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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여동생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여동생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으며 교복 깃은 휴지처럼 구겨져 있었다. 여동생은 몹시 초라했다. 그래도 그동안 내가 숲 속에 들어앉아 고기근이나 씹어댄 것에 비하면, 여동생은 그동안 피죽 한 그릇 제대로 못얻어 먹은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하얀 얼굴이 핏기마저 가셔 푸른 기운이 돌 정도로 창백해 보였다.

그런 여동생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놈의 험한 세상에 이제 여동생 혼자 남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런 여동생의 인생은 감옥안에 들어 앉은 내 인생보다 더 암울할 것이다. 나는 여동생을 위한다고 한 짓이 오히려 여동생의 앞날을 해치는 결과가 되고 만 것에 비통했다. 그리고 내 자식이라는 것도 결국엔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길러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다 때가 되면 또 다시 그 누군가에 의해 버려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여동생은 형사들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늘어지며 이 모든 것이 아빠가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긴 일이니 제발 이번 한번만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 말에 나는 욕지기를 느꼈다. 내가 지은 죄는 형사 나부랭이가 용서를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제발 그따위 인간들에게 천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여동생 심경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저지른 짓 모두를 후회했다. 여동생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니, 갑자기 현실이 너무나 명확했던 것이다.

여동생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아팠다. 나는 애초에 이 모든 잘못이 학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저주했다. 내가 계속 학교에 남아 있었다면, 최소한 이렇게 막다른 곳까지 떠밀려 오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에이즈를 증오했다. 이 모든 것이 그 인간때문이었다. 에이즈, 나는 그 이름 석 자를 마음 속 깊이 되새겼다.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면, 그때 나는 반드시 그를 찾아가 그가 예전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를 학교 담장 밖으로 몰아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가 아직 교사로 남아 있을 때, 그가 예전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 또한 그 인간의 가슴을 무참히 짓밟아 줄 작정이었다.

그러자면, 그 때까지는 그 인간이 반드시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그 인간이 그 때 이미 학교를 떠나고 없다면, 그 결과는 나를 더욱 더 절망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뼈에 사무친 내 한도, 골수 깊숙히 뿌리박은 내 분노도 영영 사그러들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나는 이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너무나 명백해져서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다. 그 때쯤 내 가슴속엔 오로지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뜨거운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그 분노를 사그러트려야만, 피마르는 내 영혼도 얼마만큼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게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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