭넓게 헤아리며 우리 문화와 헌책방이 어떻게 얽혀 있는가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헌책은 헌책답게 생각합시다. 헌책을 새책처럼 생각해서는 일을 그르칩니다. 비판도 비판답게 합시다. 비판이 앞으로 다듬고 고쳐나갈 길을 열어 주는 비판이 아니라 자기 화풀이나 매도만을 일삼는 일이거나 옹아리로만 그치면 이는 비판이 될 수 없지요.

이러한 일은 우리 사회 언저리에서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며, 헌책이든 새책이든, 우리 속에 올곧게 받아들여 우리 사회를 알차고 튼실하게 꾸려나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답게'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겪는 일과 우리가 보고 듣는 일들마다 `답게'를 붙여 봅시다. 우리 사회가 좀더 살뜰히 폭넓게 우리 눈에 들어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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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이 모두 `헌 책'인 것만은 아닙니다. 가끔씩 `새 책'이 들어와 `헌 책 같지 않은 헌 책'이 되어 헌책방 임자와 손님을 애먹입니다. 우리와 일본이나 다른 나라는 책 매기는 잣대도 흐름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헌 책'이라 하면 책을 팔든 사든 책값이 곤두박질치죠. 그런데 헌책방에서 `새 책'이나 `재고'나 `반품' 같은 책을 어느 뒤꽁무니(?)로 받는다면?

새 책이 자리할 곳은 새책방입니다. 헌책방이니 헌 책이 자리하죠. 그래서 헌책방에 자리한 새 책은 제 아무리 새 책이라고 스스로 우겨도 `헌 책 대접'을 받게 마련입니다.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여기는 새 책이오" 하지 않으면 그 어느 책도 헌 책입니다. 그래서 `새 책 같은 헌 책'처럼 되어도 책값은 헌 책값을 주고받아야 하죠.

뭐, 상태가 좋아 오백 원이나 천 원을 더 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에 오는 분들이 같은 책이면 좀더 싼 책을 사지 비싸게 사진 않거든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헌책방을 찾는 사람이라면 책 겉껍데기가 아닌 속알맹이를 보고 책을 찾는 사람들이라 책값을 좀 더 받을라치면 책을 안 사요. 값만 물어 보고 속으로 `딥따 비싸게 받네. 이게 뭐 새 책인 줄 아나?' 하고 생각하시죠.

과천 <한라에서 백두>를 꾸리는 장기수 할아버지들도 처음엔 출판사에서 재고로 있던 구정가나 새 책을 받아서 그렇게 받으며 팔려다 사람들이 "헌책방에 있으면 헌책이지 무슨 새 책이냐?"는 소리를 솔찬히 듣고 새책값 받고 팔기를 그만두셨답니다. 외대 앞 <신고서점>에도 새 책을 조금 싸게 파는 자리를 마련해 두긴 했는데. 글쎄. 가끔씩 `새 책' 자리에 꽂힌 책이 헌 책으로도 들어오는데 그 자리가 제대로 꾸려질지.

그렇게 여러 해 묵노라면 죄다 헌 책이 되어 버리죠. 아무튼.

저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헌 책은 헌 책답게 헌책방에 자리해야 가장 아름답고 새 책은 새책방에 자리해야 가장 아름답듯 우리들도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알맞은 일이나 공부를 하는 자리에 있어야 가장 아름답겠죠. 그렇다고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안일을 해야 한다는 비틀린 생각이 아름다운 건 아니예요. 이렇게 힘으로 가름하거나 돈으로 우겨대는 일은 구역질나는 일이니까요.

정치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정치에 알맞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경제를 하는 사람이란 이들이 참말로 경제에 알맞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요. 법을 하는 사람이라든지 경찰권력을 가진 이라든지 전경과 백골단이라 하는 이들도 그네들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늘 헷갈려요.

전경과 백골단은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웬걸. 우리가 내는 세금을 받아 먹고 사는 기득권들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여요. 진짜 자신들의 임자는 국민이자 민중이자 백성인데. 그리고 그 사람들 출신은 또 우리 국민이자 민중이자 백성이잖아요.

