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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시민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5일,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시민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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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는 형형색색의 팻말을 든 사람들이 모인다. 지난 7일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인수위원, 취재 기자들과 함께 삼청동으로 '출근'을 시작한 1인 시위 시민들이다.

구성도 다양하다. MB정부 내내 1인 시위를 하느라 이골이 난 '베테랑' 해직 노동자도 있고, '박근혜 당선' 소식에 해묵은 기대를 품고 처음 나온 '초짜'도 있다. 목적은 하나다. '내 억울한 얘기를 들어달라'는 것. 이들은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패딩 점퍼와 두꺼운 모자, 마스크와 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한 채 종일 보도블럭 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연일 계속되는 연하의 날씨에 몸은 고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불통' 인수위가 도무지 대화에 나설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인수위의 '불통' 방침 때문에 기자들도 인수위 내부로만 파고들기 바쁘다. 인수위 경비 경찰들이 이따금씩 시비를 걸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들은 그 다음날도 또 팻말을 들고 선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새정부는 'MB 노동탄압' 정리하고 가야"

이곳에서 1인 시위에 가장 열심인 것은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이다. 만도, 보쉬전장, 콘티넨탈, 유성기업 등 여러 지회에서 조합원 20여 명이 상경해 번갈아가며 1인 시위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 회사측이 노조를 탄압, 파괴한다는 의혹을 사는 곳들이다.

성세경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직부장은 "만도, 보쉬전장, 콘티넨탈 등은 모두 사측에서 복수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있는 곳들"이라면서 "사측의 공작으로 노조가 '깨져 나가고' 있는데 사회적 이슈가 되질 않으니 아는 사람이 없다"고 시위에 나선 이유를 털어놨다. 보쉬전장 노조는 사측의 노조 탄압으로 400여 명이었던 조합원이 50명 미만으로 줄었다.

노조파괴는 지난 5년간 MB정부에서 유독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다. 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단협해지 등 정부가 앞장서서 노동자에 적대적인 노동정책을 취하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파업현장 폭력사태로 논란이 된 경호업체 '컨텍터스'는 이 정권 5년 간 파업현장을 누비며(?) 크게 성장했다.

18일,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맞은편 공중화장실 앞에서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8일,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맞은편 공중화장실 앞에서 전국 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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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기업들에 '노조 깨는 법'을 자문해주는 노무법인도 생겼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은 이 정부 내내 14개의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다 지난해 10월에야 노조파괴 컨설팅 혐의를 이유로 노동부로부터 설립인가를 취소당했다. 특히 지난해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이 정부가 '공기업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공기업 노동조합 무력화 작업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1인 시위 행렬 중에는 상복을 입고 나온 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들도 있다. 이들이 점퍼 바깥에 상복을 한 겹 더 걸친 것은 박근혜 당선자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지난달 22일 "절망스럽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노조 간부 최강서씨 때문이다. 이들은 "박근혜 당선자는 노동자의 고통과 죽음을 중단시켜야 한다" "노조탄압 중단, 158억 원 손배소송 철회" 등의 팻말을 들고 자리를 지킨다.

이곳에 나오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지난 5년 간 MB가 만들어놓은 노동탄압의 사슬을 박근혜 당선자가 끊고 가달라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엄기한 유성기업 노동조합 감사는 "정부는 자본가 편만 들고 있다"면서 "새정부가 들어섰으니까 (노동계 상황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화 좀 하자는데 '쌩'

1인 시위자들은 보통 오전 8시면 출근을 마친다. 인수위원들의 출근 취재를 위해 '뻗치기'를 하는 취재기자들보다 더 일찍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골든브리지 투자증권 노조의 윤창민 조합원의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30분. 그의 요구는 부당노동 행위로 노동부가 검찰에 송치 의견을 낸 회사 경영자를 처벌하고 파업중인 노동자를 일터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솔직히 인수위에서 이걸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루라도 빨리 (파업을) 끝내고 싶어서 이러는 거죠. 박 당선자가 고용률 70%까지 높이고 일자리 창출한다고 했는데 지금 일하는 사람조차 회사 탄압 때문에 길거리에 나와서 이러고 있어요. 이런 걸 해결 못하면 국민대통합을 떠나서 일자리 창출 면에서도 의미가 없죠."

