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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기자는 부산국제 영화제 와이드 앵글부분 출품작에 대한 주최측의 논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적이 있다.

그때 요지는 필름작품과 비디오작품의 차이를 마치 중량감의 차이인 것처럼 논평한 것에 대한 이의 제기였다. 그 논평이 내게는 마치 큰 다큐, 작은 다큐라는 부적절한 분류를 하고 있는 듯해서 그런 이의 제기를 한 것이기도 했지만 좀더 자세히 말하면 다큐멘터리의 역할에 대해 주최측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그런 기사를 올렸다.

그럼 독립 다큐멘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작은 제작 규모의 작품이지만 독립 다큐멘터리의 역할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는 작품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아쉬운 것은 이 작품이 방송이나 영상제에 상영된 적이 없어서 작품의 실질적인 감상포인트를 독자 여러분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이 작품을 보시고 싶거나 필요하신 분은 감독이 협조를 해 줄는지도 모르니 협조를 요청해 보기 바란다.

'이 다큐멘터리는 청각장애인도 쉽게 시청할 수 있도록 자막을 삽입했다. 일반인 입장에서 볼 때는 내레이션도 없고 자막때문에 화면을 가리는 경우가 있어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다. 한 번 입장을 바꾸어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청각장애인이 한국영화를 자막이나 수화통역이 없어 시청하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지개 동네 사람들 (90분, VHS완성, 2000년 제작, 감독 백윤국) 중에서-

아주 이상한 문구다. 영상물인 다큐멘터리인데 즉 비디오와 오디오가 결합된 하나의 예술 작품인 다큐멘터리가 청각장애우도 쉽게 시청할 수 있도록 오디오 중심의 내레이션을 배제하고 비디오 중심의 자막 내레이션을 사용한다니...

그렇다면 정상인 중심의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이들 장애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장애우 관련 프로그램을 할 때 화면의 한쪽에 창이 떠 있고 그 안에서 수화로 프로그램의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의 영상문화는 청각장애우를 위한 배려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 문구는 청각장애우를 위한 시설 청음회관의 백윤국 씨가 제작한 '무지개 동네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자막이다. 즉 이 작품은 애초에 기획단계부터 청각장애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우리가 보통의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드물다. 고작 인터뷰를 하는 선생님 혹은 수업장면 속의 선생님이 내는 목소리가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현장음이다. 청각 장애우들간의 대화는 수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과 청각장애우와의 대화도 수화다. 인터뷰하는 장애우의 이야기도 수화로 보여진다.

장애우 특히 시각이나 청각 장애우들에게 영상분야는 3자로서 감상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백윤국 씨의 작품은 그들에게 가능한 감상의 방법들을 모색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감독 백윤국 씨는 청음회관 사회 교육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시설 내에서 청각 장애우들의 영상작업 강좌를 만들어 운영중이기도 하다. 청각 장애우들에게 있어 영상분야가 감상의 영역 이상으로 제작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작품이기에 당연히 그 안에는 청각 장애우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가득 차 있다.