하여튼.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있을 곳도 모른 채 자기 스스로는 어디에 가야 좋을지도 헷갈려 하니 이런 일을 늘 보고 이런 일이 늘 있다 보니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 무딤증에 걸리고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선생님다운 사람만이 일해야 합니다. 선생님이라 하는 `교직'은 신성할 수도 있지만 엄연한 `일(노동)'이기에 교사도 노동자고 아이들과 똑같은 사람이며 학부모와 같은 어른이거든요. 이를 깨닫지 않는 이라면 아이들을 엉망으로 가르치고 학부모에게 아픔을 주는 한편 우리나라를 뒤죽박죽 무너뜨리는 나쁜 년놈이 되겠죠.

책을 만든다는 자리에 책으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장사꾼이 기어들어온다거나 노래로 우리 삶을 북돋워야 할 자리에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호사스러움을 누리고 출세욕 하나로 굴러들어가려는 이들이 있죠. 있어도 참 많아요.

이런 일할 사람이 아닌데 하면서 자기 맡은 일을 말없이 부지런히 하는 사람은 그 일이 가장 알맞은 사람이랍니다. `이런 일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런 일'을 못 찾는 사람만 많을 뿐이랍니다.

그럼 헌책방다운 헌책방도 있을까요? 그럼요. 있고 말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헌책방 수조차 얼마 안 되고 `고물업'에서 `헌책업'으로 탈바꿈한 지도 얼마 안 되어서 헌책방다운 헌책방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도 어려워요. 그리고 헌책방 살림 꾸리시는 분들이 그 동안 받고 억눌려온 짓눌림이 워낙 거세고 우리 사회 비틀린 눈(편견)이 오지게 굳어서 말문을 잘 안 여시구요.

헌책방 임자분들이 말문을 먼저 여셔야 하는데. 그래서 헌책다운 헌책 이야기도 하시고 헌책방다운 헌책방도 이야기하시며 당신들이 오랜 세월을 몸바쳐 일하고 허파 다 버리고 허리 굽고 자기 겨를(여가) 못 가진 채 지내온 이야기를 나눠야겠는데. 애써 좋은 책 하나둘 모아 갖춘 헌책방에 가서도 임자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떨거지들에게 벼락을 내리기도(?) 해야겠구요.

어찌 되었건 새 책을 사도 문제가 없는 사람 - 돈 많고 뭐 많은 사람 - 은 새 책을 사서 보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새 책을 사는 사람이 있어야 나중에 헌책방으로도 흘러들어가 저처럼 주머니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도 받을 테니까요. 이런 것도 나눔이라면 나눔이죠.

헌책이 헌책다우려면 사람도 사람다워야 합니다. 책을 만들고 책을 보는 우리부터 사람답지 않다면 우리가 만드는 책도 책다울 수 없고 우리가 만들어 돌아가는 책 흐름도 엉망이자 뒤죽박죽이 되고 말아 헌 책다운 헌 책도 사라지며 헌책방도 제대로 서기 어렵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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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헌책방은 잘 알려진 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헌책방은 또 잘 알려지지 않은 대로 언론사 기자나 피디에게 `취재 바람(요청)'을 받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한두 번 취재에 대꾸했다가 씁쓸한 일을 겪은 뒤 기자라면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해피 엔드>란 영화를 보신 분 있나요? 지난 설 연휴 때 텔레비전에서도 이 영화를 보여 주더군요. 용산에 있는 <뿌리서점>에 날마다 책을 가져다 주는 어느 중간상인 아저씨가 집에서 쉬다가 그 영화를 보셨답니다.

