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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류한 병사들을 다시 배치하는 일은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랑이 이미 훌륭히 편성해 둔 병사들을 기존의 병사들과 합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양규는 병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 휴식을 취하게 하고 유도거, 김달치, 이랑과 함께 곽주성을 칠 논의를 하였다.

“곽주성 안에는 거란군 6천명이 모여 있고 억류된 백성들도 많습니다.”

이랑의 보고에 유도거가 말했다.

“6천이라면 우리군의 3배도 넘는데 정면으로 맞부딪히면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갑자기 양규가 유도거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전에 없이 크게 화를 내었다.

“함부로 그런 말을 마라! 우리는 이기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니라! 이기지 못하면 흥화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라!”

유도거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엎드려 사죄했다.

“제가 짧은 식견으로 말을 헛되이 했나이다. 허나 제가 말하고자 한 바는 적이 야전에 능하니 바로 맞닥트리기보다는 그들이 성을 지키는 데는 서투니 야음을 틈타 성에 올라 공격해서 무찌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랑이 유도거의 말을 거들었다.

“소인이 거란인들의 말을 능히 할줄 아오니 반드시 써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성위에 오르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양규는 고개를 끄덕여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사실 야습은 양규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전술이었지만 이를 지시하기 전에 부장들이 이를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날 밤, 이랑이 이끄는 백여명의 병사들이 곽주성의 성벽으로 몰래 기어 올라갔다. 고려군이 성을 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거란군의 방비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초들의 수는 적었고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초들도 성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이랑은 병사들에게 성문을 활짝 열고 여기저기 불을 지르게 한 다음 미리 가르친 거란말을 외치게 했다.

“고려군이 쳐들어 왔다! 모두 밖으로 도망쳐라!”

깜짝 놀란 거란군은 앞 뒤 가릴 것 없이 성문으로 내달렸다. 거란군의 지휘관은 놀란 병사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들도 곧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고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활짝 열린 성문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거란군이 뛰쳐나오기를 기다려 온 고려군의 노와 활이 있었다.

“쏴라!”

유도거와 김달치가 동시에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자 고려군의 화살이 마치 한사람이 쏘는 것처럼 동시에 날아올라 거란병사들의 몸에 박혔다. 어둠 속이었지만 열린 성문을 겨누어 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려군의 화살은 백발백중이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다른 성문으로 나가라!”

거란군들은 앞뒤로 엉켜 넘어져 대혼란을 빚어내었고 양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 성문으로 돌진하라!”

창과 극을 든 고려 병사들이 함성소리를 지르며 달려 들어가자 거란병사들은 더욱 당황해 하여 저항할 의지를 잃고 무기를 내던지고 모조리 땅에 엎드려 고려군에게 투항했다.

“저들의 갑주를 모조리 벗기고 묶어서 몰고 가라. 아직 성안에 적도들이 남아 있을 터이니 그들까지 투항하도록 해야 한다.”

양규의 지시에 따라 거란군들은 굴비 엮이듯 줄로 엮여 고려군의 가운데에 늘어섰다. 이랑이 합류하자 양규는 이랑을 통해 거란군들에게 고함을 지르도록 지시했다.

“곽주성은 이미 고려군에게 넘어갔다. 모두 나와 항복해 목숨을 구하라!”

고려군과 거란군 포로의 행렬은 곽주성 본청까지 이어져 갔다. 그곳에는 곽주성을 지키는 책임을 맡은 거란군의 장수 사분노가 남은 수 백 명의 병사들을 모아놓은 채 서있었다. 사분노는 사로잡힌 거란군의 행렬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와 양규에게 칼을 바쳐 항복의 뜻을 보였다. 양규는 칼을 받아들고는 이를 치켜들고 명했다.

“이 자들도 모조리 갑주를 벗겨라.”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연재소설, #결전, #최항기, #흥화진, #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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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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