박 당선자의 '국민대통합'을 기억하는 건 윤씨뿐만이 아니다. "사회통합 말하려면 용산참사 외면말라"는 팻말을 들고 나온 사회진보연대 소속 이승하씨는 "용산참사야말로 박근혜 당선자의 사회통합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20일은 용산참사 4주기를 맞는 날이다. 이씨는 "용산참사 철거민 수감 해결과 (사건) 진상조사를 해야한다"면서 "도시개발 문제가 여전하고 철거민들도 쫓겨나는데 사회통합 얘기하려면 박 당선자가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5일 오후 12시 10분 경,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경찰들이 인도를 점거하면서 1인시위를 하는 시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15일 오후 12시 10분 경,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경찰들이 인도를 점거하면서 1인시위를 하는 시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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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앞 단식투쟁 6일차를 맞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김중남 위원장은 대선을 앞둔 지난 해 10월 20일에 있었던 박근혜 당선자와의 만남을 기억한다. 김 위원장은 "박 당선자가 노조 총회에 찾아와서 '공무원 위해 고생 많다' '자긍심 갖고 (노조 설립 문제) 해결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노조 설립인가를 못 받고 있는 공무원노조 문제에 박 당선자가 해결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해직된 조합원이 137명인데 MB정부와는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았었다"면서 "'불통' 얘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당선자는 국민대통합을 얘기하니까 면담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굵직한 노동문제가 거의 모두 모인 인수위 앞 풍경을 바라보는 노동자의 심경은 어떨까. "해고 1800일"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다, 노동법을 개정하라"라는 팻말을 가지고 나온 유명자 재능교육 노조 지부장은 "앞을 봐도 답답하고 옆을 봐도 답답하지만, 생존을 건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가장 답답하다"고 입을 열었다.

"저희도 인수위 '불통'을 느낍니다. 민주노총 위원장 차원에서 인수위원회에 1월 초에 면담 요청했더니 '스케줄 문제가 있다'는 답변이 왔어요. 지금은 거의 '쌩까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는 만족할 만한 답변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해를 전달하고 정부 입장이 뭔지 듣고싶은 거예요. "

답답한 심경은 유 지부장만의 느낌이 아니다. 지난 17일 오후에는 민주노총 조합원 9명이 인수위 담장을 넘으려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차원의 행동이었다.

18일 오후,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한 스님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18일 오후,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서 한 스님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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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1인 시위자들이 종일 평화롭게 서 있는 건 아니다. 때로 경찰이나 이들을 못마땅히 여기는 시민들이 시비를 걸어오기도 한다. 지난 14일 오후 1시에는 인근 주차장의 관리요원이 유 지부장의 팻말을 의도적으로 가리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고, 15일 정오에도 1인 시위를 막으려는 듯 경찰이 인도를 점거해 고성이 오갔다.

성세경 조직부장은 이곳에서의 1인 시위 중 일어난 황당한 일로 경찰의 '취사금지' 조치를 꼽았다. 금융연수원 맞은편 공중화장실 뒤편에서 해온 밥을 데워먹으려는 순간, 경찰 병력이 와서 불을 못 켜게 막았다는 것이다.

"삼청동 밥값이 비싸서 한진중공업 노동자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묵밥을 해왔어요. 날씨가 추워서 식은 묵밥을 데워먹으려 했더니, 취사금지라면서 둘러싸더라구요.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식은 채로 그냥 먹는데, 경찰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맛있냐'고 약올리더군요. 먹던 밥그릇을 확 땅바닥에 던져 버렸지."

18일 오후에는 한 비구니가 "대통령이 바뀌었어요"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그는 인수위원회 소속 국민행복제안센터에 제안을 접수하러 오는 시민들과 말다툼을 벌였다. 그는 "대통령 당선자는 문재인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한다"고 큰소리로 외치다 '퇴근'했다.

노조나 단체 소속이 아닌 1인 시위자들은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날에 많이 몰린다. 이들의 팻말에는 "사할린 우편저금 조속히 반환"이나 "군복무중 의가사제대 철저 검증" "저축은행 보상하라" 등등이 적혀 있다. 대부분 일신상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나 개인적인 요구들이다. A4 종이에 자신을 6년 간 스토킹한 동네 할아버지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을 적어온 73세 할머니도 있다.

각지에서 이곳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까지 흘러온 연유를 물으면 이들은 모두 "박근혜 당선자가 시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 58세 노인은 "1인 시위는 법적으로 다 해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는 거라고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자신이 대선 기간 내내 언급했던 '국민대통합' '국민행복시대' 공약을 믿고 찾아오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에 박 당선자는 어떻게 응답할까. 박근혜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은 2월 25일이다.


태그:#1인시위, #인수위, #박근혜, #대통합, #노조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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