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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 4-s 20' 복합매체 29.8×21cm 2004. 이번 전의 대표작으로 소품이지만 기발한 착상으로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음양 4-s 20' 복합매체 29.8×21cm 2004. 이번 전의 대표작으로 소품이지만 기발한 착상으로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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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위미술의 개척자로 그 기나긴 여정을 일구어온 김구림(72) 전이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반디에서 5월 5일까지 열린다. 그의 전시회에 들어서면 이것은 70대 작가의 작품전이 아니라 20대 첨단미술을 실험하는 작가전시회 같다.

그의 발자취를 보면 누구 말대로 미술에서 독립운동 하듯 험한 길을 걸어왔다. 그도 물론 회화를 하지만 같은 미술이라도 대중적 관심을 끌기 힘들고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콜라주, 설치미술, 퍼포먼스, 대지미술, 실험미술, 영상매체 등에 심열을 더 기울어왔다. 

그는 남보다 늘 한발 앞서면서도 평생 주류에 속하지 않고 전복과 해체 그리고 통합이라는 미술방식을 채택한 것은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면 자신이 진정 추구하는 것을 할 수 없고 자기주도로 산 것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이라기보다는 발명품 같아 

'음양 4-s 312' 복합매체 29.8×21cm 2004. 이 작품은 "나의 사물은 보이는 것 같으면서 보이지 않고, 없는 것 같으면서 있는 것 같은 그 무엇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음양 4-s 312' 복합매체 29.8×21cm 2004. 이 작품은 "나의 사물은 보이는 것 같으면서 보이지 않고, 없는 것 같으면서 있는 것 같은 그 무엇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 김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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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근작전에는 '음양 4-s 20' 등 2004년에 제작한 콜라주작업과 올해 제작한 '음양 8-s 10' 등 페인팅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을 얼핏 보면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미술창작가가 작품을 발명했다고 하는 표현이 옳지 않을까 싶다.

'음양 4-s 312'는 그의 작품이 가진 전반적 경향을 읽게 한다. 여자의 머리에는 창백한 장미 두 송이가 꽂혀있고 눈에는 또 다른 분홍빛 눈이 붙어있고, 콧등과 손톱과 입술이 조금 보이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거미가 나타나 여자의 뺨 위를 지나간다. 관객들은 서로 충돌할 것 같은 어떤 혼돈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몽롱한 융합에 놀란다.

'음양' 연작, 고전과 전위의 극적 랑데부

'음양 4-s 12' 복합매체 29.8×21cm 2004. 대비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음양 4-s 12' 복합매체 29.8×21cm 2004. 대비효과를 극대화하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 김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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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 4-s 12'는 고전적 요소와 전위적 요소가 만나면서 극적 효과를 더한다. 역사의 비밀을 품은 듯한 고궁의 산책길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여자의 색정적 입술이 불쑥 나타난다. 그 위로 이글거리는 황금빛 나뭇가지가 초현실주의 풍의 화려한 장식 속에 흔들리는 효과를 주어 관객의 눈길을 끈다.

김구림은 위에서 보듯 80년 이후 일관되게 지금까지 사물과 이미지를 해체하고 상반된 사실과 추상, 자연과 문명, 실제와 허상의 세계를 통합하는 '음양' 작업을 해왔다. 여기서 그가 생각하는 미술의 정체성은 바로 이런 동양의 음양개념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무심하게 발라버리듯 그리기

'음양 8-s 10' 캔버스에 아크릴릭 디지털 프린트 100×80.3cm 2008. 유화작품을 디지털 프린팅한 것은 디지털시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 8-s 10' 캔버스에 아크릴릭 디지털 프린트 100×80.3cm 2008. 유화작품을 디지털 프린팅한 것은 디지털시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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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문예진흥원에서 그를 위해 마련한 초대전을 계기로 뉴욕에서 15여년간의 생활을 접고 2000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뉴욕에서는 백남준과 친했고 1992년에는 '2인전'을 열기도 했다. 백남준이 한번은 그를 자기 집에 데려가 유화물감을 보여주면서 이걸로 뭘 그릴까 하기에 김구림이 그냥 발라버리라고 농담을 했더니 정말 후에 사람의 얼굴에 물감을 발라버리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에피소드처럼 들려준다.

'음양 8-s 10'가 바로 그런 풍이다. 미국 뉴페인팅의 기수 줄리안 슈나벨의 그림처럼 숨 쉴 틈도 없이 거칠게 물감을 덧칠한다. 게다가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리는 무의식의 흐름도 보인다. 아래 보이는 손짓을 하며 어떤 의견을 피력해보려는 몸부림 같은데 한국미술은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는 뜻인가. 

시대의 타부를 깨는 전위예술의 개척자

김구림 '보디페인팅(1969)'. 김구림의 퍼포먼스 '도(道 Zen 1970 제10회 한국미술협회전)', '정찬승, 차명희 피아노 위의 정사(1969 오른쪽)'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행위예술(1967-2007)'에서 찍은 사진
 김구림 '보디페인팅(1969)'. 김구림의 퍼포먼스 '도(道 Zen 1970 제10회 한국미술협회전)', '정찬승, 차명희 피아노 위의 정사(1969 오른쪽)'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의 행위예술(1967-2007)'에서 찍은 사진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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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의 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의 60~70년대 활동을 여기 잠깐 소개한다. 그는 당시 신문에 연일 대서특필되는 한국전위미술의 선두주자였다. 요즘 낸시 랭이 퍼포먼스는 이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그는 삶의 우연성과 일회성을 부각한 전위영화 <1/24초의 의미(1969)>를 발표했고, '문화의 독립', '가치의 0도' 등을 내세우며 그가 주도한 <제4그룹(1969)>이 50개의 관작을 끌고 거리극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또한 '우주공간이 내 화실'이라는 기치아래 우리나라 최초의 대지미술인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도 선보인다.