"그런데 말야, 어떻게 헌책방을 그렇게 그릴 수가 있어요? (뿌리) 사장님은 그 영화 보셨어요? 내, 처음부터 못 보고, 중간부터 봤는데, 떡 보니까 그 헌책방이 여기 <뿌리서점>이란 말이야? 그런데 거기 책방 주인으로 나온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이 책방 주인으로 후줄근한 차림으로 나오는데, 어느 학생이 책을 팔러 왔더래요. 그래서 책을 사려고 책을 죽 훑다 보니까 그 사이에서 돈이 나왔더구만. 근데, 그 돈을 잽싸게 자기 안주머니에 넣는 거야..."

<뿌리서점> 사장님은 <해피 엔드> 영화를 찍겠다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으나 정중하게 거절했답니다. 그러나 끝내 그 젊은 영화감독 뜻이 꽤 훌륭하다고 보고 영화 협조 제의를 받아들였고 책방을 영화감독이 바라는 대로 고치고 꾸미려고 서너 달 동안 집안 식구 다섯 사람이 허리빠지도록 책을 옥상으로 등짐져서 올린 끝에 나흘 동안 찍었는데, 그 나흘 동안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다시는! 영화고 뭐고 안 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십니다.

<해피 엔드>를 찍은 사람들은 영화잡지 만나보기(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했지요. "음침한 분위기를 담아내는 데는 헌책방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헌책방은 `음침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조명이 똑같이 어두운 술집을 두고는 음침하다는 말을 안 하죠. 더불어 헌책방들도 불빛을 밝게 해서 책 보는 분들 눈이 나빠지지 않도록 애쓰는데 그런 애씀에는 아랑곳하지도 않으니.(영화 <해피 앤드>는 촬영협조한 곳으로 <뿌리서점>을 밝히지도 않았고 영화를 내건 뒤에도 영화를 다 만들어서 내건다는 이야기나 소식조차 이곳에 전하지 않았죠. 영화를 찍기 앞서 제의를 했을 때는 그 온갖 요란한 말을 다 꺼냈으면서도요.)

홍제동 헌책방 <대양서점>에도 어느 방송국 피디가 "요즘 시대에 죽어가는 변두리 헌책방을 취재하고 싶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며 취재 바람을 꺼냈답니다. <대양서점> 아저씨는 이 이야기를 듣고 속이 상했지만 그냥 정중하게 취재를 거절했다지요. 지난해 겨울, 한국방송공사 어느 피디분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모레 아침 풀그림이 빵꾸(구멍)났는데, 어디 헌책방이라도 찍을 만한 곳 없을까요? 몇 군데 연락을 해 봤는데 모두 거절해서... 시간은 없고 급한데..." 하고 여쭈어 오시더군요.

우리들 눈길, 아니 우리들이라기보다 무언가 더 배웠고, 사회에서도 여론을 모은다는 계층에 계신 분들 생각은 이토록 짧습니다.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를 느끼지 못하지요.

`가장 서민과 가까운' 헌책방을 헌책방답게 여기고 느끼며 가슴과 몸으로 부대끼지 못한다면, `서민과 가까운 헌책방'이 아니라 `서민 삶'을 이네들이 어떻게 마주하고 담아낼까 하는 물음이 듭니다.

이 땅에서 무척이나 소외받고 외진 곳에 쳐져 있었어도 꿋꿋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이들을 고맙고 반가운 마음과 눈빛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이 땅을 이끌어가는 민중들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다움'을 잃고 `답게' 살아가는 몸가짐도 마음가짐도 분명히 사람들 마음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사람답게'를 잠깨워서 우리 삶을 곱고 알차게 꾸려나가도록 땀흘려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땀흘려 일하면서 헌책방도 때때로 찾아가서 우리 자신이 모르는 사이 나왔다가 절판되어 묻혀버렸던 수많은 책들을 만나면 더욱 좋겠고요.

덧붙이는 글 | * 곱거나 즐거운 이야기가 있는 한편 어둡고 슬픈 이야기도 있지요. 우리 사회에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따끔하게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고개숙여 뉘우치고 거듭나야죠. 하지만 훌륭하고 보람찬 일을 하는 분들은 덩실덩실 춤을 출 수 있게 칭찬하고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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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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