작품은 주로 청음회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지개 교실'이라는 청각장애우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장애우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청음회관은 청각장애우를 위한 이용 시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단순히 청각장애우의 시설이용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청각장애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아 볼 수 없었던 청각 장애우들에게 재활상담, 교육재활, 사회재활, 직업재활, 재활치료 등의 교육과 상담,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이 교육들이 마치 청각장애우를 위해 마련된 청각장애우만 받을 수 있는 교육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고 정상인들이 하는 일들에 대한 교육도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작품에서 장황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물놀이에 대한 교육이 그러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소리 중심의 사물놀이를 소리가 내는 리듬을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우들이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의 그런 통념을 고스란히 깨고 있다. 청각장애우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불명확한 소리들을 인지할 수 있고 그도 아니면 적어도 공기의 떨림이라도 인지할 수 있으므로 이런 리듬중심의 음악 교육이 가능함을 보여 준다. 그리고 힘들지만 이를 따라하는 청각 장애우들의 수업태도나 교육효과는 작품 내에서 보여지는 장애우들의 밝은 얼굴, 진취적인 모습에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다큐멘터리는 작품성을 떠나 작품 내내 사람들의 밝은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즐거운 작품이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언제나 패기에 차 있고 밝은 웃음을 선사하고 있고 수화 외에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마저 자유롭지 못한 청각 장애우들이 갖가지 몸 동작과 함께 뭔가를 표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웃음 그 자체다. 그리고 그들은 의사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늘 웃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어찌 보면 세상이 원망스럽거나 자신의 존재가 원망스러울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찌 저리 밝은가? 신체적으로 정상적이고 사회적으로도 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많은 비장애우들도 하루를 따져 보면 웃는 얼굴일 때보다 무표정하거나 화가 나 있을 때가 많은데 도대체 저들은 뭐가 그리 즐거울까? 도대체 저들을 둘러싸고 있는 행복의 내용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세상에 그리 큰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주어진 자기의 환경에 불만을 가지지 않고 현재의 모습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찡그리고 있을 때에도 웃을 수 있는 것인 듯하다. 그래서 장애우, 비장애우 구분 없이 모두가 감상할 수 있게 만든 이 다큐멘터리에서 우리의 삶, 우리의 세상에 대해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은 장애우들이 아니라 바로 비장애우일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비장애우들에게 장애우에 대한 이해와 장애우가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본 기자는 아내와 같이 이 작품을 보았다. 작품의 말미, 이들이 한 대학교에서 수화노래대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하나의 반문을 던졌다.

"저들이 저렇게 수화를 열심히 하고, 수화로 노래도 하는 것은 결국 비장애우를 따라 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저들의 수화노래는 약간 문제가 있다."

그런 것이었다. 그때 드가는 이런 말로 답을 했다. 그 답이 과연 맞을는지 모르지만 아내 또한 드가의 말에 수긍을 했다.
"저들은 비장애우를 따라가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는 것일 뿐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장애우와 비장애우의 구분과 관계 없이 보편적으로 이 사회에 존재하고 이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이다. 우리가 하는 노래나 음악 등등의 모든 행위들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고로 이들이 수화로 노래를 하는 것은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절대로 비장애를 흉내내거나 따라가려는 행위가 아니다."

지난 10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동안 동숭시네마테크(예정)에서 한국농아인협회 주최로 제1회 장애우 영화제 및 세미나가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 이 작품의 감독인 백윤국 씨도 있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영상작업으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 장애우들의 삶 그 자체와 그들과 자신이 얽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기록작업으로서의 작품이다. 그래서 기존 다큐멘터리들이 보여주는 극적인 구성의 묘는 없다. 극적인 구성은 없지만 보고 나면 분명 마음이 즐거워지는 작품임은 틀림없다.

다큐멘터리란 큰 것이 아니어도 된다. 작은 일상의 이야기, 자기 주변 이야기에 대한 기록 자체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시 다큐멘터리의 역할을 이야기 해 보자.

카메라를 들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현실을 기록하고 이를 목적에 맞게 배급 한다면 그것은 바로 다큐멘터리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도 독립 다큐멘터리는 어떤 사회운동의 연장선상이다.

80년대 남한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뜨거웠을 때 수많은 운동가들이 비디오를 들고 이를 기록했다. 그리고 비정기적이고 불안정한 방법으로 배급을 했다. 그 배급이란 제작비 회수 차원이 아니라 단순히 그런 사실을 알리고 그 사실이 말해주고 있는 현실상황에 대한 개선을 위해서였다. 바로 운동의 또 다른 방법이었다. 이 시기 이런 다큐멘터리 작업들은 어느 정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 독립 다큐멘터리계의 상황을 만드는 초석이었던 것이다.

이는 이념적인 운동의 경우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소개한 ‘무지개동네 사람들’역시 장애인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장애우에 대한 인식과 장애우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장애우를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더라도, 영상제에서 상영되지 못하더라도 장애우들의 행사 혹은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하는 행사들에서 비정기적으로 상영된다면 작품은 감독이 의도하는 제 역할을 하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myhome.shinbiro.com/~fh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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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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