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고 하면서 관심이 집중됐던 의대생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도 결국 1심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로서 27년 만에 의대 정원 증원이 초읽기에 들어가게 됐다.
법원은 의대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 정지 신청에 대해 각하 또는 기각 결정했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과대학 준비생들은 직접 상대방이 아니기에 각하됐고, 의대 재학생의 주장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기각한다는 내용이다.
16일 오후 서울고법 제7행정부(재판부 구회근·배상원·최다은 부장판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4명, 연세대학교 대학병원 전공의 3명,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재학생 5명, 의과대학 준비생 6명 등 모두 18명이 보건복지부장관과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 효력 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이 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우선 의과대학 교수, 전공의, 의과대학 준비생들의 신청은 직접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에 불과하다고 판단해 '신청인 적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교수의 경우 헌법상 교육을 받을 권리와 같은 차원에서 교육을 할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고, 전공의의 경우 2025학년도 신입생들과 함께 교육 내지 수련을 받을 일이 없을 것이며, 의대 준비생의 경우 아직 의대 입학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
다만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들은 신청인 적격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라 할 것이며,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고 봤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결국 재학생들의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고, 전자(의대생들의 학습권 침해 등 손해)를 일부 희생하더라도 후자(공공복리)를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의 질 자체는 우수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을 단지 현재의 의사인력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이고, 결국 그 구체적인 규모나 속도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적어도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의 회복, 개선을 위한 기초 내지 전제로서 의대정원을 증원할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 재판부는 "지난 정부에서도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였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다"면서 "신청인들은 단순히 의대교육의 곤란만이 아니라 의료대란의 가중 내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붕괴 가능성 등도 거론하고 있으나, 집행정지로써 구제하려는 손해는 신청인 자신의 개인적 손해에 한하고, 공익상 손해 또는 제3자의 손해를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공복리의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법 법원 결정으로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 인원을 최대 1509명 늘인다는 정부의 계획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부는 올해 2000명 늘리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일부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5학년도에만 각 대학이 정원 증가분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모집 인원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계는 재항고를 통해 대법원 판단을 구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내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이 확정되는 이달 말 이전에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의료계가 추후 본안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 취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행정소송법 제28조는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처분 등을 취소하는 것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때 법원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법원의 결정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 정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있지만 오늘 결정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이 큰 고비를 넘어설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