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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라는 명언이 있다. 한때 이 말에 매우 공감하였는데, 이제 행동으로 옮길 나이가 되었다.

지갑을 여는 것은 어렸을 때도, 지금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은행에 취업시키려 나를 상업계 고등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나는 대학에 갈 것이라고 뿌득뿌득 우겼다. 힘겨운 살림살이였지만 억지로 억지로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

대학 다닐 때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 친구와 어울리지 못한 적도, 계산하면서 눈치를 본 적도 거의 없다. 나는 돈이 필요하면 늘 책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책을 산다면 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주었다. 친구의 책을 빌려 며칠 동안 책상에 두었다가 돌려주곤 했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내가 결혼할 무렵 어머니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자가 가지고 간 돈으로 책을 다 샀다면 내가 잘 방이 없었을 끼다.' 만남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 어머니와의 만남은 나에게 행운이었고, 지금도 곁에서 지켜보고 계신 것 같다.

입은 닫으라 했는데

직장 생활하면서도 그랬다. 나와 경제적 수준이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만났다. 그러다 보니 지갑을 여는 것에 그리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퇴임하니 걱정이 살짝 되었다. 연금으로만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막상 시골살이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적고, 만날 때 돈이 들어가는 자리도 뚜렷하게 줄었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이곳의 명물인 흑돼지구이를 대접한다. 모두 맛있다고 한다. 마음껏 드시라고 하면서 이곳이 한우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덧붙인다.

먹고, 입는 데서 과소비가 없었고, 사람들과 모임을 하는 곳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에서 만나고, 만나는 사람들 또한 허세가 없었으니, 오늘까지도 지갑을 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입을 닫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낯을 가리고 부끄러움이 많기에 사람들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교사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는 점에서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하다. 학교에서도 마이크를 잡으면 긴장하여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마이크를 잡고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 말을 많이 할 만큼 지식도, 능력도 갖추지 못하였기에 말을 많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입을 닫는 것은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갑을 열고 입을 닫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이 지향할 바라면 나는 잘 늙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삶이 바뀌었다. 퇴임하고 시골살이하게 되었다. 시골살이에서 잠시 벗어날 때가 있다. 벗을 만나러 갈 때와 지인들이 찾아올 때이다. 이때 일탈이 이루어진다.

일탈의 대표적인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사람을 설레게 하고 그 설렘은 행복으로 이어진다. 여행은 대개가 도시에서 자연을 찾거나, 낯선 공간 속으로 간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거꾸로이다. 자연에서 도시로 가고, 익숙했던 공간으로 간다.

처음 시골살이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지인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하다 보니 이곳을 떠나 사람이, 도시가 그립지 않았다. 다른 능력은 없어도 환경에 적응하고 만족하는 능력은 나에게 있는가 보다. 그래서 도시에 꼭 갈 일이 있을 때 하루 이틀 더 머물면서 사람도 만나고 볼일도 본다.

사람들을 만나면 화제가 이전과 다르다. 이전에는 직장과 자기들 주변 이야기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나 또한 말도 하지만 듣기도 잘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나의 시골살이를 궁금해한다. 그러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내가 마치 20년, 30년 시골살이한 전문가처럼 신나게 말을 많이 한다.

전원주택의 위치와 집은 어떠해야 하며, 정원에 어울리는 꽃과 나무는 어떻고,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원생활의 힘든 점은 무엇이며, 전원생활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며 등등. 심지어 내가 세상에 초탈한 도인처럼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있다. 나는 인사치레로 가볍게 물어보았는데, 그 사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한다. 언제 끝이 나나 애타게 기다리면서 들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이 사람에게 가능한 한 묻지도 않고, 만남도 피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 말도 오랜만에 만났기에 서로 나누는 가벼운 인사 정도인데 나는 온 힘을 다해 말한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만났기에 이야기를 자르지도 못하고 들어준다고 얼마나 지겹고 답답했을까? 집으로 돌아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더듬어 보면 부끄럽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다음에는 입을 닫아야지 하는데 아직 잘 안 된다.

지인들이 찾아올 때도 이러한 경우가 흔히 일어난다. 그래도, 이때는 아내가 곁에 있기에 아내의 눈치도 살피고, 아내가 적당히 말을 자르고 하기에 조금은 덜하다. 언제부터 떠벌리는 허풍쟁이가 되었는지.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는 안 되는데.

'총명'은 듣기에서 비롯

이제 총명(聰明)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총명을 <표준국어사전>에는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음. 또는 그 힘', '썩 영리하고 재주가 있음'으로 되어 있다. 보고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거나, 썩 영리하고 재주가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총(聰)'에 귀(耳)가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총(聰)'은 '귀 밝을 총'이다. 귀가 밝다는 것은 잘 듣는다는 것이다. 잘 들어야 오래 기억하고, 영리할 수 있다. 총명은 듣기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전에서는 총명을 아쉽게도 '두뇌'와 연계하여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 '상군열전'에서는 '총명'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反聽之謂聰 內視之謂明(나와 생각이 다른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을 총이라 하고, 이를 내면화하여 성찰할 수 있는 것을 명이라고 한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이를 통해 자기를 성찰하여 밝음(진리, 올바른 판단)으로 나가는 힘이 '총명'이다. '총명'은 듣기에서 비롯하여 자기반성으로 이어지는 결과의 산물이다.

나이 든 사람이 총명에 이르기는 정말 힘들다. 나이가 들면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보다는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없다고 탓한다. 자기반성보다는 '나 때는 말이지' 하면서 시대착오적인 말을 마구잡이로 내뱉는다. 듣는 사람이 짜증이 나고 피곤하니 곁에 머물 사람이 없다.

이제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나와 다른 생각을 들어줄 수 있는 나이, 남의 흠을 비판하기보다 먼저 내면을 들여다보며 반성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가는 동안 입을 닫고 귀를 여는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이 숙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유튜브를 통해 유시민 작가도 배우고 있다고 하는 말하기 방법을 되새긴다.

첫째, 옳은 말인지 생각한다. 둘째, 꼭 필요한 말인지 생각한다. 셋째, 친절한지 생각한다.

태그:#총명, #사기, #상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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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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