또한 그는 육체와 정신은 하나라는 의미로 바디페인팅도 시도했다. '제1회 서울국제현대음악제(1969)'에서 정찬승이 피아노 위에서 정사를 연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예술가도 구도자임을 퍼포먼스 '도(Zen 1970)'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실험극단 연출과 무용안무는 물론 비디오아트도 국내에 도입하고 해외비엔날레(1975)에도 참가했다.

여성의 몸과 기계의 부품이 음양적으로 조우

'음양 4-s 49' 복합매체 29.8×21cm 2004. '음양 4-s 301' 복합매체 29.8×21cm 2004. 다매체를 활용하여 기계와 인간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 같다
 '음양 4-s 49' 복합매체 29.8×21cm 2004. '음양 4-s 301' 복합매체 29.8×21cm 2004. 다매체를 활용하여 기계와 인간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 같다
ⓒ 김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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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0년 전 이런 사건이 한국미술은 엄청나게 후퇴시켰다며 아쉬워한다. 그러나 이를 만회라도 하듯이 이번 전에서도 그런 그의 선구자다운 개척정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위 '음양' 연작을 봐도 그가 얼마나 특출한 상상력과 예리한 감각을 소유한 자이고 어떤 한계도 뛰어넘어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왼쪽은 여성의 신비한 얼굴이 가려진 채로, 오른쪽은 관능미 넘치는 여성의 둔부가 훤히 드러난 채로, 여성의 몸이 기계의 부품이 만나 희한한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짐은 실로 기묘하다.

그가 없다면 한국미술은 얼마나 쓸쓸할까

'음양 4-s 56' 복합매체 29.8×21cm 2004.
 '음양 4-s 56' 복합매체 29.8×21cm 2004.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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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다소 엉뚱하고 재미있는 공룡인형을 출현시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어떤 파국의 분위기로 몰고 간다. 그런 혼돈가운데 순교자를 연상시키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 등장시킨 것을 보면 아마 한국에서 전위작가로 겪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힘듦을 은유한 것인지 모른다.

그에게 아직도 40여년 시행한 예술적 실험과 궤적을 정리한 반듯한 화집이 하나 없는 것을 보면 그가 한국미술계에서 이룬 업적만큼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런 아방가르드 전사가 우리나라에 없었다면 한국미술이 얼마나 쓸쓸했을까싶다.

이 작가를 가까이서 뵈니 아직도 동네 개구쟁이와 같은 장난기와 20대 청년의 왕성한 혈기와 시들지 않는 탐구정신을 엿볼 수 있다. 하긴 그는 갈비뼈가 성한 것이 제대로 없을 정도로 승마와 카레이서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현재진행형인 생의 욕망을 기술

갤러리반디 안진옥 대표(왼쪽), 서울시립미술관 유희영 관장, 김구림 화백 내외와 관객
 갤러리반디 안진옥 대표(왼쪽), 서울시립미술관 유희영 관장, 김구림 화백 내외와 관객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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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창조해야 할 대상이다. 뭐 하나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예술의 발명가처럼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부수고 붙이고 떼고 한다. 기성문화를 관속에 묻으면서 장르의 해체와 파괴적 창조를 통해 도발적 모험을 계속해 왔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은 김구림을 사물과 이미지를 변신시키는 마술사로 한국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경이로운 발자취를 남겼다며 그의 근작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그는 아이디어나 건조한 개념, 관습적이고 형식화된, 그래서 이미 죽은 회화 언어로 말하기보다 끊임없이 자기 생을 이루는 현재의 사물, 이미지를 통해 동시대 삶과 문화에 대해, 잃어버린 감수성과 상상력에 대해, 진정한 생의 욕망을 대해 기술하는 작가고 그 기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구림(1936~)화백 전시회 및 소장품 현황
김구림(KIM, KU-LIM) 1936년 대구출생. 뉴욕 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
[개인전]1958~2007 39회(한국, 일본, 미국)
[단체전]1969~2008 29회(프랑스, 브라질, 일본, 아르헨티나, 미국, 영국)
[수   상] 2006 제7회 이인성 미술상 [저  서] 판화컬렉션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워커힐미술관, 이스라엘미술관(예루살렘), 베켄카운티미술관(뉴저지, 미국), 프랑크푸르트 시민회관(독일), 훗가이도근대미술관(일본), 홍익대학교박물관, 뉴욕시티은행(미국), 대구문화예술회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박물관,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토탈미술관, 한국문예진흥원, 수원대학교미술관, 경주아사달조각공원, 서울시립미술관, 오사카예술센터(일본), 경기도미술관,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일본)외 다수

덧붙이는 글 |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36번지 반디미술관 전화 02)734-2312 gallerybandi@paran.com
김구림 홈페이지 http://www.kcaf.or.kr/art500/kimkulim/



태그:#김구림, #바디페인팅, #제4그룹, #1/24초의 의미, #정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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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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