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중음악의 인기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고 관련 기록 공개도 풍부한 오늘날에는 차트를 비롯해 근거할 수 있는 자료가 많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1950년대 이전에는 차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관영 라디오가 주도하던 당시 방송은 대중음악에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또 LP 이전에 존재했던 SP음반에 관해서는 판매량 같은 자료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매우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옛날 어떤 노래와 가수가 인기를 모았는지 얘기하는 것이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단편적이긴 해도 이런저런 문헌 자료를 모아 조합해 볼 수 있고,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당시 인물들의 구술 증언도 상당한 참고가 된다.
예컨대 잡지 <삼천리>에서 1935년에 발표한 '레코드 가수 인기투표' 내용을 보면 1930년대 중반 유행가 가수들의 인기 판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 번에 그친 인기투표이다 보니 당연히 한계가 있고 무리하게 확대 해석을 해서도 안 되지만, 그래도 이러한 자료들을 모아서 정리하다 보면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
<삼천리> 인기투표처럼 후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해방 이전 대중음악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로 또한 거론할 수 있는 것이 작가나 가수의 이름을 붙여 만들어진 걸작집 SP음반이다. 대표작을 골라 엮은 구성이라 어떤 곡이 팬들에게 환영을 받았는지 알 수 있고, 아무나 걸작집을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므로 그 자체로도 해당 인물의 위상을 파악할 수 있다.
해방 전 개인 걸작집 SP음반은 1936년부터 1943년까지 총 열 가지가 제작, 발매되었다. 가장 먼저 나온 <전수린 걸작집>은 가수가 아닌 작곡가 전수린의 대표작을 모은 것이지만, 이후로는 모두 당대 최고 인기 가수들의 대표작을 수록한, '걸작집'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는 특별한 음반들이다.
<타향(타향살이)>의 고복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눈물 젖은 두만강>의 김정구,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애수의 소야곡>의 남인수, <화류춘몽>의 이화자, <코스모스 탄식>의 박향림, 그리고 <나그네 설움>의 백년설(<백년설 걸작집>은 제2집까지 발매).
이 '8대 가수'만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걸작집 음반을 낼 수 있었다. 채규엽이나 김용환, 선우일선 등 그들 못지않게 활약한 가수들이 또 여럿 있었으므로 걸작집을 낸 가수들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걸작집 8대 가수들이 1930~40년대 대중음악계를 선도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기의 척도로 보기에 충분한 걸작집 음반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물론 있다. 1940년에 발매된 <남인수 걸작집>에는 당연히 1942년 작품 <낙화유수>가 수록될 수 없었고, 오케레코드에서 제작한 <박향림 걸작집>이었기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표된 <오빠는 풍각쟁이>도 박향림의 대표작이긴 하나 수록될 수 없었다.
그래도 걸작집에 포함된 노래들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당대 대중음악의 정수를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구나 8대 가수 걸작집은 노래 사이사이에 흥미로운 대사를 넣어 짧은 음악극 한 편을 보는 듯한 효과도 연출하고 있다. 대사를 맡은 이들은 그 당시 대중의 스타로 역시 각광을 받았던 유명 배우나 변사였는데, <남인수 걸작집>에는 이례적으로 일본 배우 도도로키 유키코가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와 흥미로운 내용이 담긴 걸작집 음반이지만,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SP음반이 1964년까지 계속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걸작집으로 발매된 것은 1958년 <김용만 걸작집> 하나가 확인될 뿐이다. 1957년에 열린 은퇴공연을 기념해 만들어진 <고복수 은퇴공연 노래>를 사실상 걸작집으로 볼 수 있기도 하나, 포함을 시켜 본다 해도 두 가지에 그칠 뿐이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SP음반으로 제작된 개인 걸작집 음반은 따라서 총 열두 가지가 되는 셈인데, 단편적으로 소개된 경우는 있었지만 그 모두가 한데 모여 공개된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발견 자체가 쉽지 않은 희귀 음반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복각 CD가 만들어져, 애호가와 연구자들이 자료 갈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 3년 만에 내놓은 복각반 <걸작 유행가의 향연>에는 1936년 <전수린 걸작집>부터 1958년 <김용만 걸작집>까지, SP음반으로 발매된 개인 걸작집 모두가 망라되어 있다.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자료들을 구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 곡절이 있었음은 물론이며, 국내 개인과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에다 일본에서 들여온 자료까지 더해 빠짐없는 모음집이 완성될 수 있었다.
잡음 자글자글한 70~80여 년 전 유행가 소리에 뭐 그리 대단한 가치가 있겠느냐 할 수도 있지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런 구석에도 역사는 엄중하게 깃들어 있는 법이다. 과거 대중음악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으나, 제대로 듣고 나서야 그리고 알고 나서야 상찬이든 비난이든 의미를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