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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 저럭 며칠이 지난 뒤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녀석은 나를 골깨나 내는 폭력교사로 만들 작정이었는지 조회 시간 내내 내게 깐죽거렸다. 녀석은 내가 그날 아침, 새 양복에 꽃무늬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것을 보고, 우와 기생오라비같이 잘 빠졌는데라고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녀석과 시시덕거리다 나온 말이라, 날 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녀석에게 민감해 있던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그건 학생이 선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녀석에게 점잖게 핀잔을 주었다. 녀석은 내 핀잔에도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무엇을 씹고 있는지 계속 입을 질겅거려서 내 신경을 자극했다. 나는 녀석에게 입 안에 든 것을 뱉으라고 말했다. 녀석은 그것을 여봐란 듯이 교실 바닥에다 내뱉었다. 나는 그것만은 못 본 척했다. 나는 그 순간 녀석이 그저 발 밑에 신문지 조각이라도 깔아두었으려니 믿고 싶었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지적하다가는 녀석이 어디까지 빗나갈지 몰라 내심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녀석은 내가 교탁 앞에 서서 출석을 부르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떠들어댔다. 그러던 중에 나는 녀석이, 까진 도토리라더니 정말 영낙없군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 대목에서 더 이상 참아넘길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까진 도토리는 내 별명이었다. 머리꼭지가 둥글게 벗겨져 나간 대머리인데다가 키가 유달리 작은 나를 두고 학생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나는 그 별명을 몹시 싫어했다. 녀석이 그런 약점을 건드렸던 것이다.

나는 반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일시에 내 명예와 권위가 실추된 데 대해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곧 바로 녀석에게 몸을 날렸고, 녀석은 내 이단옆차기를 맞고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나는 녀석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녀석은 뒤로 나자빠진 채 교실 바닥에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고, 난데 없이 코고는 시늉을 내어서 아이들을 웃겼다. 일순간 웃음거리가 돼버린 나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계속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는데도 녀석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나는 이번에는 오른발로 녀석의 가슴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교사가 학생의 가슴을 구둣발로 짓이기다니, 보통사람이라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과 같이 학내 체벌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와 같은 행위는 대내외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사 경력 십여년에 학교 안팎에서 못 볼 것 안 볼 것 다 보고 살아온 사람이다. 게다가 하루의 대부분을 절간이나 다를 것이 없는 학교 울타리 안에 들어앉아 웬만큼은 정신수양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그런 비이성적인 행위를 저지르다니. 그 당시 나 자신도 그런 내 행위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나는 곧 내 행위를 이해하고 긍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결코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 그 순간, 내가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무턱대고 합리화할 생각은 없다. 나는 적어도 학생의 인격을 무시한 폭력을 휘두른 데 대해 교사로서의 부덕을 통감한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비난과 처분도 달게 받을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교권을 무시당하고, 더 이상 교사로서의 권위가 바로 서지 않는 상황에서 그 어떤 교사도 제정신일 수 없으며, 그것도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힌 상태에서까지 교사로서의 덕을 앞세울 수만은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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