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저기에서 '마을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앞으로 5년간 서울에 '이웃과 함께하는 행복한 마을' 1000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이라는 연재 기사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또, 11월 중순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2012 서울사진축제의 일환으로 '천 개의 기억, 천 개의 마을– 마을공동체와 사진아카이브'라는 전시도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점점 무너지고 있는 우리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비해 우리의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듯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팍팍하고 삭막한 풍경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급격한 근대화 과정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바꿔놨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던 사람들이 도시로 내몰리면서 서울은 차츰 비대해져 갔고, 이와 함께 농촌에는 빈집만 늘어났습니다.
서울 산등성이에 판잣집이 들어서는 속도만큼이나 시골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빠르게 확산돼 갔습니다. 아름답던 난지도는 어느새 냄새나는 쓰레기 산이 돼 버렸고, 가족을 이끌고 도시로 떠나버린 이장님댁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도시와 농촌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비슷한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산과 폐가(廢家)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자리 잡을 틈이 없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서부터 '커뮤니티 디자인'까지
공동체의 붕괴가 점차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또한 오랫동안 시도됐습니다. 가장 오래된 노력 중의 하나는 아마도 '새마을 운동'일지도 모릅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가꾸세"라는 <새마을 노래> 2절의 노랫말이 말하듯 새마을 운동은 농촌을 사람이 사는 멋진 공간으로 개조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집과 도로의 모양은 바꿨을지는 몰라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복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참 펼쳐지던 시기가 '유신 헌법' 아래 자행된 공포정치의 시대와 겹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는 주로 '도시 미관 사업' 혹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 등의 이름으로 이러한 노력이 진행됐습니다. 삭막한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고자 했던 '도시 미관 사업'의 대표적인 사업은 판자촌 철거와 재개발이었습니다. 토건족과 결합해 진행된 이 사업은 깡패들을 동원해 달동네 사람들의 공동체를 폭력적으로 해체하는 일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해체하고 보금자리를 파괴한 뒤 들어선 아파트는 그 높이와 규모의 위용만큼이나 서글퍼 보입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 사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난지도 공원'과 '선유도 공원',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청계천'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슬럼화된 지역에 다시 사람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작됩니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서서히 몰락하고 폐허가 돼 가는 서구의 오래된 공업지대, 영국의 셰필드 철강산업지대나 스페인의 포블레노우 공업지대 등에서 활발히 진행된 사업입니다.
'쓰레기 섬'(난지도)과 '폐쇄된 정수장'(선유도)을 환경친화적인 공원으로 탈바꿈한 사업이 우리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입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의 경우 그 일대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됐고, 공사 과정도 환경친화적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샀습니다.
비슷한 시기 농촌에는 '마을 가꾸기 사업'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 혹은 '커뮤니티 디자인' 등의 이름으로 많은 사업들이 진행됐습니다. 이런 사업들은 농촌의 공동화 현상을 막고 무너져 가는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은 부족한 예산과 짧은 사업 기간, 가시적인 결과물을 중시하는 관공서의 태도 등의 이유 때문에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관공서와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사업 진행은 공동체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지역 주민을 사업에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농촌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순수 미술작품만 남게 되고, '커뮤니티 디자인' 사업이 끝나면 디자인 간판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박한 일상이 역사가 된 '우리동네 박물관'
마을 미술 프로젝트가 뭐죠? |
마을 미술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마을 미술 프로젝트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사업'이다. 매년 몇 군데 마을을 선정해 새 문화공간 조성을 지원한다. 올해(2012년)에는 전국 11곳을 대상으로 선정, 총 23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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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서 소개할 '우리동네 박물관'은 마을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사업이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재원을 마련해 시작됐던 '2011 마을 미술 프로젝트'는 모두 45개 작가 팀이 참여했습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은 지난해 11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 세워졌습니다. 지금 이 마을에는 '우리동네 박물관'뿐만 아니라 '알록달록 만물상(아트샵)' '바람의 카페(무인 다방)' '빈집 갤러리(건축 작품)' 등 45개 작품들이 설치돼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 오고 있는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작은 곳입니다. 이 박물관에서는 마을 들판 곳곳에 남아 있는 선사시대 고인돌에서부터 한국전쟁 참전용사 할아버지의 역사 증언뿐만 아니라 욕쟁이 할머니 집에서 사납게 짖어대는 진돗개, 부인 회장님 댁 옆집 마당에서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 해피와 나비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의 콘텐츠는 대부분 마을 주민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전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주민·삶·생활' 공간은 마을 주민들의 사진첩에서 골라낸 사진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가상리에서 벌어졌던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 학창시절, 결혼, 회갑 등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사진첩은 마을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사료가 됐습니다. 나라의 역사가 기록관이나 역사관에 정리돼 있듯이 개인의 역사는 사진첩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첩은 개인의 삶이 녹아 있는 '시각적인 역사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사진첩 사진이 펼쳐지는 벽면 맞은 편에는 지금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물 사진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 속에는 가상리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가상리 주민의 인물 사진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팀은 마을 중심에 있는 방앗간 앞에 간이 촬영소를 차려 놨습니다.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은 각자 개성 있는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 모습이 재미가 있어 마을은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방앗간 앞 간이 사진 촬영소는 박물관 기획팀과 마을 주민이 함께 만들어내는 행복한 퍼포먼스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작은 마을의 역사 이야기
'우리동네 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작은 시골 마을에 들어선 생활사 박물관입니다. 이 마을의 가구 수는 100호 정도밖에 안 되고, 마을 주민 수도 적은 편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오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시계의 초침을 따라 삶을 이어가는 도시인들과 달리 햇살의 밝기에 맞춰 삶을 살아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 왔던 역사는 왕조나 국가 단위의 역사였습니다. 국사 교과서도 '고려' '조선'과 같이 국가 왕조 역사를 기술하고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시·도 소재 박물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책에서 배우고, 박물관에서 봐왔던 역사는 너무 거대한 역사라서 마치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는 무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삶이 만들어 온 것입니다. 수많은 개인들의 역사의 총합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온 역사입니다. 마찬가지로 이곳 가상리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이 모여 마을 공동체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또 다른 수많은 마을들의 역사와 함께 지금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역사 없이 거대한 우리 역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동네 박물관'은 기존의 역사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다루지 못했던 작은 마을의 소소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매일 오후 경로회관에 모여 민화투를 즐기는 할머니들과 하루 네 번밖에 없는 버스를 툭하면 놓치는 윗마을 아주머니, 두 평 남짓한 작은 담뱃가게 주인 아주머니, 한국전쟁 참전 용사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청년회장님 댁의 귀여운 강아지 진풍이, 일성정(日省亭) 옆집의 풍산견, 정미소 앞집의 누렁소, 누렇게 익어 가는 들판의 나락, 마을의 앞산과 뒷산, 그리고 그곳에 피고 지는 이름 모를 꽃들도 이곳 '우리동네 박물관'에서는 모두 역사의 주인공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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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동네 박물관' 전시 영상 '우리동네 박물관'에서 상영되고 있는 이 영상은 '가상리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경로회관 노래잔치'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 할아버지의 역사 증언' 등을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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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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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태현님은 '2011 마을 미술 프로젝트- 가상리 우리동네 박물관'을 기획·총감독했습니다. 이 기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웹진에도 수록됐습니다(http://www.kdemo.or.kr).